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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볶음밥이 몹시 반가워지곤 해

-빠르고 힘세고 오래가는 식사

by 이건해



흔히 대충대충 아무 재료나 갖다 써서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비빔밥을 거론하고, 미디어에서도 어째서인지 크게 상심한 여주인공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양푼에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장면을 접할 수 있다. 양복 잘 차려입고 사는 상류층 남자 주인공이 그러는 경우는 아직 접한적이 없고, 일반적으로 잡다한 고생을 많이 해본 여주인공만 그런다. 아마 실제 일상과 가까운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소재인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막 먹는 음식으로 비빔밥보다는 볶음밥을 선호한다. 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거기서 자라지 않은 탓인지 비빔밥은 좋아한 적이 없다. 아무래도 출생지와 식성은 별 관련이 없는 듯하다. 반면에 볶음밥은 퍽 열심히 먹어왔다. 어릴 때부터 정석적으로 식사를 차리기에는 상황이 영 맞지 않을 때, 어머니께서 택하는 메뉴가 대체로 볶음밥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먹는 볶음밥은 계란과 양파와 당근을 주재료로 삼고 상황에 맞게 남은 불고기나 닭가슴살, 혹은 햄이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전부 크게 가릴 것 없이 맛이 있었다. 뜨거운 불에 달군 탄수화물 자체가 이미 대단히 맛있는 재료니까 그럴 법도 하다.


다만 볶음밥의 조리 과정 중에 상추나 청경채가 과도하게 투입되면 풀은 풀대로 질겅대는 맛을 내고 밥은 볶음밥이 아니라 뜨겁고 떡진 밥이 되어 매력이 심각하게 반감된다. 엄밀히 말해 그건 볶음밥이 아니라 뜨거운 비빔밥에 가깝다. 그래서 남이 해줄 때야 군소리없이 먹지만, 내가 할 때는 요리가 끝난 뒤에 얹어 먹는다. 뜨거운 불의 기운에 상극인 물의 기운을 끼얹는 것처럼 비과학적인 짓을 내 손으로 저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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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일본어번역가.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수상.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특별상 수상. 2024년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공모전 단편 우수상 수상. 협업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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