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기 바쁜데 왜, 문화를 신경써야 하나
나는 기업문화(더불어 HR. 문화와 HR은 직결되어 있다)라는 것은 조기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믿기에, 스타트업의 문화 고민은 사치라는 주장에 반박한다.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다:
아이가 태어났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 아이가 18세의 청년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는가? - 예컨데 교양있고, 문화적이고, 옳은 질문을 할 줄 알고, 매너가 있고, 운동을 즐기고, 논리적 커뮤니케이션에 능하고, 팀플레이에 익숙하며, 호기심이 넘치고, 긍정적이고, 온화하지만 남을 이끌 수 있는 리더의 타입이면 어떻겠는가.
그런데 (지식을 주입시키기에 급급한) 학교와 학원 다니고 수험생이라 바쁘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18세가 되었다. 자 다 컸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교양과 문화와 매너와 운동습관과 논리적 커뮤니케이션과 호기심과 낙천적인 성격과 진취적인 성격을 가르쳐야지? 사람이 잘 안바뀐다는 건 진리인데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래의 원하는 모습이 있다면 뚜렷한 원칙과 신념을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밥상 앞에 처음 앉을때부터, 글을 처음 깨칠때부터, 첫 질문을 할 때부터 가르쳐야 자연스레 몸에 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회사도 마찬가지. 외형에 집중하느라 여러 해를 보낸 후 몇 백, 몇 천명의 조직이 된 후에야 비로소 문화를 잡고자 하면 많이 어려운 정도가 아니다. 많은 기성기업에서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문화'는 듣기에 좋은 구호일 뿐, 아마도 안 바뀔 거라는 공감대가 퍼져 있는걸 보았다. 서로 완전히 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자란 35세 이하의 젊은 세대와, 45세이상의 기성세대가 한 회사에서 충돌한다. 젊은 세대 입장에서 불만이 많아도 권한은 주로 기성세대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회의 문화하나 바꾸고자 해도 늘 하다가 말게 된다. 윗 공기와 아랫 공기와 옆 공기가 다르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고 할 생각도 방법도 없어서 영원한 평행선이다. 저기 앉아있는 저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괴로워 하고 될 일도 안되는데, 어떻게 여태 자리를 지키고 승진까지 하는지 의아하다. 무의미한 보고서 단어 수정에 이렇게까지 시간을 써야 하나. 휴가쓰려면 왜 부장님 기분 좋을 때 물어봐야 하나. 뭘 하나 제안하려면 왜 이리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나. 토요일에 산에 가는 걸 가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왜 아무도 없나. 이런 회의 할거면 왜 하나 등등.
창업 하면서 Day 1부터 문화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런 기성 기업들의 사례에 익숙해져 생긴 위급한 마음과 이에 따른 조기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사업자등록증 만들기도 전에문화수칙부터 만들기도 했다. 문화가 제대로 정착이 되어야 시간이 갈 수록 정말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High Performing Organization을 만들기도 더 쉬워진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우리가 지향하는 인재상과 업무방식을 정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처음부터 몸에 배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당연히 다른 급한 일들이 산재해 있다. 그래서 더더 의식적으로 이걸 챙기지 않으면 놓아 버리기 쉽고, 문제가 터질대로 터진 다음에야 수습하게 된다.
스타트업들에게 성장은 곧 생존이므로 그걸 챙기느라 급급한게 당연한데, 매출- 수익- Exit만 생각하는 회사가 아니라면 문화, HR에 대한 고민은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성장과정에서 최고 골치 아픈 것을 이구동성으로 사람/조직관리라 한다.
- 사람/조직관리가 안되면 회사 운영이 안된다.
- 사람/조직관리는 결국 문화/HR로 풀어야 한다. 따라서 문화는 Good to have 가 아니라 생존의 이슈다.
- 그런데 문화/HR 정책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실행을 해도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걸리며, 한 번 굳어지면 바꾸기도 어렵기에 조기교육이 필수다.
- '좋은 문화를 가진 회사'를 만드는 것은 이미 특정 문화가 고착된 기성회사가 하기 어려운,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혁신 중 하나라 생각한다.
스타트업 문화라고 하면 자유로운 출퇴근 및 복장, 직급 및 호칭의 파괴, 수평적인 관계(이것만큼 정의가 모호하거나 잘못된 표현도 없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등을 먼저 떠올리는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기업의 문화란 그런 표면적인 것들이 아니다. 예컨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결과'이고 이를 가능케 하는건 저변 깊이 깔린 문화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회사운영의 거의 모든 부분과 연관이 되어 있고, 공이 많이 드는 만큼 잘 이루어 놓으면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가 없는 기업의 핵심역량이다라고 생각한다.
예컨데:
- 회의를 최단시간에 끝내려면 참석자 전원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들어와서 가감없이 의견을 다 쏟아내야 하고 논리적 챌린지를 바탕으로 한 토론이 가능해야 하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고 to-do를 쪼개서 헤어져야한다. 이런 Team을 구축하려면 회의에 들어온 이상 나도 반드시 뭔가 기여를 해야 한다는 프로페셔널함, 직급고하를 막론하고 해야할 말은 하는 것, 논쟁은 논쟁일뿐 인신공격은 아님에 대한 상호 합의, 논리가 직급에 앞선다는 합의, 그러나 최종 결정에 대해서는 왈가불가 하지 않는다는 합의 등등이 필요하다. 문화라고 생각한다.
