전직장인의 미국 통계 석사 도전기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2016년, 미국도 질 세라 스케일이 다른 Surprise를 선사한다: 트럼프 대통령. 날씬한 돼지라는 말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President Trump라는 두 단어를 앞으로 함께 써야 한다. 마이클 무어가 Micheal Moore in Trumpland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하긴 했지만, 전 세계인들은 뉴미디어가 제공하는 poll data를 보면서 “에이 설마~”라는 마음이었기에 이번 결과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선거 결과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유학생의 입장에서 선거 이후 일주일간 일어난 일들에 대해 기술하고자 한다.
[사진 출처: AUSTIN ANTHONY / DAILY NEWSVIA AP]
미국의 젊은 층들은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특히나 좋은 학교일수록 학생들이 정치적인 이슈에 관해 대화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번 선거날에도 몇몇의 미국 친구들은 같이 선거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학교 캠퍼스 내 곳곳에서도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음식과 마실 것을 나눠줬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중계를 보는듯한 광경이었다. 필자가 재학 중인 학교는 liberal 한 것으로 유명했기에, 모두가 힐러리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그녀의 캠페인 구호인 “I’m with her”을 쓴 플랜카드를 만든 학생도 있었고, “Don’t elect the racistpumpkin” 등의 트럼프를 비방하는 글들도 많았는데, 중간고사 기간에도 그런 정성과 열정을 보인 학생들의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과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합주에서 승리가 예상되자, 희망적인 분위기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평소 필자가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면 “트럼프 대통령 되는 소리하고 있네”라고 농담하던 친구마저도 영화 해운대에서 나라 잃은 표정으로 쓰나미를 지켜보던 아이가 되었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던 학생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활동 중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견제했던 성소수자 및 소수민족들이었다. 결과가 확정된 후 뉴스에서 방영된 것처럼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학교 내 광장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스스로 위안을 삼기 위해 길바닥에 용기를 주는 말을 썼다.
다음날 수업시간에는 평소보다 학생 수가 확연하게 적었으며, 어떤 수업은 선거 결과 때문에 시험까지 연기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학교 캠퍼스는 첫 여성 대통령을 맞이하는 축제에서 본인들이 설마 했던 최악의 결과가 현실화된 초상집으로 변했다.
사람의 감정은 절대적인 기준보다 개인의 상대적인 기대치에 민감하다. 이번 대선 결과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선거전 Poll data에서는 힐러리의 당선이 확실시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기대치를 높인 것은 비단 뉴스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또 한 번 부각된 것은 SNS가 형성하는 버블 효과다. 예를 들면, 내가 민주당 성향이 강하면 나의 페이스북 피드에도 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뉴스나 친구들의 소식을 위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customization을 통해 본인이 믿고 싶어 하는 이상을 현실이라고 오해 하는 Self-affirmation 현상이 나타난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이 만든 버블 속에 갇히게 된다.
그 버블이 이번 대선에서 터졌다. 학생들과 얘기해보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재밌는 것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정확히 반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사람들이 위선자 힐러리에게 투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최근에는 이런 버블에서 벗어나기 위해 트럼프 지지자와 힐러리 지지자를 온라인상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도 탄생했다고 한다.
그 간극이 더욱이나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실 이번 대선은 민주당 대 공화당의 싸움이기보다는 도시 대 농촌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생각하는 일리노이주나 뉴욕주를 자세히 보면, 정말 민주당이 이기는 이유는 시카고와 뉴욕이라는 대도시가 진보적인 성향을 갖기 때문이다. 도시 이외의 지역은 대부분 보수적인 성향을 갖지만 인구가 적기 때문에 영향력이 약하다. 이렇게 지리적인 분리가 버블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전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유학생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글을 썼다. 그때 글을 쓰면서 시간 낭비하는 느낌을 지울 수없어서 몇 번이고 올리지 말지 고민했는데,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같다. 지난 글에서 쓴 것과 같이 지금 당장 변하는 것은 없다. 미국의 정치 시스템상 아무리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혼자 힘으로 정책을 빠른 시간에 바꿀 수는 없다. 오바마도 첫 임기 때 현재 트럼프보다 훨씬 좋은 여건이었지만(민주당 의회 대다수 확보 등), 실제로 이룬 것은 많지 않다. 물론 이전 글에서 얘기했듯, 목표가 미국에서 일자리를 잡는 것이라면 조금 더 힘들어질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 심각하게 우려할 정책이 나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학을 고민하는 직장인이라면, 꼭 한번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 추세를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Brexit부터 트럼프 당선까지 여러 굵직한 사건들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현재 세계는 점점 폐쇄주의적인 풍토가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세계화가 자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사라지고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에서 점점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서 화살은 소수민족 및 외국인에게 향하고 있다. 당분간 이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에,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확실한 향후 계획을 가지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Life goes on” 별달리 위로의 말을 할 수 없기에 체념하는 학생들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이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대선 결과에 한 개인의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생들을 정말 두려움과 씁쓸하게 하는 것은, 본인이 믿었던 핵심 가치들을 이 나라의 절반은 (정확히 말하면 투표인의 절반, 즉 인구의 1/4) 공유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나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무슬림 및성 소수자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환대받지 못한다는 슬픔이 클 것이다. 이 아픔은 시간이 지나 희미해지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번 대선은 찝찝한 감정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