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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롷 Dec 28. 2023

죽을 수도 있겠다

12시간 구토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잠에서 깬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느낌. 어렴풋이 눈을 뜬 것 같기도 하고. 명치가 불편했고, 그래서 우로좌로 몇번 들썩 거리며 뒤집었다. 


어? 이거 뭐지?


갑자기 몰아친 메스꺼움. 침대가 힘들어 바닥으로 내려왔다. 등을 대고 누워있으면 좀 괜찮겠지 싶었는데. 눈을 뜨니 앞에 놓인 침대가 뱅글뱅글 3바퀴나 돈다. 눈을 감고 얼굴을 바닥에 댔는데도 계속 빙글빙글. 식은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화장실로 가서 거하게 한 번 게워내고. 나와서 누웠다 기어가서 토하다를 몇 번. 그러는 동안 눈앞은 계속 뱅글뱅글 돌았다. 두어 번 더 게워내고 물을 마셨다. 그러자 마신 물이 다시 쏟아져 나왔다. 물이 다해 목이 아플 때까지 계속된 구토. 아 참. 환장할 노릇.


난생 처음 경험해 본 고통이었다. 멀미에 약해 더 힘들었는지도. 식은땀은 그칠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명치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불쾌한 느낌이 꽤나 커졌다. 곤히 잠든 식구들이 중간중간 깨긴 했지만, 놀라서 달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떼굴떼굴 구르면서 그건 좀 섭섭하더만.


근데. 따지고 보면 양치기 소년 같은 처지라 섭섭해 할 일이 아니지. 술을 잘 못 하는 나는, 비즈니스 때문에 술 때문에 힘든 경우가 꽤 자주 있다. 피할 수 없는 술자리 중간에는 몰래 화장실에 가 게워낸 후 버티곤 한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늘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밤새 씨름을 한다. 아마 이번에도 그 정도 쯤으로 여겼겠지. 


욕실 앞에 드러누워 토하다 앓다를 반복했다. 아침이 될 때까지 토하고 신음하고 굴렀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이석증인가? 크리스마스 이브 일요일 아침에 문 연 병원이 없었다. 잠에서 깨 놀란 아내가 한참만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검은 고글을 씌우려는 의사 앞에서도 구토가 멈추질 않았다. 그래서 결국 검사를 못했다. 


링거와 안정제 주사를 맞고 한 시간 쯤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휴일이라 직원들이 퇴근해야 한다나.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 앞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구토.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처음부터 응급실에 갈 걸. 뇌 CT를 찍고, 심전도 검사를 하고, 피 검사를 했다.


구토가 심해 링거와 안정제를 맞았다. 한 시간 쯤 잠이 들었다. 다행히 뇌에도 심장에도 이상은 없다고 했다. 휴일이라 이틀 후 외래 진료를 예약해 주고 귀가하란다. 12시간 쯤 지났을까. 다행히 구토는 멎었다. 부어오른 것 같았던 명치의 답답함도 제법 내려간 듯 했다. 집에 돌아와 간신히 씻고 잠을 청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의사 선생님은 과로와 스트레스, 수면부족이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다시 그럴 때를 대비해 약을 처방해 주었지만, 증상이 없으면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불안불안하게 사흘이 지났다. 약간씩 싸할 때가 있지만... 아직까진 괜찮다. 


최근 잠을 못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건 맞는데. 건강을 좀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기한 경험. 그러나 정말 다시는 하고싶지 않은 경험.


모두들 건강 챙깁시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내달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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