- 조직 내에서 정보와 의견의 흐름은 혈관이나 마찬가지여서, 이것이 원활하게 돌지 않으면 동맥경화에 걸린다. 일이 최선으로 되기 위한 의견의 취합도 물론이나, 서로 불편한 부분, 더 잘지내기 위해 요청할 부분을 가감없이 주고 받고 합의를 보고 수정하기 위한 선의의 의지를 바탕으로 한 실행. 문화라고 생각한다.
- 퇴근 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일을 합리적인 선에서 끝내 놓고 적당한 시간에 가는 것도 문화다. 불만이 있으면 그 때 그 때 이야기해서 곪지 않게 하는 것도, 상사의 말에 정면으로 논리적 반박할 수 있는 것도, 한 번 하기로 정한 건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그대로 하는 것도,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제를 인정하는 것도, 대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고 이를 수용하게 만드는 것도 문화다.
- 보고서를 무조건 한 장으로 만드는게 기업들에서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보고서를 한 장으로 만드는게 일을 줄인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장표 찍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지, 분석과 back-up을 소홀히 하라는 뜻이 아닌데, 장수 만큼 대충 만들어지는 보고서가 많다. 한 장의 보고서로 충분하려면, 한 장에 모든 필요한 내용 액기스를 담아 그것만 봐도 전체 맥락이 고스란히 이해가 가게 잘 써야 하고 (부단한 연습 없이 어렵다), 그 내용을 support하는 보조내용들은 머리속에 있건 자료로 있건 반드시 준비가 되어야 한다. 보고를 받는 사람도 한 장짜리 보고서를 보고 필요한 족집게 질문들을 쏟아낼 수 있어야 하고, 온탕냉탕 넘나드는 논쟁을 마치고 Next step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걸 가능케 하는게 무엇일까? 나는 '보고서 한장이 응당 갖추어야 하는 내용과, bullet proof back-up과, 당연히 주고 받아야 하는 질의응답을 주고 받게끔 가르치고 당연하게 배우고 이를 단련할 수 있게끔 환경이 조성되어 구성원들 몸에 밴 업무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 외 자잘해 보이는 것들.
- 대표는 법인카드를 제 것처럼 쓰지 않는다. 직원은 회사의 회식/출장 버짓을 무조건 극대화 하는게 이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상사가 있다고 더 오래 일하지도 않고, 상사가 없다고 덜 하지도 않는다. 상사한태 정치적으로 붙어봐야 이득은 없다. 대표 혼자서 승진과 연봉 인상 결정을 할 수 없다. 꼭 되어야 할 일을 미안해서 말 못하지 않는다. 모든 논쟁의 목표는 개인, 부서간의 힘싸움이 아니라 그래서 결국 회사에 가장 도움이 되는건 뭐냐로 귀결된다. 등등
이게 다 규제와 정책으로 가능한걸까? 난 오랜시간 구축해 온 문화라고 생각한다. 마치 독일 사람들이 칼같이 교통법규를 지키는게 벌금이 무서워서가 아니듯이 말이다.
나는 첫 직장은 대기업을 다녔고, 이후 6년간 경영컨설턴트로서 대략 15개 정도 기업들과 그 기업들의 계열사들에서 프로젝트를 했다. 프로젝트 주제가 무엇이건간에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한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그 조직 문화는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그리고 감히 단언컨데, 컨설팅회사의 제안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보고서의 방향성의 이슈보다(더러 이런 경우도 없지 않겠으나) 이를 실행하는 조직이 그렇게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인 것을 보았다. 조직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원인은 부서간 견제, 이걸 리드해야 할 리더의 굳이 그래야 할 역량/인센티브 이슈, 그 리더를 따라야 할 아래 리더들의 역량/인센티브 이슈, 기존에 하고 있던 일에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걸리는 시간, 새로운 방향성을 받아들이는 구성원들의 자세, 결과보고서를 성경처럼 신봉하지 않고 이후 발생하는 변수들에 대한 능동적 대응과 스스로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역량, 이 판단을 내리기 위해 가감없이 주고 받아야 하는 담당자 간의 논쟁, 결론이 났으면 빠르게 실행에 옮겨지는 프로세스 등등. 실행이 흐지부지되면 컨설팅회사의 보고서는 비싼 PPT 장표였을 뿐이라는 결론이 난다.(다시 말하지만 컨설팅사가 늘 옳다고 옹호하고 싶지 않다) 난 회사의 문화는 위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한다.
직접 회사를 차려보니 더 체감이 된다. 다섯 명일땐 쉽던 것이, 10명이 되면 쉽지 않고, 20명만 넘어도 공룡이 된 느낌이 들고, 그 사이에 경력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공룡이 땅에 말뚝을 박은 기분이 든다. 직원이 100명 이상이 되면, 리더 포함 구성원 입장에선 이 공룡이 고질라 수준 정도로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이것도 개개인을 탓해야 소용 없고 결국 문화와 HR로 풀어야 한다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은 직원 수가 가장 적을 때부터 의식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굳건해진 문화 속에, 그 문화가 마음에 들어 들어온 신입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한국에서 불법유턴을 일삼던 사람도 독일에 가면 그날부터 칼같이 규칙을 지키듯이 말이다.
