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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부인 Dec 14. 2023

엄마가 돈 벌고 변했어요

엄마는 마트에서 일한다 (8)

마트에서 일을 하고 나서 월급이 들어왔다. 내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어 지급되는 게 신기하고 신났다. 집에서 청소를 하고, 오래된 음식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챙기는 업무에 대해 아무도 돈을 주지 않았는데, 회사는  내 노동을 돈으로 환산해 주었다. 그렇게 내 통장에 돈이 꽂히는 경험을 하고 나니 내가 변했다.


1. 유기농 우유를 샀다.


남편 월급으로 살림을 할 때는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야 했다. 매일 지출하는 식료품 비용을 쓸 때는 예민해졌다. 다른 마트가 더 싼 건 아닌가, 나는 지금 가격 대비 최고의 상품을 사고 있나 두뇌 회로를 빠르게 돌렸다. 다른 친구들과 밥을 먹거나 선물을 살 때도 비용이 신경 쓰였다. 내가 이번달에 내 용돈으로 얼마를 썼더라, 고민했다. 쓰는 돈을 줄여야 여유 돈이 생기니, 계속 소비를 줄이는 쪽으로만 노력했다. 그런데 들어오는 돈을 늘리니 생각이 달라졌다.  


월급을 받고, 친구 딸에게 고급 마카 세트를 선물했다. 좋아하는 선배에게 밥을 샀다. 아이들 우유는 유기농으로 골랐다. 유기농 한우까지는 못 사도, 고민하지 않고 우유를 고르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2. 남편과 맞짱을 뜰 수 있다.


라면 그릇을 개수대에 얹어 놓고 가는 남편을 보며 내가 설거지하는 밥순이로 여기나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이거 좀 하지? 왜 나만 하는 거냐고! 나도 많이 하거든? 그러면 당신이 돈 벌어, 내가 집안일할게! 집안일로 시작된 싸움의 결말은 늘 같았다.  


일을 시작하고, 내 시간에 대해 돈으로 지급받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맘만 먹으면 남편만큼 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레벨까지 자신감이 차올랐다. 남편과 싸워도 마지막에 '꼬리 내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남편과의 말싸움이 두렵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하기 시작해서 그런지 (기분 탓인지) 남편도 설거지를 조금 더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힘이 드니 설거지도 쌓아두고 자고, 빨랫감도 마루에 잔뜩 쌓였다. 남편아, 좀 같이 하자..라는 원망의 마음이 올라왔지만, 고민 끝에 쿠폰을 사용하여 청소도우미의 도움을 받았다. 그 시간에 나도 같이 집정리를 하기는 했지만, 돈으로 산 평화는 달콤했다.


엄마의 자존감과 관련된 북토 크나 명상보다 실제로 번 돈이 이렇게 나의 자존감에 강력한 도움이 되다니.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에게 매달 일정한 돈과 방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0년 전 그녀의 주장은 진정 옳았다.  


3. 예뻐졌다.


주변에서 표정이 밝아졌다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월급을 받고, 고속터미널 상가에 가서  옷과 귀걸이를 샀다. 다음 달에는 아이들 짐 넣고 다니는 배낭 말고, 노트북을 넣고 다닐 수 있는 직장인 st 가방을 샀다. 동네 안경원에서 안경알만 갈다가, 큰 안경집에 가서 '외제' 안경테로 안경을 맞췄다.


아이들을 낳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매번 주저하던 '나를 위한' 소비들을 했다. 이걸 언제 쓰겠어, 다음 달에 남편 회사 그만두면 어떡해, 애들 학원비가 비싼데라고 미루던 물건을 매달 하나씩 질렀다.


월급을 모아 60대에 크루즈 여행을 하고 싶어 하던 직원이 생각났다. 내 시간이 돈으로 바뀐다는 기쁨은 마트에서 일하는 어려움을 단숨에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맞다, 세상일에 공짜는 없다. 일을 하면서 피곤하고 아픈 다리로 집에 온 나는 저녁마다 아이들에게 짜증을 많이 냈고, 자주 누워 있었다. 1년 후 지금, 유기농 우유를 호기롭게 못 사지만, 화를 덜 내는 엄마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트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느낀 변화는 앞으로 나의 삶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돈의 맛을 알았으니. 흐흐.  


쥬스를 팔기 위해 알게 된 파인애플의 효능. (어쩌다 홍보물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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