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우리
참으로 어렵고 무거운 심정의 하루하루가 많았던 지난 4주.
우리 집 난방을 담당하는 파이프에 문제가 생겨 4일 동안 집이 너무 추웠다. 부랴부랴 시부모님과 시누이에게서 전기 히터를 빌려와 겨우 집에 온기를 넣었는데, 아침에 춥게 일어나는 게 제일 괴로웠다. 이제는 웃고 넘어가는 지나간 일.
코로나로 고생 중인 한국 걱정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젠 세계 어디 Corona free 지역이 있겠나, 영국은 제 나라의 역량을 알고 아주 현실적인 아니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 결정을 내렸고 오늘 날짜로 모든 학교들이 드디어 휴교 상황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몸은 영국에 있지만 정신은 한국과 영국에 나의 정체성은 한국인도 영국인도 아닌 것 같은 어중이떠중이. 나는 걱정이 너무나도 많다. 하루빨리 온 세계의 망가진 일상이 어서 돌아왔으면. 자연에 인간들이 너무 해를 끼쳐 큰 화를 입는 느낌...
Anyway, 우리 따님이 33개월을 향해 가는 과정
1. 나가기 싫어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노는 비중이 커져 내가 많이 편해졌지만 같이 찾아온 부작용이 밖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으려고 한다. 요즘 상황에 집에만 있으면 차라리 좋지만 집에만 있으면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고. 마음대로 티비 보고 게임하고 싶을 텐데 엄마가 안된다고 하니 화가 날 테고. 아직 작은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될 테고.
요즘엔 Toca Life라는 게임을 너무 즐겨 하시는 따님.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 힘든 게임이라 이제 그만하자라고 했을 때 엄청난 짜증과 눈물 공격을 연거푸 당하고 나서 타이머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는 게임을 시작할 때 놀이 시간을 정하고 시간이 지나 타이머 알람이 울리면 게임을 멈추는 제도인데 놀랍게도 시작한 처음부터 효과가 만점이다. 알람이 울려 이제 그만! 해도 몇 초간 징징대고 말지 쿨하게 bye bye 하며 털고 일어나는 장한 따님. 자기의 일은 playing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본분을 잘 아시는 따님을 위해 놀이 아이디어를 더 쥐어 짜내고 있는 중.
2. I speak Japanese, Korean, English and Scottish.
따님의 주 언어는 영어다. 아무래도 영어권 나라에서 자라는 이유가 제일 큰데 한국어를 익히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므로 주변에 유일한 한국어 사용자인 엄마가 한국어를 많이 써서 노출을 많이 시켜줘야 하는데 엄마의 주 언어도 영어이니...
다행히 적은 한국어 노출량이지만 잘 알아듣기는 한다. 가끔 시댁 식구와 함께 있을 때 똑바로 앉아라는 등의 한국어로 명령을 하면 시어머니가 따님이 얼마나 알아듣는지 알고 싶어 따님에게 엄마가 한국어로 무슨 말을 했냐고 질문을 하는데 맞는 통역을 한다. 생각해보면 지적하거나 혼을 낼 때 한국말을 더 썼는 듯... 며칠 전에는 엄마 이름이 뭐야? 하고 물었을 때 "똑바로"라고 대답하시는 따님. 내가 얼마나 똑바로라는 말을 많이 썼으면... 또 어떤 날은 내가 작정하고 한국어만 쓰려고 노력하니 하루가 끝날 즈음 따님이 한국어 옹알거리며 한국어에 유창한 척(?)을 한다.
웃기게도 떼쓸 땐 꼭 한국말로 "아니야!"라고 하는데 요즘엔 그나마 예의 있게 아니에요라고 하라고 지적했더니 "아니야(잠시 쉬고) 요"를 남발 중이다...
한동안 즐겨 보던 이웃집 토토로의 영향으로 따님은 일본어 단어도 몇 개 사용 중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어느 날
나: What languages do you speak?
따님: I speak Japanese, Korean, English and Scottish
왜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먼저고 잉글리시가 스코티시 보다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따님.
가끔 따님이 대답이 너무 예뻐서 기록해 두는데 그중 몇 가지를 보자면
나: 밖에 비가 오니 나가기가 좀 귀찮네.
따님: 엄마, Rain doesn't hurt you.
우리 집 창고에 죽어있는 찍찍이를 보고 놀라는 나를 보고 동네방네 내가 찍찍이를 보고 놀랐다고 말하고 다니는 따님 그러더니만
따님: Mommy, you are not scared of a lion or a crocodile though.
차라리 사자나 악어였음 덜 놀랐을 거야... 다 컸네 우리 딸...
또 자주 쓰는 말이 It's only for girls! 항상 본인이 big girl 임을 강조하는데 요즘 부쩍 girls only라는 말을 자주 쓴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는 인구도 적고 슈퍼마켓 사재기도 덜 심한 편이다. 답답하면 우리 집 정원에서 같이 잡초를 뽑으며 놀거나 주변에 많은 언덕과 숲, 물가로 나가 놀 수도 있다. 사는 주변에 자연이 이렇게 좋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따님이 자연 속에서 신나게 노는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