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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Feb 29. 2024

아주 날것의 한국

If I had your face

제목: If I had your face (내가 너처럼 생겼다면)

지은이: 프랜시스 차 (Frances Cha)




내가 읽은 원서 표지. 출처: 교보문고



아주 날것의 한국


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 프란시스 차가 영어로 쓴 한국 소설이다. 주인공들도 모두 한국사람이고, 소설 배경도 한국이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거나 따라가는 게 다른 미국 소설보다 훨씬 쉽다. 그런데, 나도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책을 읽으면서 '한국을 이렇게 묘사하다니. 너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아는데?' 하는 의문이 드는 거다.


저자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4살에는 홍콩으로, 11살에는 한국으로 이사를 갔다. 또한 CNN의 문화 여행부 기자로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재미교포이지만 한국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경험도 충분히 많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녀가 그저 수박 겉핥기로 한국을 묘사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프란시스 차는 한 인터뷰에서 '현대의 서울이 배경이고 모든 등장인물이 한국 여성이며, 그들이 사랑이나 남자 말고 다른 얘기를 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국이 자신의 뿌리인 만큼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궁금하긴 하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왜 하필 고아에다가 룸살롱 여자들이어야 했는지. 그들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현대 한국인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이 책에는 다섯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룸메이트 혹은 이웃주민이다. 성형 수술로 예뻐져서 룸살롱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수진, 수진과 같은 고아원 출신이면서 화가인 미호, 수진의 절친이자 어린 시절 문제아였지만 지금은 사고로 말을 못 하는 미용사 아라, 가장 예쁜 여자만 있다는 일명 '텐프로' 룸살롱에 나가는 규리, 이들을 보면서 차라리 자신도 고아였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직장인 원아.


각 챕터는 이 중 한 명의 시선으로 진행되며,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풀어낸다. 각자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만,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도움을 주는 모습도 보여준다.



외모에 대한 미친 집착


'내가 너의 얼굴을 가졌다면(If I had your face)'이 제목이니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한국 여성들이 외모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큰 집착을 가지고 있는 걸로 묘사하고 있다.


It would be stupid not to get your face fixed there if you want to be a star. (p. 9)
연예인 할 거라면서 얼굴에 손 안 대면 바보지.


Sujin has often told me that Kyuri’s jawline is the prettiest she has ever seen. (p. 10)
자기가 본 중에 규리가 턱선은 제일 끝내주게 예쁘다고 수진이가 말한 적이 있다.


I look at our madam and she is just the ugliest creature I have ever seen. I think I would kill myself if I looked that ugly.  (p. 13).
우리 룸살롱 마담은 내가 본 중에 제일로 못생긴 인간이었다. 난 죽으면 죽었지 그런 얼굴로는 못 살 거 같다.


why doesn’t she just get surgery? Why? I really don’t understand ugly people. Especially if they have money. Are they stupid?  (p. 13)
마담은 왜 성형을 안 하는 걸까? 도대체 왜? 못생긴 사람들 심리는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돈도 있으면서 말이야. 바보 아니야?


Thank you for introducing her to such a magician. She is going to be beautiful. (p. 15).
마법을 부려 줄 실력 좋은 (의사) 선생님 소개해 줘서 고마워. 수진이도 이제 예뻐질 거야.



이들은 모두 성형에 거부감이 없다. 아니, 성형을 당연시한다. 미아리를 거쳐 텐프로로 일하는 규리는 화장품과 마사지, 성형수술에 거액을 쏟아붓는다. 수진은 양악수술을 받아서 예뻐진 다음에 자신도 규리처럼 텐프로로 일하고 싶어 한다.(실제로 소설 속에서 양악수술을 받았고, 그래서 예뻐졌다는 묘사가 나온다. 텐프로까지는 아니지만 그녀도 결국 룸살롱에서 일하게 된다.) 미용사인 아라도 외모 가꾸는 관심이 많고 수진의 성형수술을 응원해 준다.


저자는 너도나도 외모에 집착하고 성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한국 풍조를 비판하고 싶었던 걸까.



한국에 대한 날 선 비판


이 책에서는 한국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해 있고 빈부격차는 줄어들 줄 모른다. 좁아터진 땅덩어리에 북적대며 살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고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모두를 판단한다.


심지어 한국인들이 국뽕처럼 자랑스러워하는 K-pop도 비판의 소재로 삼고 있다.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성형을 하는 연예인, 팬심을 이용한 여러 가지 유료 서비스들, 카메라 앞에서는 상냥하지만 사사로이 만난 팬에게는 함부로 구는 인기 스타.


For all its millions of people, Korea is the size of a fishbowl and someone is always looking down on someone else. That’s just the way it is in this country, and the reason why people ask a series of rapid-fire questions the minute they meet you. Which neighborhood do you live in? Where did you go to school? Where do you work? Do you know so-and-so? They pinpoint where you are on the national scale of status, then spit you out in a heartbeat. (p. 68)
인구는 엄청 많은 반면, 땅 크기는 손바닥만 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항상 누군가를 무시하며 살아간다. 그게 이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누군가를 만나자마자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이유다. 어느 동네에 사는지,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직장은 어딘지, 자신과 상대방이 공통점이 있는지. 그렇게 한국 사회좌표계에서 상대방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파악하고 나면, "난 너랑 사는 세계가 달라." 하며 바로 상대를 깔아뭉갠다.


소설을 읽다 보면 와, 세상에. 이런 곳에서 숨 막혀서 어떻게 살지? 싶다.

