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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당신도 창작자일 수 있다

by jeromeNa

지금까지 긴 여정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빈 화면 앞에서 느끼는 떨림과 막막함, 첫 줄을 쓰는 용기, 실패를 마주하는 순간들, 그리고 마침내 세상과 작품을 나누는 기쁨까지. 창작의 모든 순간을 되짚어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혼자만의 고요한 작업실에서 시작해 점차 넓은 공동체로 나아가는 그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건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구나", "나와는 조금 거리가 먼 세계의 이야기네"라는 생각입니다. 무대 위의 공연을 관객석에서 바라보듯, 창작의 세계를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창작은 결코 특별한 누군가만을 위해 예약된 무대가 아닙니다. 선택받은 소수의 전유물도,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특권도 아닙니다.


잠시 일상을 돌아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커피를 내리며 물의 온도를 가늠하고 원두의 양을 조절했다면, 그 순간에도 작은 창작이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취향과 그날의 기분을 담아 한 잔의 커피를 완성하는 것도 분명한 창작입니다.


일기장에 오늘 하루를 기록하는 것 또한 수많은 순간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옮기는 과정.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생각에 형태를 부여하는 그 모든 과정이 글쓰기이자 창작입니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모티콘을 선택할지, 어떤 단어로 마음을 전할지 고민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표현을 향한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고, 오해 없이 마음을 전달하려는 그 세심한 배려 속에 소통을 위한 창작이 숨어 있습니다.


문턱 너머의 풍경, '자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많은 사람들이 창작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늘 완성된 작품만을 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점의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책들, 갤러리 벽면을 장식하는 그림들,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들. 이 모든 것들은 겉으로는 완벽해 보입니다. 매끄럽고, 정돈되어 있고, 흠잡을 데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긴 여정의 마지막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뒤편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처음 시작했다가 멈춘 순간들, 전부 지우고 다시 시작한 날들,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었던 시간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서 한 걸음씩 나아간 용기의 순간들. 이 모든 과정이 켜켜이 쌓여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태어납니다.


첫 발걸음은 생각보다 훨씬 작아도 됩니다. 거창한 계획이나 완벽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메모장을 열고 떠오르는 생각을 한 줄 적는 것, 종이 위에 연필을 들고 마음 가는 대로 선 하나를 긋는 것, 컴퓨터 화면에 'Hello World'라는 단순한 문구를 출력해 보는 것. 이런 아주 작고 소박한 시작이면 충분합니다.


모든 위대한 창작물도 이런 작은 시작에서 출발했습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첫 문장에서 시작했고, 피카소의 걸작도 캔버스 위의 첫 붓질에서 시작했으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운영체제도 단 한 줄의 코드에서 시작했습니다. 씨앗이 땅에 묻히는 순간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씨앗 안에는 거대한 나무로 자라날 모든 가능성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재능이 부족해서도 시간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아마도 가장 큰 장애물은 '자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전공자가 아닌데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을까?"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는데 글을 써도 될까?" "미술학원 한 번 다녀본 적 없는데 그림을 그려도 되나?" "아직 실력이 부족한데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울립니다. 마치 창작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특별한 입장권이 필요한 것처럼, 누군가의 허락이나 인증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면, 누가 창작의 자격증을 발급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있다고 해도 자격증 발급으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누가 "자, 이제부터 당신은 창작자입니다"라고 선언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창작자가 되는 순간은 누군가가 인정해 주거나 허락해 줄 때가 아닙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는 그 순간입니다. 종이 위에 첫 선을 긋는 순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첫 문장을 적는 순간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며, 첫 코드를 작성하는 순간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타인의 인정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완벽한 실력을 갖출 때까지 기다릴 이유도 없습니다. 창작은 허가제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이며, 그 문을 여는 열쇠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선택입니다.


일상 속 창작의 씨앗들


창작의 재료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특별한 영감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내려오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풍부한 창작의 재료는 평범한 일상 속에 흩어져 있습니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풍경을 생각해 봅니다. 매일 같은 길을 걷지만, 계절이 바뀌면서 나무의 색이 변하고, 하늘의 빛깔이 달라지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바뀝니다. 이 모든 변화가 관찰의 대상이 되고, 표현의 소재가 됩니다.


점심시간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료와 나눈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고, 친구의 고민을 들으며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이해하게 되며, 혼자 조용히 식사하는 시간에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이 모든 경험이 창작의 양분이 됩니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떠오르는 생각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느끼는 아쉬움, 내일에 대한 기대, 문득 떠오르는 옛 기억들이 생각의 조각으로 모여 이야기가 되고, 그림이 되며, 프로그램의 아이디어가 됩니다.


매일 사용하는 도구들 속에도 창작이 숨어 있습니다. 엑셀로 가계부를 정리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고, 카테고리별로 분류하며, 함수를 사용해 합계를 구하고, 차트로 시각화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는 프로그래밍의 시작입니다. 조건을 설정하고, 패턴을 찾으며, 더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창작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일상적인 행위도 시각 예술입니다. 어떤 각도에서 찍을지 고민하고, 빛의 방향을 고려하며, 프레임 안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뺄지 결정합니다. 찍은 사진에 필터를 적용하고, 밝기와 대비를 조절하며, 자신만의 느낌을 더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시각적 표현을 다듬는 창작의 과정입니다.


