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탐나는 음식은 옆에서 먹는 라면
라멘이 반드시 중간은 가는 메뉴라고 적은 바 있지만, 라면은 중간보다 더 나은 메뉴로 느껴진다. 라면보다 라멘이 낫다는 얘기는 아니고, 상황에 따라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라멘은 외식 리그에 있고, 라면은 간편식 리그에 있고 가격도 다르니 같은 선상에서 싸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긴 했으나 사실 내가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남들이 여차하면 야식으로도 해먹는 라면을 좀처럼 먹지 않는 이유는 대관절 무엇일까? 차를 끓이기 귀찮은 것처럼 물을 끓이고 라면을 익히는 작업이 귀찮기 때문일까? 쓰면서도 맥이 빠질 정도로 여기에 그럴듯한 이유가 없다. 그냥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라면이란 집에 다른 음식 놔두고 먹을 이유가 없는 불량식품이라는 이미지를 주입받았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건 대체로 내키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수많은 한국인이 성격 유형처럼 파악하고 있는 인스턴트 라면 취향이 없다. 불닭볶음면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먹어야 한다면 아무거나 먹어도 개의치 않는다. 보편적 한국인으로서 영 떳떳하지 못하다.
그러나 집을 떠나면 당장 라면이 왜 그렇게 유혹적이고 더 맛이 나는 음식으로 돌변하는지 모를 일이다. 특히 대학 시절에 엠티에 가서 흥청망청 술을 퍼마시면 다음날 먹는 라면은 천상의 음식이라도 되는듯이 맛있었다. 허물어진 영혼의 형체를 바로잡아주는 천사의 카이로프랙틱같은 맛이랄까. 찌뿌둥하고 멍하고 어지럽고 메슥대는 모든 컨디션이 어째서인지 매콤짭짤한 국물과 쫄깃한 면을 호로록 먹는 동안 빠르게 나아지는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라면이 해장에 별로 좋지 않다고 하는데, 경험적으로는 라면보다 나은 걸 찾을 수 없다. 마치 손을 따는 행위가 소화불량 치료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얘기와 비슷하다. 이 사소한 문화도 의학이 현상을 따라와야 하는 분야 아닐까?
더더욱 놀라운 건, 이렇게 먹는 해장 라면은 아무리 엉망으로 끓여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냄비에 끓인 라면의 형태를 하고 있는 한 그것은 먹는 이에게 치유를 준다. 아무리 슬픔과 고통이 점철되어도 인생이 존엄한 가치를 지니듯, 라면도 라면의 가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한 번은 친구가 불을 세게 놓아서 국물이 거의 다 쫄아든 라면을 먹게 된 적도 있는데, 이때 물을 더 끓여서 각자가 원하는 만큼 부어 먹으니 한 명이 끓였는데 모두가 자기 입맛에 맞는 라면을 먹게 되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라면의 생명력이란 이토록 끈질기고 그 은혜는 널리 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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