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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알고리즘은 나를 알지만, 나는 나를 모른다

by jeromeNa

알고리즘은 나를 알지만, 나는 나를 모른다


어느 날 밤, 유튜브가 내게 영상 하나를 추천했다. 20년 전 즐겨 듣던 노래의 라이브 영상이었다. 그 시절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무엇을 했었나. 재생 버튼을 누르자 잊고 있던 감정들이 밀려왔다. 알고리즘은 어떻게 이걸 알았을까. 나조차 잊고 있던 것을…


우리는 이제 놀라울 정도로 잘 '읽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지갑을 여는지, 어떤 문장에서 스크롤을 멈추는지. 수많은 시스템이 나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예측한다. 그들은 내가 다음에 무엇을 원할지 나보다 먼저 안다.


편리하다. 때로는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감탄 속에 묘한 불편함이 섞여 있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찜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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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만에 동료에게 문자가 왔다. "요즘 어때?" 단순한 안부였다. 그런데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떻다고 해야 할까. 바쁘다? 괜찮다? 그럭저럭? 어떤 대답도 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알고, 내 소비 패턴을 알고, 내 수면 시간까지 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내가 요즘 어떤지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이상한 일이다. 나에 대한 데이터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데, 나에 대한 이해는 그 어느 때보다 흐릿하다.


혹시 이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점점 더 '설명되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격은 네 글자로, 취향은 태그로, 사람은 프로필로.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그 단순함에 스스로를 맞추기 시작한다.


"나는 INFP야." "나는 미니멀리스트야." "나는 워커홀릭이야."


이런 문장들이 자기소개를 대신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일까. 그 꼬리표 뒤에 있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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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AI가 우리를 분석하는 시대, 데이터가 사람을 정의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잃어가고 있을까. 효율과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서사'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서사란 한 사람이 어떤 시간을 통과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력서에 적히는 경력이 아니라, 그 경력 사이사이에 있었던 망설임과 용기와 후회와 깨달음의 궤적이다. 맥락이란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놓인 배경이다. 똑같은 침묵도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침묵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데이터는 '무엇'을 포착하지만, '왜'는 포착하지 못한다. 알고리즘은 패턴을 읽지만, 그 패턴이 만들어진 사연은 읽지 못한다. 그리고 그 '왜'와 '사연'이야말로 한 사람을 그 사람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연재는 먼저 우리가 어떻게 '읽히는' 존재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짚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 다음, 서사와 맥락이라는 개념이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이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야기한다. 서사는 저절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은 흐려지고, 왜곡되고, 사라진다. 서사가 서사로 남으려면 기록되어야 한다.




알고리즘은 나를 안다. 하지만 그것이 아는 나는 패턴으로서의 나, 데이터로서의 나, 유형으로서의 나다.


나는 나를 모른다. 하지만 그 모름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이 연재가 그 여정의 작은 지도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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