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녀의 따님
먼저 쑥쑥 자라 35개월을 찍은 따님은
1. 역할놀이 삼매경
요즘 동물 친구들이랑 대화하느라 (=나에게 대답을 요구하느라) 바쁘신 따님. 거의 모든 장난감들마다 이름 붙여주고 자신이 그들의 엄마라고 할 때가 많다. 요즘 제일 많이 찾는 장난감은 곰돌이 인형. 이 역할놀이를 발전시켜서 듀플로 가지고 누구누구에게 집을 지어줄래? 하면 바로 연결될 때가 많아서 좋다.
2. Every past moment happend yesterday. 이전의 모든 일은 다 어제 일어난 일?
과거에 일어난 일을 얘기할 때 구체적으로 언제라는 것이 기억이 나지 않거나 단어 체계가 안 잡혀 모두 yesterday에 일어났다는 식으로 얘기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과거를 얘기할 때가 많다. 코로나 19 이전의 상황을 얘기할 땐 before the germs라고 한다.
따님의 하루하루를 같이 보내니 알아들을 수 있는 따님의 여러 기억이 한데 모였던 문장
따님: When I was a baby I grew up into a big girl watching Totoro, eating swirly ice lolly from Co-op yesterday. (내가 아기였다가 빅걸로 자라서 어제 코옵 수퍼에서 사 온 아이스 롤리를 먹으면서 토토로를 봤어.)
3. 따님과 책
따님은 책을 정말 좋아하고 책 내용을 잘 기억하여 종종 내용을 쫑알거린다. 가끔 도서관에 이미 반납한 책들의 내용을 말하며 다시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특정 상황에서 책 내용을 갑자기 떠올리며 재잘거릴 때가 많다.
어느 날은 냉장고 앞에서 Tiger who came to tea를 기억하며
따님: The tiger came and drank all daddy's beers in the fridge. That wasn't my daddy's beer it was Sophie's. (호랑이가 와서 맥주를 다 마셔버렸는데 그건 우리 아빠 맥주가 아닌 소피네 아빠 맥주였어)
요즘은 도서관을 못 다니니 남편이 어릴 때 읽던 책들 하나 안 버리고 잘 모셔둔 시댁에서 받아오거나 책에는 돈 펑펑 쓰는 내가 읽어주고 싶고 괜찮다 싶은 책은 아마존, 이베이로 바로바로 구매하는 편이다. 택배가 올 때마다 따님이 자기 책이 온 것인지 물어볼 정도로 꾸준히 사는 편. 종이책 최고.
책을 고를 때 가능하면 편견 및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는 책을 고르려고 하는데 내가 일러스트레이터들과 일을 해와서 그런지 책을 고를 때 삽화를 엄청 보게 된다.
요즘 최근 새로 들여온 책들, 어쩌다 보니 둘 다 프랑스 작가들의 책.
Anatol (아나톨, 1957년작)
픽사 영화 라따뚜이가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았구나 싶었다. 자신의 가치를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 생쥐 아나톨. 흑백 바탕에 프랑스 국기의 세 가지 색의 조합이 정말 멋짐.
The travels of Babar (바바의 끝없는 모험, 1932년작)
코끼리를 좋아하는 따님인지라 이 책은 표지를 보자마자 엄청 좋아하겠구나 느낌이 와서 바로 주문을 했는데 책이 꽤 두꺼워 긴 내용임에도 자세한 번 안 흐트러지고 엄청 집중해서 듣는다. 하루에 두세 번은 읽어달라고 할 정도로 좋아한다. 자신의 동물 장난감을 가지고 와 등장인물과 매칭 시키며 읽는 것을 좋아한다.
4. 자연이 좋아
이전엔 썰물에 맞춰 매일같이 물가에 나가서 아침을 보냈었는데 최근 며칠은 숲으로 하루에 한 번씩 꼭 다녀왔다. 초록이 가득한 숲 속에 있으면 얼마나 이 자연이 소중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나무 기둥을 보고 공룡 다리라고도 하고, 나무 모양에서 브론토사우루스를 찾아내기도 하고. 요즘 제일 좋아하는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treestar를 찾았다며 좋아하고
5. 한국어가 좀 늘었네...?
저번 달에 글 쓴 이후로 한국어를 더 쓰려고 신경을 좀 썼다. 그래서일까 따님의 문장에 한국어가 불쑥 끼어드는 현상이 생겼는데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젓가락을 쓰는데 자기는 젓가락이 없으니
따님: 나는 chopsticks 안 pick up이에요. (나는 젓가락으로 집지 않아요 = 나는 젓가락이 없어요)
곧 다가올 세 살 생일을 얘기하면서 손가락 펼쳐가며 숫자 얘기를 하는데
따님: 나는 two이야. (나는 두 살이야)
엄마 아빠가 뭐 먹는 것을 보면
따님: 뭐야 eating에요?
그러면서 아빠한테 벌써 한국어를 가르치려 드는 따님.
따님: 아빠 you should say 잘먹겠습! 니! 다!
6. 35개월 엄마
엄마가 된 후 내게 찾아온 많은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단연 나 자신이 주축이었던 내 인생의 주축이 아이로 바뀐 것이다.
하루 종일 내 시간 없이 엄마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지금이 얼마나 바라던 순간인지 잊어버리고 괜히 꿀꿀한 기분에 가라앉아 있을 때가 많다. 하루 종일 얼마나 가치 있게 내 자유시간을 보낼 것인가 생각하다 정작 자유 시간엔 소파에 늘어져 앉아 핸드폰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그러고 나서 후회나 하지 말지! 아무튼 육퇴 후 핸드폰은 멀리, 해야 할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집중을 하려 노력 또 노력 중이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 나에게 잠깐이라고 자유시간이 생기면 책을 펼치려고 노력 중이다.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 거리가 눈에 밟혀도 장난감이 발에 밟혀도 싹 무시하고 바로 책. 아니면 내 시간 정말 하나 없이 집안일+육아하다가 하루가 끝나니까...
최근엔 배추를 겨우 구해서 김치를 여섯 포기를 담갔다. 다른 레시피로 세 통씩 담았는데 세 통 담으니까 우리 집 냉장고 공간도 그렇고 김치 좋아하는 동네 아시안 엄마들과 우리 시부모님 나눠주고 우리 세 가족 먹으면 딱 알맞다. 김치가 생겨서 얼마나 풍족해진 밥상인지... 이제 떡볶이 떡만 만들 수 있으면 된다!
갑자기 일이 들어와서 최근 며칠은 자유시간 없이 계속 일하는 저녁. 나는 일할 때 그렇게 살아 있는 것 같고 좋다. 일하면서 아이 이전의 내 세계에 잠시 또 빠져 있으면 내가 많이 뒤처져 있는 것 같고 다른 이들이 연봉 불려 가면서 저 멀리 나아가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고.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더 그런지 나는 일을 하지 않는 (내 기술로 돈을 벌지 않는) 나는 가치가 없다고 부정적으로 생각을 오래 했다.
나는 이제 엄마. 하지만 엄마가 되었다고 아이 이전의 내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아주 다른 사람인 것도 아니다. 엄마가 된 이후로 나에겐 꾸준히 나를 성장시키는 것만큼 아주 중요한 인생 목표가 생겼는데 그것은 우리 부모님이 내게 그렇게 해주셨듯 아이 안의 보석을 알아보고 그 보석을 갈고닦을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끝없는 응원을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에 감사하다. 그러니 이 가치 있는 시간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 또 걱정 마 나 자신아, 난 계속 디자인을 하고 나 자신도 더 아낄 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