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힘세고 오래가는 식사
흔히 대충대충 아무 재료나 갖다 써서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비빔밥을 거론하고, 미디어에서도 어째서인지 크게 상심한 여주인공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양푼에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장면을 접할 수 있다. 양복 잘 차려입고 사는 상류층 남자 주인공이 그러는 경우는 아직 접한적이 없고, 일반적으로 잡다한 고생을 많이 해본 여주인공만 그런다. 아마 실제 일상과 가까운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소재인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막 먹는 음식으로 비빔밥보다는 볶음밥을 선호한다. 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거기서 자라지 않은 탓인지 비빔밥은 좋아한 적이 없다. 아무래도 출생지와 식성은 별 관련이 없는 듯하다. 반면에 볶음밥은 퍽 열심히 먹어왔다. 어릴 때부터 정석적으로 식사를 차리기에는 상황이 영 맞지 않을 때, 어머니께서 택하는 메뉴가 대체로 볶음밥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먹는 볶음밥은 계란과 양파와 당근을 주재료로 삼고 상황에 맞게 남은 불고기나 닭가슴살, 혹은 햄이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전부 크게 가릴 것 없이 맛이 있었다. 뜨거운 불에 달군 탄수화물 자체가 이미 대단히 맛있는 재료니까 그럴 법도 하다.
다만 볶음밥의 조리 과정 중에 상추나 청경채가 과도하게 투입되면 풀은 풀대로 질겅대는 맛을 내고 밥은 볶음밥이 아니라 뜨겁고 떡진 밥이 되어 매력이 심각하게 반감된다. 엄밀히 말해 그건 볶음밥이 아니라 뜨거운 비빔밥에 가깝다. 그래서 남이 해줄 때야 군소리없이 먹지만, 내가 할 때는 요리가 끝난 뒤에 얹어 먹는다. 뜨거운 불의 기운에 상극인 물의 기운을 끼얹는 것처럼 비과학적인 짓을 내 손으로 저지를 수 없다.
불의 기운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대학 시절에 자주 먹던 철판볶음밥은 정말로 맛이 좋았다. 돈까스와 마찬가지로 철판볶음밥은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 메뉴로, 어지간한 카페 테이블처럼 커다란 철판 팬에 볶아서 나온 밥을 일단 슬렁슬렁 퍼다가 먹은 다음 바닥에 눌어붙은 밥을 박박 긁어먹는 게 백미였다. 엄밀히 말해서 눌은 밥을 긁어먹기 위해 철판볶음밥을 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뜨겁고 기름지고 감칠맛이 도는 쌀밥에 적당한 ‘아작함’이 더해진 볶음밥의 정수를 그렇게 어렵게 채굴해 먹는 재미는 다른 식사에선 좀처럼 느끼기 힘들다. 인간의 생활 모든 부분이 더 편리한 쪽으로 발전해왔지만 철판볶음밥을 긁어먹는 건 불편한 만큼의 보람이 있는 작업이다. 정말로, 눌어붙은 줄 알았던 밥이 술술 떨어지거나, 직원이 와서 깨끗이 긁어주면 어쩐지 흥이 식는다. 한국인의 외식 메뉴 상당수가 최종적으로 밥을 볶아서 긁어먹는 것으로 완료된다는 점을 볼 때, 밥을 긁어먹는 기쁨은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새겨져, 아니 눌어붙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눌어붙은 밥이 볶음밥의 모든 것은 또 아닌지라, 철판에 나오지 않는 볶음밥도 충분히 맛있다. 특히 중국집 볶음밥이 매력적인데, 나는 중국집에 가거나 중국집 배달 음식을 먹을 때 짬뽕도 짜장도 다 먹고 싶어지면 볶음밥을 택하곤 한다. 짜장 소스도 나오고 짬뽕 국물도 먹을 수 있는데다 밥이 주는 포만감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화력에 볶아져 낱알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질감을 가진 쌀밥과 채소 약간, 그리고 고기 등의 재료를 한숟가락에 먹는 맛은 이미 다채롭고 완성적인데, 거기에 짜장 소스를 조금씩 비벼가며 먹자면 달콤짭짜름한 맛이 첨가되어 입안에 착착 감긴다. 기름기가 차오른다 싶으면 칼칼한 짬뽕 국물로 씻어내려 언제든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볶음밥이라는 메뉴 하나로 맛의 사이클이 완성되는 셈이다. 그래서 볶음밥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어 짜장소스도 짬뽕 국물도 내주지 않는 맛집은 선호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기대하고 가서 끝내주는 바이올린 독주만 듣고 나오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볶음밥을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적당한 기회가 되면 직접 해서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럴듯한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는 시도를 할 여유가 있던 시절이다. 