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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세상과의 대화, 자신과의 화해

세상과 나 사이의 고유한 균형점

by jeromeNa

창작은 두 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뻗어 나갑니다. 하나는 바깥을 향해 세상과 이어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안쪽을 향해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길입니다. 이 두 길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닌 하나로 맞물려 있습니다.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는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물은 자신만의 속도로 흐르면서도 주변의 지형과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때로는 바위를 만나 돌아가고, 때로는 좁은 협곡을 지나며 빠르게 흐르고, 때로는 넓은 평야에서 천천히 머뭅니다. 이 모든 과정이 강의 모습을 만들어갑니다. 창작자의 삶도 같습니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면서도 세상의 반응과 끊임없이 조우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갑니다.


세상의 시선과 마주하는 용기


창작은 본질적으로 소통입니다. 혼자만의 방에서 조용히 시작되지만, 언젠가는 세상을 향해 문을 열게 됩니다. 그 문턱을 넘는 순간, 작품은 더 이상 창작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마치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는 부모의 마음처럼,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작품을 공개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타인의 시선 앞에 놓는 일입니다. 깃허브에 코드를 올리고, 블로그에 글을 발행하며, 작품을 전시하는 순간. 이때부터 창작물은 수많은 시선과 평가를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격려의 말을 전하고, 어떤 이는 날카로운 비평을 남기며, 또 어떤 이는 조용히 지나갑니다.


처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습니다. 며칠 밤을 고민하며 작성한 코드에 대해 "비효율적이다"라는 평가를 받거나, 정성껏 쓴 글에 "이해가 어렵다"는 댓글이 달릴 때. 그 순간의 아픔은 단순한 작품 비판을 넘어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피드백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합니다. 비판도 일종의 관심이며, 무관심보다는 날카로운 지적이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 시간을 들여 의견을 남겼다는 것 자체가 작품이 어떤 형태로든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의 시선은 놀랍도록 다양합니다. 같은 작품을 두고도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옵니다. 한 사람에게는 영감을 주는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평범한 것이 또 다른 이에게는 특별할 수 있습니다. 각자가 가진 경험과 배경, 현재의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비평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근거 없는 비난이나 악의적인 공격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선별적 수용의 지혜입니다. 어떤 의견은 깊이 새겨듣고, 어떤 것은 참고만 하며, 어떤 것은 과감히 흘려보낼 줄 아는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긍정적인 피드백 역시 양면성을 가집니다. 격려와 칭찬은 힘이 되지만, 때로는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와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저번 작품이 정말 좋았는데..."라는 말속에는 응원과 부담이 동시에 담겨있습니다. 이런 기대감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도 창작자가 배워야 할 중요한 기술입니다.


내면의 비평가와 마주 앉기


세상의 목소리가 때로 날카롭다면, 내면의 비평가는 더욱 가혹할 때가 많습니다. 타인은 보지 못하는 미세한 결함들이 창작자의 눈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입니다. 코드 한 줄의 미묘한 비효율성, 문장 하나의 어색한 호흡, 색조의 미세한 불균형. 이런 세부사항들이 계속 신경 쓰여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끝없이 수정만 반복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내면의 비평가는 흔히 완벽주의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아직 부족해", "조금만 더 다듬자", "이 정도로는 세상에 내놓을 수 없어". 이런 목소리들은 때로 창작의 흐름을 막고, 심지어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근원을 들여다보면 완벽이라기보다는 강한 자기 만족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거절당할 것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면의 비평가와 화해하는 첫걸음은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목소리를 적으로 여기고 억누르려 하면 오히려 더 강해집니다. 대신 그것이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하려 노력해 봅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도, 실수를 두려워하는 마음도 모두 더 나은 결과를 만들고 싶은 진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때로는 내면의 비평가가 유용한 조언자가 되기도 합니다. 무분별한 자기 확신보다는 건전한 자기 의심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목소리가 창작을 멈추게 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더 나은 창작을 위한 디딤돌이 되도록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입니다.


자신과의 대화를 기록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왜 이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내가 추구하는 기준은 정말 내 것일까?", "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것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대화와 화해의 순환, 그리고 성장


세상과의 대화와 자신과의 화해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내면과 화해합니다. 그리고 이 화해를 바탕으로 다시 세상과 더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순환 과정에서 창작자는 '타협'이 아닌 '확장'을 경험합니다. 외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닫혀있지 않은 상태. 마치 재즈 연주자가 정해진 멜로디를 연주하면서도 자신만의 즉흥을 더하는 것처럼, 창작자는 세상과 자신 사이에서 독특한 균형을 찾아갑니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완벽을 기다리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 불완전하더라도 세상과 만나는 것이 창작의 본질에 더 가깝습니다. 때로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작품보다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는 불완전한 작품이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불완전함은 연결의 시작점이 됩니다. 완벽해 보이는 작품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때로는 거리감을 만들기도 합니다. 반면 개선의 여지가 보이는 작품은 참여와 기여를 이끌어냅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활발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함께 더 나은 것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들을 연결합니다.


창작 과정에서 만나는 특별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자신도 만족하지 못했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혹독한 비평을 받았던 부분이 나중에 가장 큰 강점이 되었을 때. 이런 경험들은 세상의 기준과 자신의 기준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히려 창작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창작자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갑니다. 언제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언제 내면의 직관을 따를지. 어떤 비평은 깊이 새겨듣고, 어떤 칭찬은 가볍게 받아들일지. 이런 선택들이 쌓여 창작자만의 고유한 스타일과 철학이 형성됩니다.


계속되는 대화, 깊어지는 화해


창작자의 삶은 끊임없는 대화의 연속입니다. 작품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걸고, 세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응답합니다. 때로는 따뜻한 격려로, 때로는 차가운 비평으로, 때로는 무관심한 침묵으로. 이 모든 반응들이 모여 창작자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됩니다.


내면과의 화해도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내면의 비평가는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완벽주의의 유혹이 찾아옵니다. 이제는 그 목소리와 싸우는 대신 대화를 시도합니다. "네 걱정을 이해해.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가치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 내면과 화해를 합니다.


세상과의 대화, 자신과의 화해는 도착할 수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계속 걸어가야 할 여정입니다. 완전한 이해나 완벽한 화해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 자체가 창작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들며, 창작자를 더욱 성숙한 존재로 이끕니다.


창작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용기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자신 안에 품는 개방성입니다. 밖으로 표현하고 안으로 수용하는, 이 두 움직임이 만나는 지점에서 창작은 단순한 제작을 넘어섭니다. 소통이 되고, 연결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성장이 됩니다.


오늘도 수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업 공간에서 이 대화와 화해의 과정을 거치고 있을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예상치 못한 비평을 받으면서도 "이것도 배움의 과정"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창작의 아름다움은 불완전한 조화 속에 있습니다. 세상과 나, 타인과 자신,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서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여정. 그 과정이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고, 창작자를 더욱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갑니다.


나답게 만든다는 것은 세상과 나 사이의 고유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남의 기준에 매몰되지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화해하며 성장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세상과 만나고 자신과 화해해 가는 여정의 소중한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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