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 살이 다다르는 곳
두 번째 양궁 수업의 날.
첫날은 활에 줄(활시위)이 걸려있는 상태로 세팅되어 있었지만, 이 날은 달랐다.
줄이 걸려있지 않은 활은 팽팽함을 잃은 채 벽에 걸려있었다.
힘이 덜한 활을 들고 양궁장 끄트머리에 서서 줄을 거는 법을 배웠다.
활에 줄을 거는 법은 염려했던 것보다 단순했다.
골무처럼 생긴 가죽이 양쪽에 달려있는 보조줄을 가져와, 활의 위아래를 구분해 가죽을 걸어준 후(명칭을 전부 까먹었다...) 발로 보조줄을 고정하고 활을 위로 잡아당기면 활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활 양쪽 끝의 홈에 맞춰 이미 동그랗게 묶여있는 활 줄을 걸고, 골무를 벗기면 끝.
주의해야 할 점은 단순하다. 활 줄이 보조줄에 꼬이지 않게 할 것, 활의 위아래를 틀리지 않도록 할 것, 홈에 줄이 제대로 걸리게 할 것.
팽팽한 탄성의 줄에 맞아서 다치지 않을까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해서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가슴 보호대와 암가드를 착용하고 허리에 활통을 단 채 활을 들고 있는 내 모습에 우쭐했다. 올림픽에 나가는 양궁선수들을 보며 얼마나 이 순간을 기대했던가. 물론 활 종류는 다르지만, 여하튼 직접 줄까지 끼운 활을 들고 양궁장의 자갈밭을 걷는 나, 좀 멋지지 않나? 그것도 여긴 외국이라고.
버저 소리가 울리고, 과녁 가운데를 조준해 쏜 활은 오른쪽 위로 빗나갔다.
"오늘은 과녁 조준하는 법을 공부할 겁니다. 나눠드린 동그란 보조 과녁에 맞혀 활을 겨냥하고 쏘세요. 만약 방금 쏜 활이 위에 있다면 과녁 아래에, 활이 아래에 있다면 과녁 위에 고정해 주세요."
동그란 원이 그려진 작은 판을 과녁 왼쪽 아래에 붙였다.
"이제 고정한 보조 과녁을 겨냥하고 쏘세요. 그리고 점점 활이 과녁의 중심에 가까워지도록 조정해 봅시다."
주변을 둘러보니, 보조 과녁을 고정한 위치가 사람마다 달랐다.
키가 작은 사람은 약간 위쪽을, 키가 큰 사람은 아래쪽에. 가운데 10점을 향해 쏘는 것은 같으나, 활 끝이 겨냥하는 지점은 제각각.
보조과녁을 기준으로 활을 다시 쏘았다. 아까보다 중심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활을 쏘고, 보조과녁을 조정하며 내 활 끝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점점 알 수 있었다.
"사람마다 활 끝이 노리는 목표는 다릅니다. 다들 자신이 노려야 할 곳을 이제 좀 아시겠지요?"
활쏘기란 사람의 일생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란 종착역은 똑같으나, 각기 그 골을 향해 가는 과정은 다르다는 것. 모두 똑같은 길로 갈 수 없다는 것.
나만의 과녁을 향해 활을 쏘더라도, 바람이나 손가락이 떨어질 때의 호흡으로 그 길은 바뀌기 마련. 지나치게 힘을 넣으면 손 끝이 떨려 활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린다.
목표도 언제나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조금씩 수정하며 나만의 골에 가까워져야 한다.
다른 스포츠, 예를 들면 테니스를 할 때는 내 몸의 움직임뿐 아니라 함께 공을 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활은 달랐다. 오로지 내 호흡과 자세, 공기의 흐름을 느끼며 거기에 집중해야 했다.
생각을 비우는 명상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었던 내가, 활을 쏠 때에는 모든 잡념이 사라지며 오로지 호흡, 눈앞의 과녁에만 집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래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공부를 하다 활쏘기를 하며 머릿속을 정리했나 보다.
양궁은 무기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 집중하는 명상의 도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