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님과의 하루는 매일 비슷하다. 수월한 날도 있고 유독 힘든 날도 있고, 매일매일 오락가락하는 내 감정과 싸우면서.
이 글을 마무리 짓는 오늘은 따님이 잠이 드는 순간까지 힘들었다. 오늘 따님은 정말 쉴 새 없이 종알종알 또 쉴 새 없이 이것저것 요구를 해서 정말 딱 몇 시간만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는데 하루에 끝에서 생각해 보면 결국 내가 참을성이 부족해서,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놀아줬으면 따님이 울지 않고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었지 싶어서 또 미안함으로 마무리되는 이 도돌이표 같은 나날들.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도 그리운 요즘, 못하니 더 간절한 그 별거 없던 순간들. 못 받으니 더더욱 간절한 시댁 찬스. 이 믿기 힘든 코로나 시대도 훗날 (제발 빨리) 곧 치를 떨며 기억하는 과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따님이 나와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 테고 이 순간엔 너무 당연하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훗날 힘든 오늘도 많이 그립겠지. 어쨌거나 순간의 기억을 위한 기록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하며 남기는 34개월의 기록.
1. I am an elephant!
역할놀이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고 이것저것 상상력을 더해하는 놀이를 즐겨한다. 따님의 상상은 주로 동물의 세계. 언제나 자신이 코끼리라고 하며 덤보 코끼리 가방을 자기의 아기라며 챙기고 네발로 걷기도 한다.
떼를 쓸 때 덤보의 엄마 코끼리인 미시즈 점보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 따님은 지금 굉장히 말을 안 듣는데 덤보는 어때요?라고 대화하는 척하면 미시즈 점보가 들으라는 듯 자기는 굿걸이라고 외치며 말을 듣는 따님. 왜 코끼리를 골랐을까, 정글북과 덤보의 영향이겠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까 궁금하다. 코끼리가 왜 좋아 물으면
Because I am an elephant, I am half human and half elephant.
또 책을 읽다가 알게 된 tooth fairy의 존재에 엄청 재미를 느끼는지 자기 이는 언제 가져가냐 묻는데 자기 전 이를 닦을 때 tooth fairy는 건강한 이만 가져간다 하면 재빨리 달려와 이를 닦는 둥 따님의 상상력을 이용하면 통할 때가 자주 있어 좋다.
2. 5 is the biggest number!
영어로는 1부터 20 정도까지, 한국어로는 하나부터 열까지 말로는 셀 줄 알지만 아직 수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따님이 이해하기로는 아직 다섯이 제일 큰 수인 것 같은데 한 손에 손가락이 다섯 개라서 그런가? 자기 전에 tooth fairy가 자기 이를 가져가고 보답으로 동전을 줬다길래 얼마 줬냐고 물어보니 Five! 스낵을 줄 때도 몇 개 먹을까 하면 Five!
3. 매일 만들고 그리고 오리고 자르고
따님의 그림은 아직 형태가 없는 꼬부랑 선의 집합. 내가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따님도 관심 있게 참여는 하나 아직은 내가 다 해주고 따님은 그냥 옆에서 이거 해 저거 해 명령하는 식.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따님의 동물, 곤충, 공룡들이 들어갈 집을 만들고 집에 들어갈 각 동물, 곤충, 공룡들의 엄마 아빠 가족들 그리고 오리기, 오린 동물, 곤충, 공룡들 집 (또) 만들어주기, 집에 넣을 동물, 곤충, 공룡 (또) 그리고 오리기의 무한 반복.
그중 굳이 꼭 혼자서 하고 싶어 하는 게 가위로 자르기인데 손에 힘이 부칠 텐데 열심히 끙끙대며 하는 모습이 귀엽다. 제대로 가위 쥐고 전달하는 법까지 터득해서 이제는 우리를 가르쳐 주려는 따님.
이것저것 참 많이 만들었다.
4. 코비드 19가 망가뜨린 일상...
남편은 원래 풀타임 재택을 하니 Lock down이 시작되었어도 셋이서 집에서 복닥대는 건 뭐 계속 같지만 바깥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는 게 이리 힘들 줄이야.
이미 마음을 먹어 그나마 덜 아쉬운 우리 세 가족의 (한국 제외) 첫 휴가를 취소. 오월 중순이라 아직 비행기 취소 공지는 안 떴지만 이미 우리 맘속에 이미 오래전에 취소되어버린 휴가. 언제나 갈 수 있으려나.