아쉽게도 한국의 기성 회사들은 이미 쉽사리 바뀌기 어려운 스테이지에 들어섰다고 본다. 그런데 스타트업 업계에도 이 문화 및 HR적 시행착오를 계획보다 몸으로 떼워나가는 곳들이 많은 것 같다. 스타트업은 성장을 해야지 문화니 HR이니 하는게 사치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러면서 모두 구글같은 회사의 문화를 부러워 한다. 근데 구글의 문화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질리가 없지 않나. (구글의 문화 역시 그들에게나 어울리는 문화지, 실상을 알면 누구나 좋아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문화는 아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스타트업 대표라면 누구나 '사람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신다. 사람이 열 명만 넘어도 다 내 마음 같지 않고, 더 많아지면 조직관리는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지고 그 상태로 시간이 더 지나면 고치기가 많이 힘들다. 이런 고민들 많이 하시지 싶다.
- 내 마음처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열심히 하게 만들까
- 난 정말 최선을 다해 잘 해주고 있는데 왜 직원들은 불만만 가득할까. 그나마 물어봐도 답 안해주고 자기들끼리만 뒷담화를 할까.
- 내가 대기업 취업했으면 연봉 두 배 받을 수 있는데 여기와서 고생하니 주식 달라는 직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
- 내부에서 팀원을 육성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 연봉은 올려달라면서 일은 데드라인까지 안해놓는 사람을 어떻게 피드백을 줘야 하나.
- 툭하면 싸우는 두 팀장은 어째야 하나.
- 주니어들과 안맞는, 직급이 높지만 버리기 어려운 능력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 밖에서 뽑아오면 안에서 납득할까?
- 월급날 돈 못 줄까봐 심장이 쫄깃한데 근무태만한 직원 보면 속터지는 건 어째야 하나.
- 나름엔 혼신을 다했는데 결국 퇴사해서 구인사이트 가서 1점 남기고 회사 욕 쓰는 직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
- 근무 태만 지적하면 여긴 자유로운 스타트업 아니었냐고 따지는 경우는 어찌 해야 하나.
- 해야할 일은 너무 많은데 야근 수당을 줄 형편은 안되고 야근 안하면 회사가 망할 것 같고를 어째 설명하나.
- 아직 우리 모두 실력은 부족한데 구글같은 복지와 문화만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 볼때는 열심히 하고 안보면 대충 하는 건 어떻게 해야 하나.
- 요즘 느슨해진 것 같은 이 분위기를 어떻게 바로잡지?
반대로 직원 버전으로 쓰면 또 저만큼 이상의 내용이 나온다. 들어보면 불만의 거의 대부분 사안들이 문화와 HR과 연관이 있다.
학술적으로 들리겠지만 풀어서 생각해 보면:
문화 = 조직의 유지 발전을 위해 구성원이 합의하여 자발적으로 지키는 최소한의 행동양식.
그런데 모인 사람들의 생각과 동기부여 요소가 다 달라서 기본적인 Rule이 좀 필요하다. 그래서 생긴게,
HR = 조직 내의 사람들을 의도한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Rule및 Incentive Structure.
Value = HR이 시기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전술이라면 Value는 시간과 무관한 절대 가치
문화와 HR을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럽게 접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회사란 서로 베프 만들기 위해 모인 곳이 아니라 이 회사가 성장발전하기 위한 일을 원만하게 하기 위한 Professional한 모임이니, 일단은 일이 원활하게 될 수 있는 정도의 Rule부터 생각해 보면 어떨까.
다만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일이다. 10년을 목표로 두고 회사 안의 가장 높은 사람에서 시작하여 계속 정진해야 이룰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높아진다. 과도기에 회사에 조인한 사람들은 아직 미완인 문화때문에 기대 대비 실망할 수 있는데, 문화에 대한 회사의 목표와 경영진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이는 함께 만들어가고 지켜야 하는 것이지 다 된 밥에 내 몸만 담겠다는 생각으로 조인하면 본인만 괴롭다. 주로 현상 비판만하다가 이탈하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한다. 지향점을 명확하게 잡되, 계속 진화한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다듬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CHRO는 CEO, CFO와 동급이고 실력만 증명된다면 그만큼의 대우와 권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별로 맞는 문화가 다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배껴올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은 타사 벤치마크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가장 근본적인 것 부터 고민을 하고 계속 수정보완 하는게 맞다.
우리 회사도 아직 갈길이 멀다. 발전하는 여정에서 이탈과 채용이 계속되고 크고 작은 진통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성장해도 결국 문화가 제대로 setting 되지 않으면 영속하는 기업으로서의 유지도 힘들뿐더러, 조직원들도 불만과 스트레스를 받고, 나 역시 그런 회사는 만들고 싶지도 다니고 싶지 않다.
Co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