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아주 고약한, 구천을 떠도는 허세가 하나 있는데.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한다면 넘버 원으로 ‘킬 빌’을 꼽으면 안 된다는 거다. 한마디로 안 쳐 준다는 건데 저는 돌고 돌아 아무리 둘러봐도 킬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타란티노의 영화를 본 것은 아마도 중3 혹은 고1이었을 것이다. 그 유명한 펄프 픽션. 비디오 가게에서 ‘아빠가 이거 빌려오래요.’라고 말하면 순순히 19금 테잎도 빌려주던, 믿음의 시기였다. 펄프 픽션은 기가 막힌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그 음악과 화면의 편집을 일치시키는 감각적인 작품이었다. 특히 미아가 ‘Girl, You’ll Be A Woman’을 들으며 춤추는 장면은 지루하고 권태로운 나의 10대 후반을 위로하는 장면처럼 느껴져 자주 떠올렸다. 다만 시간 순서에서 조금 실수를 한 것 같더군요, 죽었던 배우가 뒤에 또 나오질 않나. 아이고 참, 그래요 타란티노 씨. 괜찮아요. 데뷔작이니까 그럴 수 있죠. 제가 이해할게요.(조크입니다!)
조금만 더 타란티노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는 비디오 알바 중에 단연코 가장 성공한 사람이다. 덕업 일치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실제로도 그의 영화들은 그가 알바를 하며 본 몇 만 편의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오마쥬 한다. 그는 자신이 겪은 취향과 감각을 재료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별 의미도 없는 주제에 시끄럽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감독이라는 평도 받았지만 어차피 타란티노는 쉴 새 없이 떠들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 말을 못 듣는다. 그래요, 타란티노 씨. 그런 사람들 말은 듣지도 말아요.(아이고, 이 말도 안 듣겠구나). 그리고 잘난 사람은 어떻게든 성공하고야 만다는 산증인이기도 한데 이 사람 때문에 전국 비디오 가게 알바들이 미래의 감독을 꿈꾸다 이도 저도 아닌 실업자가 된 사례가 꽤 많을 거라 추측되고, 이런 천재는 따라 하시는 거 아닙니다. 제가 몇 번 해봐서 알아요.
자 이제 다시 그 구천을 떠도는 허세와 맞설 시간이다. 왜 킬빌인가. 그것은 이 영화가 나의 동기화(동기화: ost만 나오면 현실과 영화 속 경계가 흐릿해지다가 , 주인공으로 변하는 경미한 망상의 일환으로 내적인 수치심만 이겨낼 수 있다면 삶의 활력 보장)를 자극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 취향이다.
킬 빌은 아래와 같이 5개의 챕터로 진행된다.
챕터 1: 2
챕터 2: The blood-splattered Bride(피투성이 신부)
챕터 3: The Origin of O-Ren (오렌 이시의 기원)
챕터 4: The Man from Okinawa (오키나와의 남자)
챕터 5: Showdown at House of Blue Leaves(녹엽정의 결투)
이 중 가장 동기화가 강하게 일어나는 챕터는 1.3.5번이다. 3.5 챕터는 이미 너무 유명하니 넘어가고 여기에선 1 챕터만 얘기해 보기로 한다. 1 챕터는 그러니까 담백하고 쿨한 1:1 액션씬의 마스터피스다. 그전에 아주 간단히 줄거리를 말하자면 ‘빌’이 이끄는 글로벌한 일타 킬러 그룹이 있고, 그중 에이스인 키도(우마 서먼)는 그와 연인 관계다. 그러던 어느 날, 키도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빌은 그녀를 쫒다가 어느 시골 구석에서 키도가 말도 안 되는 평범한 남자랑 결혼한다는 걸 알아낸 거다. 나 같이 멋있는 남자랑 만나다가 저런 애랑 결혼한다고? 그것도 만삭의 몸으로? 그래서 ‘빌’이 멤버들을 데리고 가 결혼식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키도의 경우는 빌이 손수 머리에 총을 쏘기까지 했는데, 웬일인지 그녀는 죽지 않았고 의식 불명의 상태로 5년을 버티다 깨어난다. 그리고 빌(+멤버들)을 죽이러 간다. 제목처럼 심플하게.
