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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가 질리지 않는 비결

-소소한 다채로움이 지속성을 만든다

by 이건해

한국인이라면 김치를 사랑하기 마련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김치를 식사의 필수 반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터라 김치보다는 김치 찌개가 더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아닐까 싶다. 일단 김치만 놓고 밥을 먹기는 쉽지 않고 심지어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건 상당히 괴로운 일이 되지만, 김치 찌개만으로 밥을 먹는 것도, 그것을 반복하는 것도 비교적 수월한 일이다.


이 사실을 몸소 체험한 건 2022년이었다. 어머니가 골절로 한 달 넘게 입원 생활을 하는 동안 요리에 별 재주도 관심도 없는 아버지와 나 둘이서 식사를 알아서 해야만 했는데, 이때 가장 많이 먹은 게 김치찌개였기 때문이다. 물론 사정을 딱하게 여긴 친척과 친지들이 이따금 음식들을 선사해서 ‘반찬을 빨리 먹지 않으면 버려야 할 지경’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주 메뉴로 줄기차게 끊임없이 먹은 것은 김치 찌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치 찌개라고 해봐야 대단한 궁리를 해서 만든 게 아니라 김치를 적당량 넣고 고기와 두부를 추가해서 대충 끓일 뿐이었으니 이보다 더 단순하고 두고두고 먹을 음식을 만들 수 없었던 탓이다.


이렇게 끓인 찌개는 정말 줄기차게 먹었다. 김치의 소비 속도가 느려서 두 번 정도 먹고 나면 김치만 남는 터라 다시 두부와 스팸을 넣어서 또 끓였고, 리필한 김치 찌개를 또 두 번쯤 먹어야 비로소 김치 찌개의 한살이가 끝났다. 그러면 이제 뭔가 다른 음식을 주 메뉴로 먹어보고, 다음에는 또 김치 찌개를 끓였다.


이런 식으로 김치 찌개를 며칠간 먹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김치 찌개를 먹는 게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먹었다고만 기억한다. 지겹다는 느낌을 받지도 않았고 색다른 시도로 김치찌개에 맞먹는 메뉴를 개발해야만 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각별하게 기억하지도 않은 것이다. 마치 한국인이 다른 메뉴를 시도했다가도 결국은 쌀밥이라는 식성의 고향으로 돌아오듯 김치찌개로 돌아왔다. 그만큼 김치찌개는 내게 당연한 음식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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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일본어번역가.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수상.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특별상 수상. 2024년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공모전 단편 우수상 수상. 협업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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