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Mar 19. 2024

올해의 목표는, 옷 사지 않기

큰 이유는 없어요.


2024년 3월도 반절이 훌쩍 넘었다.

올해 들어 옷을 한 벌도 사지 않았다. ‘지구를 위해’나,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같은 멋진 이유는 없다.


단지 수납 수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게 이유다.


일본, 도쿄의 1K 월세방에서 살고 있기에 수납은 언제나 부족하다.

수납은 오시이레(押し入れ)라고 하는 벽장 하나와 신발장이 전부인 방 하나짜리 집. 일본도 사계절이 있는 만큼, 봄 여름 가을 겨울 옷이 필요하다.

내 방 도면. 収納이라고 적힌 공간이 수납공간, 오시이레다.


거기에 벽장은 옷장이 아닌, 이불 등을 넣기 위한 오시이레. 깊기는 하지만 원피스나 롱코트같이 길이가 긴 옷 수납에 효율적이지 않다.


벽장 상부에 압축봉을 설치해 어거지로 원피스와 코트를 걸어두고 있으나, 아래쪽이 끌려 주름이 진다. 옷을 걸어서 수납하기 좋아하는 1인이기에 영 관리하기 힘들다. 옷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압축봉이 떨어지는 일이 많아 요즘은 압축봉을 지지하는 지지대도 설치해 수납력은 더욱 떨어져버렸다.


부동산 사이트에서 찾아온 집 사진. 길이가 긴 옷을 넣을 수 없다.

무인양품에서 PP수납서랍을 구매해 옷들을 정리하고 있지만, 사계절 옷을 다 넣을 수는 없어 일 년에 두 번 봄/여름옷과 가을/겨울옷을 교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계절이 지난 옷은 주로 캐리어에 넣어 보관하는데, 캐리어를 쓸 때마다 그 안에 있는 옷가지를 뺐다 넣었다 하면 시간도 체력도 엄청나게 소모된다.


어느 정도 수납공간에 여유가 있다면 새 옷을 살 때 즐겁겠지만, 지금은 있는 옷들을 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수납공간이 100이라 치면 내 옷은 120 정도인 것 같다. 그러면 옷을 우겨넣게 되고, 옷을 고르는 것도 빼는 것도 노동이 되어버린다.


구깃구깃구깃

왜 옷이 이렇게 많아졌을까?


재작년에는 큰맘 먹고 옷을 커다란 박스에 넣어 기부를 하고, 수납공간을 확보하기도 했다.


수납공간이 확보되니 맘 놓고 온라인에서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사거나, 조조타운(일본의 무신사 같은 사이트)에서 중고 옷을 신나게 구매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옷이 기부 전만큼 늘어나버렸다.


옷을 버릴까? 란 생각을 하고 옷장을 보면 몇번 안 입은 옷이나 작아져서 못 입는 옷도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간지러움증으로 인해 계속해서 먹던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으로 3개월 만에 10킬로가 쪄서 입지 못하는 옷이 상당히 많아졌다.)


한국에 있다면 헌옷수거함에 옷을 넣으면 될 일이지만, 일본은 한국처럼 헌옷수거함이란게 잘 있지도 않고, 소각 쓰레기봉투에 옷을 넣어 버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옷을 줄이기 더욱 어렵다. 수거함에 넣는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옷도, 버려야 하니 더욱 망설이게 되고 쌓아놓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있는 옷이나 잘 입고 해지면 버리자는 생각에 올해는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손이 잘 가지 않던 옷들도 괜스레 입어보게 되었다.


1년 동안 옷을 사지 않는다고 옷 수납이 120에서 80으로 줄어들지는 모르겠지만, 내년 이맘때는 옷을 정리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살도 빠지면 더 좋겠다)


물건에 맞춰 수납공간을 늘리지 않고, 수납공간에 맞춰 물건을 소유하는 삶은 언제쯤 가능할까.


여하튼, 뭔가를 마음먹고 꾸준히 하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이지만 느슨하게 무언가를 정해서 해보는 걸 성공해보고 싶은 올해다.  



+물론 속옷, 양말 등의 소모품은 필요하게 되면 살 예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