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청량한 냉모밀을 그리며

-더위를 뚫고 다같이 호로록 먹으러 가는 맛

by 이건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내가 ‘냉모밀’이란 음식을 처음 제대로 먹어본 것은 대학에 들어간 뒤였다. 그때까지 냉모밀을 구경조차 한 기억이 없다. 가족도 외식을 워낙 드물게 하는데다, 나도 굳이 정해진 틀 밖에서 식사할 필요를 잘 느끼지 못해서 ‘냉모밀’을 사 먹을 일도 없었다. 심지어 주변에서도 냉모밀을 사먹는 친구가 없었다. 하기야 칡냉면을 먹으면 먹었지, 냉모밀처럼 어중간하게 배를 채우는 음식을 남고생들이 먹을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리하여 대학 입학 후 슬슬 더워질 시기에 학교 앞의 조그마한 일식집에서 점심으로 냉모밀을 시킨 것은 일종의 우연이었다. 먹어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게 싼 메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먹는 법도 정확히 몰라서 같이 갔던 선배들이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처음 먹는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는 당연히 남에게 배워야 하니 그것 자체는 딱히 민망한 일이 아니었지만, 요즘까지도 이따금 후배들에게 새로운 음식 먹는 법을 배우곤 한다는 사실은 생각해보니 좀 민망하다. 예나 지금이나 난 식문화에 있어선 문외한이다.


아무튼 그렇게 냉모밀을 처음으로 제대로 먹어본 뒤로는 냉모밀에 반쯤 중독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일단 싸서 좋았다. 가성비를 따진다면 학식이 압도적으로 싸고 배부른 메뉴지만,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고 대학생은 학식만으로 살 수 없는 법. 식사의 풍경을 종종 바꿔줘야 식생활에 생기가 돌아오는데, 그렇게 찾는 외식 메뉴 중에서 냉모밀은 부담이 없어서 매력적이었다. 그만큼 양은 좀 적은 편이지만, 여차하면 점심을 두유 한 팩으로 해결하기도 했으니 양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약간 감질나는 정도가 딱 좋지 않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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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일본어번역가. 황금가지 공모전 우수상 수상.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특별상 수상. 2024년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공모전 단편 우수상 수상. 협업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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