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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고양이 Aug 07. 2017

반듯하게, 번듯하게, '나'

2화

"나"를 배울 때 숫자 4와 같이 쓴다고 손주에게 꽤 혼났다. 그러던지 말던지. "글씨가 굳이 순서를 따질 필요가 뭐 있어?! 살아보니 인생에서 순서라는게 아무 의미가 없드라." 손주가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해대며 편한대로 써왔다. 더 쉽고 빠르게 쓰고 나도 읽고 너도 읽으면 그만 아닌가 싶은 마음이 지금도 있긴 하다. 하지만 교본책을 펼쳐놓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쓰다보니 손맛을 좀 알겠다. 이놈의 손도 늙어서 선 하나 반듯이 긋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순서대로 쓰다보면 따로 멋을 부리지 않아도 글씨 모양이 잘 사니 순서대로, 남들처럼 쓰는게 맞는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나"를 쓸땐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가며 쓴다. 그러면 선에 힘이 조금 더 붙어서 글씨가 반듯해진다. 내 인생도 "나"처럼 반듯했음 좋았겠지. 반듯하게 번듯하게 그렇게. 글씨를 쓸때처럼 순서대로 힘주면서 그렇게.


나도 첫 시작은 좋았다. 첫 번째 선을 그을 땐 쭉 반듯하게 힘있게 내려가 좋은 필체가 될 줄 알았다. 쭉 내리그은 선을 오른쪽으로 꺾어돌릴 때처럼 내 인생에도 전환기가 왔을 뿐 그때의 휘청거림을 잡지 못했을 뿐.


"순영아~"

아버지가 부를 때 "나"는 나비처럼 가벼운 "나"였었고 엄마가 "순영아~"부를 때 "나"는 나팔꽃처럼 방긋 웃는 환한 "나"였었다.


늦은 나이에 낳은 늦둥이딸

제법 땅가진 집의 늦둥이 딸

아버지가 학교까지 업고 다녔던 귀한 늦둥이 딸.

내게도 그렇게 나비였다가 나팔꽃이였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죽고 엄마가 시름에 잠겼던 순간부터, 나보다  열여섯이나 많아서 오빠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던 오빠의 각시가 살림을 맡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때부터다. 그러다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평생을 내 이름조차 잊고 지내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 시집가서는 "감곡댁"으로 불렸고 큰 아이가 생기고는 큰 아이 이름따라 "정숙애미" 또는 "정숙이"로 불렸다.


내 이름만 없어졌나?! 나도 없었지. "나"를 배우고 "나"를 읽고 쓰지만 한번도 나를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온 인생, 불쌍한 내 인생.


'ㄴ'을 쓰며 '아부지, 제가 순영이었네요.' 속으로 되뇌고 'ㅏ'를 쓰며 '아부지 등에 매달려 살던 순영이었네요.'라고 되뇐다. 나한테도 이름이 있었네. 그러고보니. '나' 옆에 '안순영'을 써보고 웃는다. 아빠보듯 웃어본다.


시집이라고 갔더니 초가집 한 채 덜렁, 애아빠는 군산으로 직장을 다니고 초가집엔 시부모님만 계셨다.  밭일, 논일 안해본게 없고 이것저것 아무거나 뜯어 나물을 무치고 죽을 쑤었다. 지금도 내가 풀을 뜯으면 자식들은 하나같이 못하게 하지만 먹을 수 있는 풀인지 아닌지, 어떻게 요리하면 맛있는지는 내가 박사다. 큰 애부터 막내까지 5명의 아이를 낳고 키웠고 그나마도 남편이 일찍 죽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식당살이하는 나다.


그러니 속편하게 나를 생각할 시간이 있을 수 있나. 내가 하고 싶은거 먹고 싶은거 생각하며 살아본 적 없다. 하긴 이게 내 인생이지 이렇게 살아온게 내 인생이지. 내 인생이란게 별건가 싶기도 하다. 이게 나지. 이게 안순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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