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두부인 Dec 16. 2023

다시는 마트에서 일 안 할 거예요

엄마는 마트에서 일한다 (9)

오래 근무하기를 바랐던 20대 젊은 직원이 일주일 만에 그만두며 말했다. 


-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거, 너무 힘들어요. 다시는 마트에서 일 안 할 거예요.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은 근무자들이 반기지 않는 일이다. 물이 있는 제품인 경우, 액체만 하수구 등에 먼저 버려야 하고, 포장지를 뜯어서 내용물을 버리다가 방부제가 내용물과 함께 붙어 들어가면 음식물 쓰레기를 뒤져서 따로 빼내야 했다. 비린내가 심한 어패류를 버릴 때도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뼈와 살의 형태를 갖춘' 닭을 버릴 때가 가장 힘들었다. 어제까지는 먹는 음식이었는데, 오늘은 곰팡이 난 토마토, 썩어서 물크러진 과일과 함께 쓰레기로 버려지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면서 죄책감이 느껴졌다. 음식물 쓰레기의 냄새와 시각적 자극은 공감각적으로 마음을 힘들게 했다. 그래도 20대 젊은 직원보다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경험이 많은 아줌마여서 그런지 그 일을 씩씩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각종 야채와 과일의 신선도를 파악하여 오래된 부분은 벗겨내거나 잘라 내고 다듬는 작업도 정확성과 집중력, 그리고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양상추는 금방 껍질의 색이 변해서 껍질을 벗겨내고 다시 포장을 해서 할인하여 팔았고, 밑단이 누렇게 변한 파는 파머리와 밑을 잘라내어 '다듬은 파'로 스티로폼 접시로 포장하여 팔았다. 방울토마토는 밑에 깔린 제품이 쉽게 상해서 큰 상자에 제품을 다 덜어 놓고 상태를 살펴야 했고, 귤도 매일 박스를 들고 흔들어 살펴서 상한 귤을 빨리 빼내야 했다. 


야채와 과일 상태를 점검하여 폐기 제품을 뽑아내고, 다시 포장하여 판매하는 일은 누군가 매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야채를 챙기고, 다듬는 일을 계속하다가 다리가 아파서 그만둔 분들도 있었다. 야채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포장을 뜯고, 다듬는 일은 지난하면서도 유쾌하고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식재료를 아끼는 정성과 폐기를 줄이려는 마음과 손길이 모여서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이 판매될 수 있었다. 집에서는 살림을 하는 엄마(혹은 아빠)가 냉장고의 제품들을 '냉장고 파먹기'로 없애는 노력을 하듯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티 안 나지만 애쓰는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서, 우리들이 매일 밥을 해 먹고, 힘을 내서 잘 살 수 있었다. 


티 나지 않지만 나의 깔끔한 생활을 위해 애쓰는 누군가가 마트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가정에도 있고, 길에도 있고, 지하철에도 있다. 돈 받으니까 하는 거지, 하는 마음보다는 그들의 수고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가족 딸들과 남편도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그대들의 옷을 개서 서랍에 넣어준 나(엄마)에게 감사해 주면 좋겠다. 





<어쩌다 홍보물 제작>하다가 대저토마토가 왜 대저토마토인지 알게 됨


이전 08화 엄마가 돈 벌고 변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