몇 년 살아오면서, 저자가 느낀 한국은 이런 곳이었나 보다.



책에 나온 한국어


비록 영어로 쓰였지만 책에는 한국어 단어가 꽤 많이 나온다.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내가 프랑스가 배경인 소설을 읽는데, 모르는 프랑스 단어가 마구 나온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주인공이 뵈프 부르기뇽과 에스파르고를 먹었다고 하면 저게 도대체 뭔지, 머릿속에 그림도 그려지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거다. 그렇다고 일일이 찾아보자니 번거롭기도 하고, 그냥 음식이겠거니 하며 넘어가도 찝찝하다. 뵈프 부르기뇽은 소고기 요리이고 에스파르고는 달팽이 요리라는 설명이 있더라도 별로 나아지는 건 없다.


그래도 이런 단어가 한두 개 정도면, 이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니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모르는 프랑스어가 넘쳐난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모르는 외국어가 많이 나오는 책을 싫어한다. 책을 읽다가 턱! 턱! 막히는 느낌이랄까. 독서의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영어로 이 책을 읽을 외국 독자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아래는 이 책에 나온 우리말 단어들이다.


sangyeonrae 상견례 10 percent joint 텐프로 룸살롱 oiji 오이지 yeot candy 엿 ddeok 떡 pocha 포차 gochujang 고추장 Miari 미아리 yoohaksaeng 유학생 unni 언니 oppa 오빠 mudang 무당 taxi food hall 기사식당 sunbaenim 선배님 hanok 한옥 noonchi 눈치 kumiho 구미호 chaebol 재벌 Hoe 회 ramen 라면 tteokbokki 떡볶이 soondae 순대 gisaeng 기생 han 한 seon 선(맞선) kalguksu 칼국수 ajumma 아줌마 jjambong 짬뽕 iljin 일진 samgyeopsal 삼겹살 saju 사주 doenjang stew 된장찌개 PC bang PC방 Daehakro 대학로


물론 거리 이름은 고유명사라 그대로 적을 수밖에 없었을 거고, 한류와 한식의 붐을 타고 떡볶이나 고추장, 김치 같은 단어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내용상 꼭 필요하지 않은데 굳이 한국어 단어를 이렇게 많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저자가 밝히길 처음에는 더 많았는데 그나마 편집 과정에서 뺀 게 저 정도라 한다.)


오해는 하지 마시길. 나는 원래 영어로 된 책을 읽으며 우리말 단어가 번역되지 않고 그냥 나오면 굉장히 반가워하고 신기해하는 사람이니까. 다만, 지나치게 남발하지 말고 어느 정도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거다.


특히 yoohaksaeng(유학생)이라는 단어를 소설 안에서 설명하면서 rich kids who studied in America for high school and college(미국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공부한 부잣집 자제들)이라고 했는데 부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유학생은 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일 뿐이다. 집이 부유한 학생들도 있겠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게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 왜 저렇게 편견이 생기게끔 단어를 설명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이 책에 대해 미국에서 평가는 좋다. 벌써 12개국으로 번역, 수출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나중에 한국 번역본이 출간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내가 사랑한 문장들



1.

How funny, the wild variety of shit some people are worrying about in life. (p. 22)
우습지 않니. 사람들이 가진 걱정거리라는 게 이렇게나 잡다구리하고 구질구질하다는 게.


2.

I wanted to reach over and shake her by the shoulders. Stop running around like a fool, I wanted to say. You have so much and you can do anything you want.
I would live your life so much better than you, if I had your face. (p. 31)
그녀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어 주고 싶었다. 바보같이 엉뚱한 데서 헤매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넌 가진 게 이렇게나 많고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할 수 있잖아. 내가 너라면 절대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3.

I DO have to admit I feel a pinch of pride when someone asks if I have had surgery and I can say no. (p. 55)
누가 혹시 성형수술했냐고 물어보면, 나는 괜스레 뿌듯해하며 아니라고 대답한다.


4.

I would sit up in bed abruptly in the middle of the night, my cheeks aflame. (p. 71)
한밤중에 자다 깨서 혼자 얼굴이 벌게진 채 벌떡 일어나 앉곤 했다.


흔히 말하는 '이불킥'을 영어로 설명해 놓았다.


5.

It’s basic human nature, this need to look down on someone to feel better about yourself. There is no point in getting upset about it. (p. 90)
이 욕구는 인간의 본성 같은 거야. 누군가를 무시해야 내 기분이 좋아지는 거. 이런 거 가지고 화를 내면 안 되지.


음. 그런가.


6.

It now feels strange to her that in Korea, if you try to strike up a conversation with someone you have not been introduced to, people look at you as they would at a large rat, but if even the flimsiest of introductions is made by the most peripheral of acquaintances, they fuss over you like a long-lost sibling. (pp. 166-167)
생각해 보면 참 희한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낯선 이에게 말이라도 건넬라 치면 상대는 마치 당신이 커다란 쥐라도 되는 양 뜨악하게 쳐다본다. 하지만 아무리 잠깐이라도,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통해서라도 안면을 튼 사이라면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다시 만난 것처럼 굉장히 오지랖을 부린다.


7.

To myself, I repeated what others had been saying about her. That anyone with her privileges had no right to be unhappy. (p. 196)
남들이 그녀에 대해 하곤 했던 말을 나 혼자 계속 중얼거렸다. "너처럼 가진 게 많은 애는 불행해하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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