자신의 결혼식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던 멤버 중 한 명인 ‘버니타 그린’을 찾아온 키도(우마 서먼)가 화면에 등장한다. 복수의 대상인 멤버는 킬러 생활을 청산하고 여느 중산층 학부모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고 키도가 문을 두드리자 환한 미소와 함께 나온다. 문을 열면 예의 그 삐뽀삐뽀 음악이 나오는데. 심각한 순간에 삐뽀라는 표현이 미안하지만 직접 들어보면 삐~뽀 외에는 답이 없을 것이다. 이 음악은 이후 키도의 뚜껑 열림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사용된다. 키도와 붙을 때 이 음악이 나오면 그냥 그 상대는 골로 간다 생각하면 된다. 암튼 문이 열리고, 서로를 알아본 둘은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엄청 절도 있고 박력 있게 싸우면서 집안을 다 때려 부신다. 두 사람은 긴바지를 입고 있지만, 근육으로 가득 찬 허벅지는 근사하게 꿈틀거린다. 유리 테이블이 박살 날 정도로 메다 꽂히고 나무 방망이로 허벅지를 맞아도 징징대지 않고 싸워 나가는 그녀들의 모습은 뜨겁고 냉정하다. 그러다 정확히 러닝 타임 7분 5초에 넘어진 탁자를 두발 뛰기로 가볍게 넘는 키도의 뒷모습이 나오는데 평소 ‘간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고 있었던 내게는 깨달음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간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키도의 두 발 모아 뛰기다. 십몇년의 수련을 거쳐 아주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테크닉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전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간지다. (알고 보니 이건 우마 서먼이 아닌 그녀의 스턴트를 했던 조이 벨의 모아 뛰기였다. 뒷모습이라 몰랐다. 그녀는 훗날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라는 미친 영화에도 출연한다. 스턴트가 아닌 주인공으로.) 다시, 식칼을 들고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유치원에서 돌아온 버니타 그린의 딸 니키가 모습을 드러낸다. 버니타 그린의 애원하는 눈빛에 키도는 잠깐 칼을 뒤로 숨긴다. 니키는 똘망해 보이는 여자아이로, 자신을 4살이라 소개한다. 키도는 자신의 아이도 살아있었으면(너네 엄마가 안 죽였으면) 4살이었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니키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고, 잠깐 열을 식힌 두 여자는 커피를 나누어 마신다. 버니타 그린은 아이를 봐서라도 좋게 넘어갈 생각이 없냐고 묻지만 키도에게는 먹히는 계략이 아니다. 그녀는 신처럼 냉정한 얼굴로 우리 사이엔 아직 계산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다만 니 애 앞에서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고. 어디서 죽여줄까. 두 사람은 그날 밤 어느 운동장에서 만나 계산을 끝내기로 한다. 그러니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키도는 챕터 1에서 우아하고, 이성적이고, 인간적이었다. 그녀는 분명 좋은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이후에 내용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라.)
킬빌이 나의 최애인 개인적인 이유를 하나 더 더하자면 이거다. 너 킬빌에 나오는 그 여자 닮았다. 이름은 모르겠고 노란색 츄리닝 입고 나오는 여자. 이런 얘기를 들었던 거다. 그래? 왜냐고 묻지 않았다. 혹시나 그 친구가 의견을 철회할까 봐. 고등학교 때 빨간 테 돋보기를 끼고 다녔던 수정이, 얼굴 좌우대칭이 완벽했던 수정이, 나중에 라식 수술을 하고 아나운서가 된 수정이. 넌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이야 그치? 절대 그냥 한번 던진 얘기가 아니잖아. 결코 예쁜 여자들 특유의 관대한 사회성 멘트가 아니었던 거잖아. 그치? 아냐. 대답하지 마. 고맙다 수정아. 그날 이후로 동기화가 너무 강력해져서 킬빌 ost만 들으면 앞에 있는 가드레일 어떤 것이든 사뿐히 뛰어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길고 탄탄한 허벅지에 작은 나이프를 차고 남은 계산을 끝내러 다니는 고독한 여자.
