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 애호가 은퇴와 복귀의 꿈
어릴 때부터 매운 음식을 좋아했다. 과자도 매운 것을 선호했고 반찬도 매운 것부터 손이 갔다. 남들보다 잘 먹기도 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친구들과 내기 삼아 피자 한 조각에 핫소스 세 개를 다 짜넣고 먹어치울 정도였다. 입안이 얼얼해지고 두피에서 땀이 배어나는 인내심의 한계에서 시원한 쾌감을 즐겼던 것이다. 매운맛을 압도적으로 선호해서 맵지 않으면 맛이 없다고까지 느끼는 한국인의 식문화에 최적화된 식성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한국의 이 매콤한 향락은 2000년대 초반쯤에 들어서자 어째서인지 그동안 겪어온 것과도 다른 속도로 악셀을 밟기 시작했다. 불닭이라는 이름으로 미친듯이 매운 찜닭이 나왔고, 닭꼬치도 터무니없이 매운 소스를 발라서 팔기 시작했다. 이때 나도 뭣모르고 유행따라 불닭을 시켜먹은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전혀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매워서 배탈까지 나고 말았다. 아마 캡사이신을 대중없이 때려넣은 게 아닐까 싶은데, 이날 이후로 매운 음식을 무한히 애정하던 나조차 음식이란 작작 매워야 음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닭꼬치도 최고로 매운 맛을 친구들과 나눠먹어본 이후로 다같이 욕설을 쏟아내고 적당히 매운 맛만 먹게 되었다. 취향과 건강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기왕이면 매운맛을 고르는 취향 자체는 어디 가지 않았던데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는 대중 없이 술을 마시는 문화에 젖어버린 탓에 결국은 1년만에 내장이 고장나고 말았다. 식도염에 걸린 것이다. 게다가 심리적인 문제인지 위장의 문제인지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속이 뒤집혀 토해내게 되었다. 덕분에 석 달 정도는 건강에 해가 없을 만한 음식만 먹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극적이고 건강에 해로운 음식들을 특히 애정하는 나로서는 대단히 괴로운 나날이었다. 어찌나 참기 힘든지 친구들이 분식을 먹을 때 튀김을 씹어서 맛만 보고 다시 뱉어낸 적도 있다. 로마 귀족같은 향락으로 보일 법한 짓이었지만, 이 짓도 해보면 초월적인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음식의 맛이란 미각과 후각으로 느끼는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씹어삼켜서 포만감으로 전환하는 과정이야말로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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