그러나 몇 번을 반복해도 내 볶음밥은 서너가지 재료와 함께 밥을 팬에 짓눌러 데운 요상한 음식의 반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은 점심에 쌀밥 자체를 먹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잡다한 물건을 고치고 직접 만들어왔지만,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다. 짐작건대 기름을 덜 쓴 탓이 아닐까 의심하긴 하나, 다시 시도해서 멋지게 볶음밥 제조를 마스터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스파게티 만들 때도 손이 가는 게 귀찮아서 칼질이 필요한 재료 하나도 넣지 않는 인간이니 온갖 재료를 썰고 밥을 뒤섞어 볶아대는 요리를 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요컨대 요리인이 되기에는 근본적인 보상회로부터 잘못된 셈이다. 그래도 편한 방식을 택해서 적절히 발전시키는 게 경제성의 측면에서는 이점이 있으니, 스파게티나 샌드위치를 먹는 일상을 영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집에서 볶음밥을 실컷 해봤자 테프론 팬을 박박 긁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국가 음식이든 볶음밥은 대개 안정권에 있다)
볶음밥을 직접 해먹을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린 데에는 레토르트 식품의 발달도 한몫을 했다. 인터넷에서 누가 권하기에 냉동 볶음밥을 사서 먹어보니 너무나 훌륭했던 것이다. 한 팩을 꺼내서 그릇에 담고 뚜껑을 씌워 몇 분만 돌리면 뜨끈뜨끈하고 맛좋은 볶음밥 완성이다. 물분자의 진동으로 가열하는 전자레인지의 특성상 온도가 낮아 불과 기름의 기운이 별로 느껴지지 않긴 하지만, 이만하면 꼬들한 식감도 채소와 고기의 맛도 제법 잘 살아있다. 부족한 부분을 강한 간으로 덮어씌운 게 아닌가 싶긴 해도 밥 약간, 또는 계란 하나를 더해서 먹으면 적당한 수준이 된다. 이러니 볶음밥을 직접 해먹을리가 있나.
덕분에 냉동 볶음밥은 냉동실 일부를 늘 차지하는 상비품목이 되었다. 아침에 방탄커피 대신 꼭 밥을 먹어야하는 경우에 이것을 먹는다. 물론 허겁지겁 집을 나서야 하는 날에도 어지간하면 방탄커피만 먹는 편이지만, 어떻게든 냉동 볶음밥을 데워 먹는 경우가 있으니, 다름아닌 등산하러 가는 날이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실험해본 결과, 쌀밥을 챙겨 먹고 나가는 게 압도적으로 나았기 때문이다. 그냥 기분만 만족스러운 게 아니라 지치는 시점이 명백히 늦게 온다. 방탄 커피만 먹고 나서면 두 시간만 걸어도 지쳐서 에너지바나 포도당 캔디 따위를 까먹으며 ‘나도 이제 멀고 험한 길 나돌아다니긴 글렀군’ 하고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게 되는데, 볶음밥에 계란을 하나 까서 먹고 출발하면 서너시간쯤 걸은 뒤에야 ‘식사는 더 멋진 곳에서 하고 싶었는데’ 하며 자리에 앉게 된다. 빨리 맛있게 섭취할 수 있는 고품질의 연료로서 냉동 볶음밥처럼 훌륭한 식사도 드문 셈이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즐기러 나선 해외 여행을 할 때도 볶음밥을 만나면 은근히 반색하게 된다. ‘여기까지 와서 굳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안도한다. 귀찮게 챙겨먹는 것 자체를 꺼리고 쌀밥으로부터 제법 거리를 둔 나는 자신이 얼마든지 쌀밥을 잊고 살 수 있는 독립적 식성과 자아를 갖췄다고 자평하고 있었는데, 한중일을 벗어나면 이틀만 현지식을 먹어도 뭔가 헛헛하고 질리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쌀밥을 먹으면 그야말로 맛의 근원을 섭취하는 것처럼 미각적 즐거움이 폭발하고 익숙한 포만감에 행복해진다. 한국에서 멀어지면 자포니카 쌀이 드물어지는 만큼 이런 식으로 먹게 되는 건 보통 인디카 쌀을 써도 심각한 차이가 생기지 않는 볶음밥인데, 낱알이 길든가 짧든가 쌀밥이면 다 반갑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헛말이 아닌 셈이다.
아무튼 쌀밥과 거리를 뒀다가 다시 먹어보면 내가 그렇게까지 특별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볶음밥이 여러 재료를 뒤섞어 강한 불에 볶아냄으로써 유기적인 조합물이 되듯이, 나의 정신력도 육체적 기운도 보람과 기쁨도 대부분 몸과 밥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나의 자아도 능력도 나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왔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이유가 되었든 밥과 온갖 재료를 철판에 때려넣고 가열하며 뒤섞어볼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 선조와 그것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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