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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롷 Jan 22. 2018

책을 쓰자

오래된 숙제

기자생활 하면서 목표가 있었습니다. 10년을 꽉 채우고, 꼭 책을 한 권 쓰자. 엄벙덤벙 하루하루 대충 넘기며 살지 않겠다는 일종의 각오 같은 거였습니다. 그러다 10년 기자 생활을 끝내고 퇴사를 하면서, 세웠던 목표가 다소 연기됐지요. 일단 살기부터 해야하니까. 앞에 닥친 먹고사니즘을 해결한 후에 쓰자고 마음 먹은지도 꼬박 3년이 지났네요. 더는 미룰 수 없어 칼을 뽑습니다.


글쓰기를 멈추고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뭔가를 쓴다는 게 조금씩 버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럴 땐 되든말든 무작정 덤벼드는 게 상책인데. 시동 걸고 예열 한다는 명분으로 어영부영 시간을 한참 흘려보냈습니다. 꽉 차서 더는 안 되겠다 싶어야 움직이는, 이상한 버릇이 있거든요. 40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어쩌겠어요. 어른 사람이 쉽게 바뀌던가요. 후후.


모르겠고, 쓰자


기준이 높은 건지, 강박인지. 계속 맴도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책을 내면, 돈 내고 사다 읽는 사람이 있을까? 독자에게 필요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이것저것 간당간당 늘 허덕이는 주제에, 책을 쓴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끝까지 찬 거 같아요. 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용납이 안 되는 지경이랄까. 그래서 합니다. 되든 말든.


'간당간당 할 때는, 벅차게 몰아부친다.'는게 습관이긴한데. 칼을 뽑아들긴 했지만 막상 쓰려니 막막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훈련소 첫끼 식판을 받아들고 저기 지나가는 예비군을 보는 기분? 모르시는 분은 패스. 그래도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기운이 있어요.


지각 인생의 숙명


늘 한 템포 느리게 살았습니다. 운 좋게 단번에 대학 합격한 것을 제외하면, 졸업 후 기자가 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렸고요. 하고싶던 영화도 마흔이 넘어서, 맨땅에서 맨손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각 인생인 셈인데, 저처럼 템포 늦게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신경쓰지 않고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거든요.


그런 다음에는 남들과 비교하고 신경쓰는 대신,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걸 지키면 스스로를 아낌없이 칭찬해요. 남들이 몰라주는 거요? 알게 뭔가요. 내 인생을, 내 가족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스스로 세운 기준이 없으면, 자존감이 무너지기 쉽더라고요.


이 시기에 책을 내는 건, 지각 대장인 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기준 같은 겁니다. 일요일 밤 끝 모를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택했으니, 이런 스트레스 쯤이야. 기꺼이 감수해야죠.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나중에 책 나오면. 많이들 사줍시다. 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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