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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Nov 20. 2020

심리치료사로 산다는 것.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얼마 , 상담을 마치고 마음을 정리하느라 멍하니 앉아있던 날이었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기 화면익숙한 이름. 나보다  살도  많은 동료 치료사의 전화다.



"네, 쌤~"


통화가 가능하냐 묻던 그는 이내 훌쩍였다.

그의 흐느낌이 적막과 함께 서로의 전화를 이어주고 있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 그에게 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어떤 케이스가 또 이렇게 눈물 나게 하고 무너지게 했는지..



우린 안다.

그것이 최고의 위로임을.

누군가의 아픔 앞에, 그 어떤 BGM도, 잔소리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백색소음 속 그의 흐느낌이 내 가슴을 치고 그에게로 돌아가 일으키는 진동,

그 진동 속에 그는 다시 살아낼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나는 듣고 그는 그저 울고 있었다.



미처 울어내지 못한 내담자의 것을 대신 울어내고, 그러면서도 그 앞에선 가슴으로 우는 일..

때로 나는 내담자 앞에서 서슴없이 훌쩍거리기도 하는 무능력한 치료자이지만.


치료사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결단코 낭만적이지 않다.


끝없는 절망 앞에 무너지고,

또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그러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로,

삶으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래도 어찌하리.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임을.

천하의 칼잡이 이국종 교수도 월급 받았으니 한다는데, 내가 뭐라고 뭐 위대한 일 한다 으스대겠는가.



아무도 가지 않는 그 절망 속을 용기 내 걸어가는 마음 아픈 이들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기에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부디 내 가는 길, 그리고 내 동료의 길 속에, 신의 은총이 깃들길..

간절함 담아 빌어본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던 예수의 말이, 그에게 위로로 가 닿길..


오늘 밤엔 초를 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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