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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표현주의 : 자유와 코드의 최소화

자유와 코드의 최소화

by jeromeNa

글자가 많은 전단지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좋은 모든 점을 다 작성하면 좋은 게 없는 것이다. 모든 문구가 중요해서 모든 글자를 크고, 볼드체로 해도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중요한 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많으면 많을수록 핵심이 없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건물의 간판은 형형색색의 모든 간판이 크고, 자극적이다. 간판이 다 보이지만, 원하는 걸 찾기란 힘들다.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더 잘 보이게 제작하지만, 오히려 보이지 않는다.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초심자도 마찬가지다. 코드가 많을수록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든다. 많은 줄, 많은 함수, 많은 조건은 마치 실력의 증표처럼 보인다. 하지만, 길고 복잡함만 있을 뿐, 좋은 코드는 아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좋은 코드는 적은 코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적다는 것은 미완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남겨두었다는 완결성이다. 마치 압축되고 함축된 시의 문장이 더 많은 의미를 품듯, 정제된 코드는 적은 줄로 더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


result = []
for i in range(1, 11):
if i % 2 == 0:
result.append(i ** 2)
print(result)


위의 예시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 중 짝수의 제곱을 구하는 일반적인 코드 방식이다.


result = [i ** 2 for i in range(1, 11) if i % 2 == 0]
print(result)


이를 한 줄로 동일한 결과를 낼 수가 있고, 가독성 또한 선명하다.


Collections.sort(myList);


위의 코드는 myList라는 배열을 정렬하는 코드이다. 이 단순한 한 줄은 내부에서 정렬 알고리즘을 선택하고, 비교하고, 스왑 하며, 최적의 결과를 만든다. 사용자는 그 복잡한 과정을 몰라도 되고, 알 필요도 없다. 오직 “정렬된다”는 의미만 이해하면 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유럽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폐허 상태에 있었다. 1930년대부터 2차 대전 중까지 나치 독일과 파시즘의 압제를 피해 많은 예술가들이 미국 뉴욕으로 망명했다. 대표적으로 마르셀 뒤샹, 피트 몬드리안,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브르통 등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로 인해 20세기 초까지 예술의 중심이었던 파리가 쇠퇴하고, 세계 예술의 중심이 뉴욕으로 이동하게 된다.


미국은 전쟁 승리 이후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 국가로 자리 잡게 되고, 냉전 체제 속에서 자유로운 개인 표현이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 꿈, 충동 이론이 예술가의 표현에 영향을 주었고, 초현실주의의 무의식 시각화가 표현으로 이어지면서 추상 표현주의가 태동하게 된다.


이전까지의 회화는 형태를 가진 대상을 그렸다. 그러나 추상 표현주의는 형태를 버리고 감정을 붓질로 직접 기록하는 행위이다.


AD_4nXd4yam1eell9ZTOfWI4V15QAwZby65cr2L64JwrBHi9SXM5JNJdSxSi20LOqywdSv5L5G518b2n-SGgXc3EU0rCXOhm0MLlAeuD69LXswEINkznQxiQKhgOJ8ZGm3tuMCM_k7MRFQ?key=GdOjhPNd0mJvh694QQNh9_nX 잭슨 폴락, <No. 5>, 1948, Oil on fiberboard, 개인 소장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은 "행위 회화(Action Painting)"의 대표 화가로 드리핑 기법을 창안했다. 드리핑 기법은 캔버스 위에 서서, 물감을 떨어뜨리고, 흘리고, 흔들며 생성한 리듬과 흔적을 그리는 기법이다. <No. 5>는 감정과 움직임이 화면 전체에 퍼져 있는 대표적 비대상 회화이다.


AD_4nXffUCKcP5ScPoof2ypT8eh1GW2Iylm6qMRx1sEgCa_8NdEovKdu_DMygeVK8ruXoSqOQcF0pdCB-s53TjNrSMRT3ZL_KqNRw_vYkBvej-29W5ASw2NkL_4QZ5LYKPiQjEyUNh9g?key=GdOjhPNd0mJvh694QQNh9_nX 마크 로스코, <Orange, Red, Yellow>, 1961, Oil on canvas, 개인 소장


마크 로스코 (Mark Rothko)는 “색면 추상(Color Field Painting)”의 대표 화가이다. 위 작품은 단순한 직사각형 색면들이 겹쳐지고 번지며 화면을 채우고, 명확한 구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에게 감정적 울림을 유도한다. 색은 형태가 아니라 감정의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표현한 작품이다.




추상 표현주의는 형상도 없고, 이야기조차 없지만, 그 자리에 감정, 몸, 충동, 자유를 남겼다. 추상 표현주의의 작품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맞서고, 참여하는 회화이다.


폴락은 회화에서 형상, 구도, 전통적 구분을 제거함으로써 회화 행위 그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가장 자유로운 예술은 행위 그 자체가 의미가 되는 예술임을 보여준다. 프로그래밍 역시 가장 좋은 코드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코드다. 덜어낸 만큼 강해지고, 간결해질수록 깊어진다. 최소한의 코드란, 최대한의 생각이 담긴 구조이다.


코드를 최소화한다는 것은 줄이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의미 있게 추상화"하고 "중복을 제거"하고 "흐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즉 단순화가 아니라, 명료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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