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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Aug 08. 2022

엄마의 타투

<나의 아줌마 관찰기>



시간의 구정물이 쏟아지는 순간
삶은 푹 젖은 휴지 조각이 되고
오나가나 인생은 퓨즈 타는 냄새를 풍긴다.

쏟아져라 구정물아 타거라 퓨즈야 인생아
누가 불러도 난 안 나갈 거다.

-최승자 ‘슬픈 기쁜 생일’
<이 시대의 사랑>/1981



며칠 전 일이다.

안부를 물을 겸 엄마랑 영상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얼굴을 화면의 반틈만 보여주는 것이다.


“뭐야 엄마. 잘 안 보여.” 해도


여전히 어두컴컴한 조명 사이로 절반만 보이는 얼굴. 언뜻언뜻 움직일 때 화면 사이로 보이는 엄마가 뭔가 다르다. 뭐지? 뭐가 어색한데?


“엄마. 뭐야? 엄마 눈썹 문신했어?”


물어보니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하는 엄마.


엄마는 진한 짱구 눈썹. 마치 시고르자브종들에게 할머니들이 우리 강아지 눈썹 없으니 짠 하다고 매직으로 그려준 것 같은 느낌의 어색한 눈썹이었다. 문신을 한걸 알고 나니 이젠 눈썹 밖에 안보였다.


덜컥 화가 나서,


“엄마는 왜 눈썹 문신을 함부로 해? 그거 지워지지도 않는데!!!! “


“뭐~ 아는 언니한테 했어! 하나도 안 아프더라 야 이거 이년 지나면 없어진대.”


“없어지긴 뭐가 없어져. 문신 지우기가 얼마나 힘든데. 지워질 때도 벌겋게 촌스럽게 된단 말이야! 잘 알아보고 해야지 왜 혼자 덜컥 사고를 쳐!”


“뭘 내가 사고를 쳐! 참나 웃긴다 얘.”


엄마는 내 말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웃었지만 안면이 울그락 불그락 했다.


빽 소리를 잔뜩 지르고 전화를 끊고 나니 후회가 몰려왔지만 늦었다.

지워지지 않는 문신. 이미 쏟아져버린 말들.


원래도 엄마의 눈썹은 가지런했다. 숱이 없는 편이 아니었다. 눈썹 화장 없이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체 엄마는 언제부터 눈썹 문신을 하고 싶었던 걸까?


요즘 한국의 눈썹 문신은 아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까이서 봐도 티 안 나게 결 따라서 눈썹 털 모양으로 가늘게 가늘게. 말하면 남들은 알아채지도 못하게 해주는 곳도 많은데.

그런 거 하고 싶으면 좀 물어보지. 내가 잘하는 데로 찾아 줄텐데. 미리 말이나 좀 하지. 짜증 나.


얼마 전, 나이가 들면 몸에 있는 털이란 털은 다 빠져 달아난다며 농담조로 푸념했던 엄마 말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부터였을까?


또 있다. 일전에 김고은이 선전하는 화장품이 집에 박스채로 배달된 적이 있다. 평소 화장품에 큰돈 안 쓰는 엄마가 웬일로 업자처럼 화장품을 사서는 나눠주는 거다.


“엄마. 이런 거 발라도 이미 생긴 주름은 안 없어져. 주름 지우개 그거 다 과대광고야.”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젊은 시절 엄마는 미인이었다.

엄마의 리즈시절 뒤태에 반해 쫓아오던 남자들이 앞모습은 더 예뻐서 놀랐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이모들을 통해 전설처럼 왕왕 회자되는데.


졸업사진을 보면 진짜다. 김희애 저리 가라다. 진짜. 똘망한 눈매에 앙칼진 입술. 작은 얼굴. 늘씬한 종아리. 내가 엄마의 미모를 닮았다면 어땠을까 왜 나는 엄마보다 못하지 싶은 날들도 있었다.


미인도 나이를 먹으면 늙는다. 자꾸만 군살이 나오고 이마엔 주름이 지고, 눈꺼풀이 처져 시원하던 쌍꺼풀은 소라게처럼 숨는다. 누가 세월을 이기랴.


그래도 보톡스 한 번을 안 맞고 자연스레 사는 엄마가 예뻐서 좋았다. 조금이라도 더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중년은 안타까워 속으로 흉도 봤다.

나는 나이 먹어 저러지 말아야지 했다.


크벤틴 마시스 <못생긴 공작부인> / 1513


그런데 엄마 마음도 실은 젊을 때와 매한가지였던 거다. 젊음은 지나가버렸지만 과거로 가둘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었다. 지방 재배치며 눈썹 거상술이며 안검 하수 같은 쁘띠 시술에 대해 슬쩍 물어보면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엄마 그런 건 다 어떻게 알았냐 물어보면 주변에 하는 사람들이 좀 있다고.


엄마의 짱구 눈썹을 목격하니 오만 떼만 생각이 밀려온다. 엄마 눈썹 문신 안 해볼래? 지방 재배치 안해볼래? 먼저 물어봤어야 했나. 아니다. 내가 예약까지 다 해두고 못 이기는 척 끌고 갔어야 했나.


엄마랑 싸우면 왜 그렇게 짜증이 나는 걸까. 엄마랑 딸은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 지나치리만큼 솔직해서 상처를 주고 만다. 입가의 미세 근육만 보고도 속을 훤히 알아차린다. 도대체 전생에 무슨 사이였기에 우린 또 이렇게 만난 걸까.


시골 개 눈썹 같다고 빈정대던 싸가지 딸은 김치가 떨어지면 엄마 집에 김치를 받으러 잘도 간다. 보름이 지나고 나니 송충이 눈썹은 조금 옅어져 있다.

몰래 휴우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행이다.


“엄마. 눈썹 하니 얼굴이 환해 보이네.”


“그렇지? 아빠가 그러더라. 나 세수했냐고? 호호호”



엄마가 우아하고 품위 있게 나이 들기를 바란다. 엄마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이토록 한없이 이기적인 딸은 어른이 다 되어서도 결국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의 나이 듦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에 나의 인생을 겹쳐보고는 혼자서 펄쩍 뛰는 어리석은 나. 자기만의 포물선을 그리며 삶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엄마.


여름이 지나면 눈썹 거상술인지 뭔지 알아봐야겠다. 이번엔 엄마가  이기는  권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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