8월 중순부터 시작될 따님의 너서리가 어찌 될지 전혀 모르겠다. 올해부터 만 세 살 아이들에게 1,140시간까지 (일주일 종일반이 30시간이니 1,140시간이면 방학도 없이 계속 종일반 보낼 수 있는 시간) 정부 지원이 될 예정이라 그에 맞춰 너서리 지원을 받았는데 그 정책을 코비드 19로 인해 진행하지 못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지원 시간이 거의 두 배로 늘어나 오히려 유나가 갈 너서리에 내가 원하지 않는 변화가 생기는지라 새 정책이 진행이 안 되는 게 더 좋긴 한데 과연 올해 너서리나 학교를 다시 열 수 있을까?
또 새 정책을 취소하니 아이들 너서리 지원을 다시 받아야 하는 건데 그에 대한 공지는 전혀 없다. 너서리가 일 년 늦춰지겠다고 생각 중이다. 뭐 나도 만 4살에 유치원을 들어갔는데 하아 어떻게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야 할지 계획을 더 잘 세우라는 계시겠지?
5. 이중언어 아이 키우기...?
요즘 따님은 내가 한국말을 할 때마다 나에게 Mommy, speak in English! 라며 소리를 빽 지른다.
아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영어권에 살고 있으니 영어가 첫째 언어로 자리 잡는 것에는 크게 스트레스는 안 받았고 결국 두 언어를 익히겠지만 당연히 편한 주 언어만 쓰려하고 하겠지도 당연히 예상했다. 그런데 엄마 영어로 말해! 는 학교 가기 시작하면 오지 않을까 했는데 벌써 왔다. 안 그래도 한국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전화할 때 한국어만 들려서 그런지 따님의 집중도가 훨씬 떨어지는 것 같고 대화 자체를 덜 즐기는 것 같아 속상함이 올라왔는데. 따님의 저 말에 좀 뜨끔했다.
이중/삼중 언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여러 사례를 보면 (부모의 모국어가 다른 경우) 엄마, 아빠 다르면 다른 대로 각자 쓰는 하나의 언어로만 꾸준히 아이에게 사용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사실 엄마인 나부터가 너무 혼란스럽게 언어를 섞어 쓴 거는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의 한국어는 어눌해졌고 입에서 먼저 튀어나오는 언어는 영어고 그렇다고 또 완벽 영어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내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 따님이 말이 빨리 튼 케이스라 한국에 몇 주 가면 한국어 금방 늘겠지라는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한 것도 큰 잘못이지 싶어 뜨끔한 건데 하지만... 이런저런 고민 걱정이 들어도 크게 안 흔들리고 나를 잡아주는 것은 표현에 관심이 정말 많고 말하는 것 자체를 즐겨하는 것 같은 따님 덕이다.
우리는 사자 가족을 읽는 중
나: Daddy lion has a mane but baby and toddler lions don’t.
(아빠 사자는 갈기가 있지만 아기 사자 어린 사자는 갈기가 없어)
따님: Does mommy lion has a mane? (엄마 사자는 갈기가 있어요?)
나: Mommy lion doesn’t. (엄마 사자도 갈기가 없어)
따님: Maybe the rain washed it off. (아마 비에 씻겨 내려갔나 봐요)
화분에 깻잎과 래디시 씨를 심으며
나: Soon these will grow to become vegetables we eat.
(이것들이 곧 자라서 우리가 먹는 야채가 나올 거야)
따님: Will it become vegetables tomorrow?
(야채들이 내일 나와요?)
나: No, it takes longer than that
(아니, 그보다 더 오래 걸릴 거야)
따님: Then should we put it in the oven to make them come out quick?
(그럼 빨리 나올 수 있게 오븐에 넣을까요?)
오늘 자러 가기 전 너무 혼나서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는
따님: Where does the water come from my eyes?
(눈 어디서 물이 나오는 거예요?)
우유 냄새 풍기며 굴러다니던 아기가 언제 이렇게 커서 호기심 많은 꼬마가 되었는지 참으로 신기할 뿐. 따님의 느릿느릿 자란 머리카락을 드디어 묶어줄 때,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할 때, 정말 순수하고 엉뚱한 대답을 할 때, 집중하면 튀어나오고 모아지는 따님의 입, 자기 전 오늘 하루 어땠냐라는 질문에 늘 It was good이라고 대답해 주는 따님.
하루하루 이런저런 감정 다루며 실패하고 성공한 것 같고 울고 웃고 우여곡절 어쨌든 나도 같이 성장 중이라고 믿는다. 현재는 나와의 감정싸움에서 대패하여 방으로 피신 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