요리는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창작적 선택이 숨어 있습니다. 재료의 양을 조절하고, 조리 시간을 가늠하며, 간을 맞추고, 담음새를 고민합니다. 가족의 입맛을 고려해 약간의 변주를 더하고, 계절에 맞는 재료로 대체하며, 자신만의 비법을 하나씩 만들어갑니다.


정원을 가꾸는 일, 방을 꾸미는 일, 선물을 고르는 일, 옷을 코디하는 일. 이 모든 일상의 선택 속에 창작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조합하고, 배치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행위가 넓은 의미의 창작입니다.


디지털 시대는 이런 일상적 창작을 더욱 쉽게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비싼 장비와 전문적인 도구가 필요했던 일들이 이제는 손 안의 스마트폰 하나로 가능해졌습니다. 동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일, 음악을 만들고 믹싱 하는 일,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하는 일. 이 모든 것이 무료 앱 하나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웹브라우저만 있으면 바로 코딩을 시작할 수 있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전 세계와 공유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 진입장벽이 역사상 가장 낮아진 지금, 창작을 가로막는 것은 도구의 부재가 아니라 시작하려는 의지와 용기의 문제입니다.


두려움을 친구로, 실패를 경험치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은 쉽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내가 만든 것을 과연 누가 봐줄까?" "혹시 비웃음을 받으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못하면 어쩌지?"


이런 두려움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창작의 길을 걸어간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아니 수없이 많이 마주했던 감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려움을 어떻게 대하느냐입니다.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두려움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늘어도 새로운 도전 앞에서는 여전히 두려움을 느낍니다. 대신 배워야 할 것은 두려움과 함께 걸어가는 법입니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시도하려는 일이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 대충 해도 되는 일에는 두려움도 느끼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진심을 담아 무언가를 하려 할 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처음에는 혼자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비공개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혼자만 보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거나, 로컬 컴퓨터에서만 실행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이런 사적인 공간에서 충분히 연습하고 자신감을 쌓은 다음, 준비가 되었을 때 조금씩 세상과 공유하면 됩니다.


실패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도 중요합니다. 흔히 실패를 부정적인 것, 피해야 할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창작의 세계에서 실패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며, 좌절이 아니라 배움입니다.


코드가 에러를 내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고, 그림이 어색하면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보이며, 글이 읽기 어려우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방향이 생깁니다. 실패는 우리에게 "이 방법은 안 되는구나"라는 소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안 되는 방법을 하나씩 제외해가다 보면, 결국 되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게임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처음 하는 게임에서 계속 실패하고 죽지만, 그때마다 조금씩 더 배우고 익숙해집니다. 어느 순간 점프해야 하는지, 어디에 함정이 있는지, 보스의 패턴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됩니다. 창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라는 경험치를 쌓아가며 조금씩 레벨 업하는 것입니다.


작은 습관으로 시작하는 것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한 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면 금세 지치고 포기하게 됩니다. 대신 아주 작은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매일 한 문장씩만 쓰기. 단 한 문장이지만 1년이면 365개의 문장이 됩니다. 그것은 충분히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분량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스케치하기. 52주가 지나면 52장의 그림이 쌓입니다. 작은 작품집을 만들기에 충분한 양입니다. 한 달에 하나씩 간단한 프로그램 만들기. 1년이면 12개의 프로젝트가 완성됩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꾸준함입니다. 오늘 쓴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오늘 그린 그림이 엉성해도, 오늘 만든 프로그램이 버그투성이어도 괜찮습니다.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것이고, 모레는 또 조금 더 발전할 겁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한, 실패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과정이고 성장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당신의 이야기


창작자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도, 작품이 인정받는 사람도 아닙니다. 창작자는 단순히 창작하는 사람입니다. 창작자가 되는 것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그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창작자가 됩니다.


내가 쓴 글을 '글'이라고 부르는 순간,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작품'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내가 그린 그림을 '표현'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 순간부터 창작자의 삶이 시작됩니다. 타인의 인정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질문을 바꿔봅시다. "나는 창작자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오늘 나는 무엇을 창작했는가?"로 말입니다. 그 답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기장에 적은 세 줄의 문장일 수도 있고, 메모장에 끄적인 아이디어일 수도 있으며, 노트 귀퉁이에 그린 낙서일 수도 있습니다.


창작은 특별한 순간에만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매일의 작은 선택과 시도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듯 자연스럽게, 저녁에 하루를 되돌아보듯 일상적으로, 창작은 삶의 일부가 됩니다.


이 연재를 읽으며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면, 당신 안에 잠들어 있던 창작의 욕구가 깨어나는 신호일 것입니다. "언젠가는 해봐야지"라고 미루지 말고, 바로 "오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언젠가”는 없습니다.


창작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 문 앞에는 자격 심사를 하는 문지기도, 통과해야 할 시험도 없습니다. 오직 당신의 선택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문턱을 넘는 데 필요한 것은 특별한 재능이나 완벽한 실력이 아니라, 단지 한 걸음을 내딛는 작은 용기입니다.


당신의 속도로, 당신의 방식으로, 당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됩니다. 작든 크든, 단순하든 복잡하든, 서툴든 능숙하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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