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이삭금 Feb 22. 2024

진화를 설명하는 한 단어, 눈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 눈먼 시계공>

제목: 눈먼 시계공

원서 제목: The Blind Watchmaker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출판사: 사이언스 북스



출처: 교보문고



진화론을 이해하고 싶다면, 바로 이 책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듣게 된 건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였다. 서울대학교 교수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장대익 교수가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꽤 오래전의 이야기였고, 지금은 진화와 관련해서 장대익 교수가 직접 저술하거나 번역한 다른 책들이 많이 있으니 아마 요새 같으면 자신의 책을 추천했으리라.


어쨌든 잊지 않으려고 제목을 적어 놨었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이 책을 덜컥 사 버렸다. 나도 진화론을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그전에는 진화론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옛날옛적 학창 시절에 잠깐 배우고 넘어갔던 기억, 구부정하던 원숭이가 점점 걸어가면서 똑바로 선 사람의 모습을 했던 그림(사실 이건 잘못된 그림이라고 한다) 정도로 대충 알고 있었던 거니까. 이참에 책을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을 받아 들고 약간 후회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전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가 끝까지 못 읽고 내팽개쳤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 책도 어려우면 어쩌나 걱정이 됐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 책도 어려웠다.

그런데, 재미도 있었다.


어려운 부분은 살짝 건너뛰고 보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웠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진화론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왜 장대익 교수가 이 책을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진화론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진화: 눈먼 시계공


만일 당신이 길을 걷다가 시계를 발견했다고 치자.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살펴보니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수십 개의 크기가 다른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고, 바늘이 움직이면서 숫자판을 가리킨다. 시계를 발견한 사람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시계는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야. 시계를 만든 시계공이 있을 거야.


생명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그래 왔다. 수십조 개의 세포가 이루어져 아주 복잡하고도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생명체들, 그 다양한 종류와 수많은 갈래들. 그걸 보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생명체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생명체를 만든 창조주가 있을 거야. 마치 그 시계공처럼.


그러나 이 책은 말한다. 만약에 생명체를 만든 시계공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 눈먼 시계공일 거라고.

어떠한 목적이나 방향성도 없이, 무엇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나 설계도도 없이.

그저 우연히 그런 시계를 만들게 된 앞을 못 보는 시계공이라고.


진화가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목적이나 방향성 없이, 그저 돌연변이와 환경적 선택에 의해 우연히 발생한 것이니까. 눈먼 시계공이 만든 시계처럼.



내가 읽은 원서 표지. 출처: 아마존


개인적으로 원서의 이 표지를 좋아한다. '눈먼 시계공'이라는 제목을 아주 잘 보여 주는 것 같아서.



진화에 대한 오해, 하나: 창조론 vs. 진화론


이 책에서는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왜 그게 가능한지 여러 가지 증거를 보여 주며 설명하고 있다. 그림과 도표, 여러 가지 예시를 통해 설명해 주는 걸 따라가노라면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이 든다.


진화론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여러 오해 중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진화론을 '생명체가 만들어진 기원을 설명하는 여러 썰 중 하나'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실은 내가 그랬다.) 창조주가 한 번에 만들었다는 '창조론'이 있는가 하면, 원시 형태의 동물에서 발전된 형태로 진화하는 '진화론'이 있다고 생각했던 거다.


이 책은 그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진화론은 그런 '썰'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진화에 대한 오해, 둘: 더 발달된 형태로의 진화


흔히 진화와 발전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나도 그랬다.) 그래서 '덜 진화됐다'라고 하면 '원시적이고, 덜 발전된' 형태라고 생각하고, 모든 생명체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틀린 얘기다.


진화는 오직 돌연변이와 환경적 선택이라는 우연에 의해 벌어진다. 어떤 돌연변이가 생길지, 그때 우연히 어떤 환경이 생명체가 살아남기에 더 적합할지는 모를 일이다. 그게 반드시 발전된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화는 '목적'이 없는 '눈먼 시계공'이니까.



진화에 대한 오해: 그 밖에도...


사실 그 외에도 진화에 대한 오해는 무척 많다. 라마르크가 주장한 용불용설이라든가(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원숭이가 사람이 됐다면서 왜 아직도 원숭이가 남아 있는 거냐는 얘기(정확히는 원숭이와 사람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등.


그 모든 걸 여기에서 다 다룰 순 없다. 그렇게 되면 이건 독후감이 아니라 또 하나의 책이 될 테니까.


여러분이 나처럼 진화론이 궁금했다면, 진화론을 더 잘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라고 추천한다. 꼭 이 책이 아니어도 좋다. 요새는 진화론을 잘 설명해 주는 좋은 책이 많이 나오니까. 그저 풍문으로 들은 얘기, 혹은 처럼 예전 학생 시절에 배운 잘못된 지식만으로 어림짐작하지 말고, 여러분도 책을 꼭 읽어 보시길 권한다.





내가 사랑한 문장들


1.

The theory of evolution by cumulative selection is the only theory we know of that is in principle capable of explaining the existence of organized complexity.
누적된 선택에 의한 진화론이야 말로 생명체처럼 복잡한 조직의 존재를 원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2.

DNA neither cares nor knows. DNA just is. And we dance to its music.
DNA는 알지도 않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거다. 그리고 우리는 그 DNA의 음악에 맞춰 춤출 뿐이다.


3.

Natural selection is the blind watchmaker, blind because it does not see ahead, does not plan consequences, has no purpose in view.
자연선택은 눈먼 시계공이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결과를 계획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목적이 없으니까.


4.

There are very good reasons why the reality of evolution is not universally accepted. It is the hardest theory in science to understand. Many people still misunderstand or are ignorant about the basic principles.
사람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해하기 가장 힘든 과학 이론이니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오해하고 있거나 기본적인 원칙들마저 모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지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