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와 디스레트로라이프를 보며 느낀 점
새로 출시된 애플워치5를 구입해서 사용한 지 이제 한 달 정도가 되어 간다. 스마트워치는 처음 구입해서 써보고 있는데, 예상외로 꾸준하게 착용하고 있다. 사실, 액세서리를 즐겨 착용하지 않는 편인데, 시계와 안경만은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구입하고 꼭 착용하고 다니는 편이다. 뭐 안경이야 시력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시계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항상 빠뜨리지 않고 착용하게 된다. 시계를 안 차면 뭐랄까, 허전하다기보다는 허술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애플워치를 구입하게 되면서 기존에 차던 시계들은 서랍장에 갇혀 한 달 가까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수년 동안 줄기차게 차고 다녔던 오메가 씨마스터와 컨스틸레이션 역시 애플워치를 착용하고 나서 서랍장으로 직행해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애플워치의 무엇이 과연 오메가를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애플워치는 앞으로 어느 정도의 포텐을 터트릴 수 있을까?
사실, 애플워치를 구입한 가장 큰 이유는 수영 때문이었다. 자전거 라이딩에서 수영으로 즐겨하는 운동을 바꾼 이후로 가장 아쉬운 점 중에 하나가, 운동에 대한 기록 부분이었다. 자전거 라이딩은 휴대폰 어플을 통해서 라이딩 거리, 평균 시속 등 비교적 세부적인 운동 정보들을 확인하고 기록할 수 있었지만 수영은 그게 불가능했다. 1년 넘게 매일 아침마다, 25m 레인을 몇 바퀴 돌았는지 머릿속으로 세며 수영을 하려니 불현듯 애플워치를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애플워치를 사용해보니, 수영이 포함된 운동 앱과 하루의 활동 지수를 알려주는 활동 앱 외에는 특별하게 자주 사용하는 기능은 없다. 애플워치로 알림 받는 건, 왠지 귀찮아서 바로 Off 시켰고, 음악 들을 때 볼륨 조절하는 건 몇 번 써보니까 그냥 아이폰으로 조절하는 게 더 편해서 잘 안 쓰게 된다. 그 외에 다른 애플워치 어플들도 잘 쓰는 게 없어서 많이 지워버렸다. 하지만, 운동 앱과 활동 앱 이 두 가지 만으로도 애플워치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의 운동 앱과 활동 앱만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도 기존의 아날로그시계가 아닌 애플워치를 차게 된다. 사실 이 부분이 애플워치의 가장 무서운 점이 아닌가 싶다. 스마트워치가 아니라, 그냥 워치로 인식될 만큼, 시계로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사용한 지 한 달 밖에 안됐지만, 애플워치는 스마트워치라서 좋은 것보다는 그저 워치로서도 좋은 느낌이다. 이건 개인 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 워치로서 좋은 느낌은 44mm 크기보다는 40mm 크기에서 훨씬 좋았다. 그래서 남성보다 여성이 많이 선택한다는 40mm 크기로 구매했다. 44mm 크기는 뭐랄까, 시계보다는 웨어러블 기기 느낌이랄까?
애플워치를 만족하며 차고 다니는 사이, 지인이 책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인공은 같은 과 동기인 승민형. 형인데도 동기인 건 나름 사연이 있다. 신입생 OT 때였던가... KAIST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입고 나타나서 눈총을 받았던 그.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정말 KAIST를 다니다가 문학을 공부하겠다고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던 것이었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에 진학했던 그가 왜 문학 쪽으로 인생의 나침반을 돌렸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한 때 그와 함께 보낸 시간들에 대해서는 꽤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쨌든, 그는 지금 빈티지 시계와 물건들을 취급하는 레트로 샵을 운영하고 있고, 빈티지 시계에 관한 아주 특별하고 흥미로운 책을 출판한 작가가 되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디스레트로라이프'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책을 쓴 지인과 함께 보냈던 옛 시간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지인을 따라 황학동과 예지동을 구경하며 지인이 추천해준 오메가 컨스틸레이션 빈티지 시계를 샀던 기억, 헌책방에서 지인이 추천해 준 책을 사서, 신림동 근처 지인이 자취하던 옥탑방으로 놀러 가 밤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커피와 담배를 나누며 수다를 떨다가 맞이한 새벽녘, 그곳 옥상에서 보던 묘한 색감의 하늘도 어렴풋하게 생각이 났다.
사실 그때부터, 이미 지인은 빈티지 시계에 푹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몇 번 지인을 따라 빈티지 시계를 구경하러 다녔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당시, 그다지 빈티지 시계에 끌리지 않았다. 빈티지 시계보다는 새 시계가 좋았다. 당시 나는 지인이 추천해 준 구형 빈티지 오메가보다는 면세점에서 구경한 시티즌 오토매틱 쪽이 더 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지인이 추천해 준 빈티지 오메가를 샀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도 그 오메가는 여전히 잘 차고 다닌다. 그리고 지금은 당시 샀던 가격보다는 몇 갑절 오른 시세로 거래가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손목 위에서 시간이 흐른다. 지인의 책을 읽고 지인이 추천해 준 빈티지 오메가 컨스틸레이션을 오랜만에 꺼내 이리저리 살펴본다. 하지만, 여전히 내 왼쪽 팔목에는 애플워치가 채워져 있다. 애플워치든, 빈티지시계든 손목을 감싸는 시계들의 움직임은 뭔가 묘한 구석이 있다. 문득 자전이나 공전처럼 일정한 주기를 따라 돌아가고 있는 지구와 우주가 커다란 시계의 무브먼트 같다는 망상을 해본다. 그나저나, 내일은 애플워치 말고, 지인이 추천해줬던 빈티지 시계를 오랜만에 착용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