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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Jan 23. 2020

안녕, 잘 가라.

지구별 생존기

2019년 9월 30일 18:15.

칼퇴와 함께 시작된 친한 동료들과의 식사자리, 서로에 대한 반가움과 근황이 대화의 주 메뉴였다.


한참을 신나서 얘기하는 내 시선 위로 핸드폰 속 이름이 날아들었다. 얼마 전 유방암 수술을 마친 00 언니였다. 혹시나 급한일인가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들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00 이가 죽었대. 오늘 아침에."


꼬마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란 동생의 이름이었다. 꼭 20년 만이었다.


"응? 어떻게?"


"자살했대.."


"어 알았어. 언니, 나 어디로 가면 돼?"




20년 만의 연락이 '장례식'이었다. 그런데 별다른 감정이 일지 않았다. 연예인 뉴스란의 소식을 대하는 듯했다. '어쩌다 그랬을까.. 에고.. 딱하기도 하지..' 딱 그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어떤 왕래도 소식도 주고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안 좋은 일은 무조건 함께 한다'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지하철 플랫폼으로 들어서던 때였다.


"어, 언니"


"00역에서 내려, 거기서 보자."


"근데 언니, 00는 무슨 일 이래?"


"뭔 얘기하는 거야."


이제 막 들어오는 지하철 소음이 전화기 너머 언니의 소리를 먹었다. 한쪽 귀를 막고 지하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00라고!! 00!!"


"뭐라고? 걔가 왜?"


"일단 와. 거기서 같이 가게."


그럴 리가 없다. 둘의 이름이 비슷해서 헛갈린 게 아니다. 두 번째로 말한 그 이름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싶었다. 일 순간 멍해진 정신을 다잡았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제야 내 온몸이 부르르 떨고 얼굴은 일그러져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 순간 누가 나를 본다 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어찌어찌 도착한 장례식장.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첫날임에도 꽤 많았다. 그들을 보는 반가움과 떠나간 이에 대한 허망함이 뒤섞어졌다. 어디선가 "누나, 놀랬어? 장난 좀 쳐봤어. 재밌지?" 하며 깜짝 등장할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한 집 건너 한 집이던 시골 동네에서 함께 자라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1년에 한두 번은 안부를 묻고 서로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스무 살이 넘어가던 어느 날엔, 통장을 보여주며 자기랑 연애하자며 장난처럼 말하던 녀석이었다. 유독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다른 사람들을 웃게 만들던 아이. 열여섯이라는 나이에 출가했다가 일찍이 정신을 차려 잘 나가는 자영업 사장님이 되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며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런 녀석의 극단적 선택 앞에, 나는 쿨하고 싶었다. '어차피 다 죽는 인생, 그냥 좀 먼저 간 거뿐이다. 나름 사정이 있었겠지.' 정작 녀석의 영정사진은 보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순간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내 마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과업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채 하루(24시간)도 되지 않아 복귀한 일터, 여전히 자해와 자살시도를 포기하지 않는 내담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만큼 내 직업이 저주스러웠던 적이 또 있을까.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내가 버텨야 내담자들도 버틸 수 있다. 두 주먹과 어금니를 앙 다물었다. 얼마나 힘을 주었던 지 어금니가 힘을 잃고 돌아가고 깨져 한 동안 치료를 받느라 애를 먹었다.






그 후로 두 달.

'000 씨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직장동료 아버지의 소천 소식이었다. 평소 조사는 거의 빠지지 않았던 터라, 어떻게 갈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고민 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내 몸이 내게 뭔가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PTSD 증상이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는 마음은 몸으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없을 지경으로 무너지고 있는 나였다. 요즘에도 건너 건너 지인의 장례식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린다. 그때부터 시작된 불안, 슬픔, 두려움, 자책감은 최근까지도 나를 놓아주지 않고 아주 깊숙이 침잠해 들어왔다.





죽음




아직 온전히 풀지 못한 주제였다. 아니 더 깊게, 면밀히 마주하지 못했던 주제였다. 매일같이 죽고 싶어 하는 내담자들과 함께하며 '살아야 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살아내야 한다. 삶보다 위대한 건 없다' 이게 한 때 죽는 것이 삶에 목표였던 내가 분석(상담사가 받는 상담)을 받으며 변화된 큰 한 가지였다. 살아내지 못하게 가로막는 힘들을 같이 거둬내는 것이 치료 여정의 지향점이었다.



그런데, 녀석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마주한 '죽음'은 지금껏 버텨온 내 신념을 뿌리째 흔들어댔다. 8년 이란 분석시간 동안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가 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죽음' 뿐이라고 누구 좋으라고 죽냐며, 그러니 꿋꿋하게 살아내겠다며 당당하게 맞섰던 나였다. 그런 패기는 어디로 갔던 걸까. 녀석의 자살 이후 잠을 잘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질식할 것 같은 공황 증상을 느끼기도 했다. 심지어 이명과 돌발성 난청까지 더해졌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늘 나의 몸은 전력을 다해 내게 시위하듯 기능을 떨어뜨렸다.




이처럼 가까운 이의 죽음은 강력했다. 살아내고자 하는 모든 의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내 근원 속 불안, 두려움, 분노, 죄책감이 순식간에 일었다 잠잠해지기를 반복했다. 그 뒤로 한 동안 침울했고, 이내 허무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찰나의 행복한 순간, 그때를 위해 억겁과도 같은 불행의 시간을 감당해 내며 사는 것이 인생인가 싶은 허무함이었다. 얼마 동안 태풍과도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고 난 뒤, 볼 수 없던 책을 볼 수 있었다.




슬픔은 기쁨을 위해 그대를 준비시킨다. 그것은 난폭하게 그대 집안의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다. 새로운 기쁨이 들어올 공간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것은 그대 가슴의 가지에서 변색된 잎들을 흔든다. 초록의 새잎이 그 자리에서 자랄 수 있도록. 그것은 썩은 뿌리를 잡아 뽑는다. 그 아래 숨겨진 새 뿌리들이 자라날 공간을 갖도록. 슬픔이 그대의 가슴으로부터 흔드는 것마다. 훨씬 좋은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 루미 -



그렇다. 녀석의 죽음은 내 영혼 가장 깊은 곳의 슬픔을 이끌어 냈다. 아니 더 정확히 슬픔을 넘어서는 참담함이었다. 그런 내게 시인 루미가 말해 오고 있었다.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는 슬픔, 그것 뒤에 오는 것들을 바라보라고...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그 경험 자체로 치유된다. 그 순간이 주는 여운이 평생을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루미가 내게 건네는 공감의 힘은 아픈 순간에 매몰되어 버린 나를 일깨웠다. 내 마음속 고통과 슬픔의 반대 세력인, 새롭게 채워질 기쁨을 향해 눈 뜨게 했다. 동시에 고통과 아픔을 넘어선 힘들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렇다. 나는 회복되어 가고 있다. 여전히 슬픔의 여진이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찬란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Thanks God, Thanks Lumi.



p.s. 오늘은 특별히,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대들의 삶에 기쁨이 깃들길... 간절함 담아 나의 신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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