어느 날, 어느 놀이터, 어느 가드레일 앞에 선 나는 두발을 모아 껑충 뛰어보았다. 물론 제자리에서. 짐작건대 뛰어넘으려 시도했다면 정강이에 걸려서 앞으로 고꾸라질 실력이었다, 갑자기 이성적으로 변해서는 한 발씩 건너가려고 하는데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아니 애들 놀이터 가드레일이 왜 성인 여자의 다리 길이보다 높지? 또 왜 이렇게 미끄럽고. 애초에 이거 왜 넘으려고 했더라. 암튼 한 일분 정도 사투를 벌이고 있으니까 뒤에 따라오던 친구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다가왔고, 등 뒤로 땀이 흘렀고, 갑자기 뭐 하냐고 진지하게 한 친구가 질문했고, 나는 그냥 그네가 타고 싶었다고 말했다. 왜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냐고, 누나 진짜 운동 못한다고 말했던 그 아이. 너 내가 얼굴 기억한다.
챕터 3,5는 잔인하고 과하다. 거의 초에 한 명꼴로 죽는 씬도 있다. 그야말로 대학살이다. 말도 안 되게 폭력적이지만 불쾌하냐 하면 그렇진 않다. 왜냐면 타란티노의 폭력은 대부분 보편적인 감성 그러니까 ‘인과응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혼을 파괴한 킬러들에게 복수할 때,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나치들을 처단할 때, 마약과 개똥철학에 취해 살인도 서슴지 않았던 맨슨 패밀리에 맞설 때 우리는 현실감 없이, 폭발하는 폭력을 보며 시원해한다. 뜨거운 온천에 몸을 담구듯, 국밥을 완뚝하고 배를 쓰다듬듯. 타란티노는 원하는 것을 원 없이 보여준다.
미카엘 하네케는 칸에서 ‘저수지의 개들’을 보고 역겹다고 말했다. 극 중 사이코패스인 미스터 브론드가 경찰의 귀를 자르는 장면에서 ‘또 잘라줄까’라는 대사를 듣고 관객들이 웃었기 때문이다. 그는 침을 뱉고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하네케는 ‘퍼니 게임’을 만든다. 그리고 포스터에 ‘반타란티노 영화’라는 문구를 새겨 넣는다. 당신(관객)들이 그리도 원하는 걸(폭력을) 제대로 보여줄 테니 기분이 어떤지 한번 말해보라며. 한마디로 관객들 괴롭히는 영화인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타란티노의 영화보다 몇 배는 더 폭력적이다. 왜냐면 영화가 너무 현실적이고, 폭력의 대상이 무고하기 때문이다. 전제와 대상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나는 하네케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그는 훌륭한 감독이고, 저는 그를 좋아합니다. 특히 ‘피아니스트’. 하지만 이 영화 역시 타란티노보다 더 폭력적으로 느껴집니다만. )
그래서 빌을 죽였냐고? 죽인다. 킬 빌은 원래 3시간이 넘는 영화인데 1.2.로 나누어 개봉했다. 2편에서 키도는 빌을 죽인다. (그리고 반전이 있다.) 빌은 집단의 수장답게 목숨을 애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사랑을 다시 한번 고백한다. 나는 내 방식대로 너를 사랑한 거야. 난 킬러잖아.
빌이 자신의 방식대로 키도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듯이, 타란티노는 자신의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말만 하는 수다스러운 사람이지만, 그 수다가 지루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람이다.
타란티노는 10편을 만들고 은퇴하겠다는 선언을 했지만, 그 10편이야말로 수만 개 비디오의 정수이자 음악의 정수. 되도록이면, 이번만큼은 말을 번복하고 11번째 작품을 만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타란티노 식의 대사를 따라서 썼는데. 무슨 김치찌개 관련된 거였는데 친구가 이거 도대체 의도가 뭐냐고 해서, 머뭇거리다가. 타란티노식 대사라고 고백했는데. 한 십 초 동안 마가 떠서 친구가 전화 끊은 줄 알았고, 이후에 너무 길게 한숨을 쉬길래 나도 따라 쉬었다. 왜!! 뭐!!!
+킬 빌도 좋지만, 재키 브라운도 좋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묻힌 느낌이 있어 안타깝다. 특히 추천하는 장면은
‘맥스 체리’가 보석금을 내고 재키를 데리러 와서,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재키를 처음 보는 장면이다. Bloodstone의 ‘Natural High’가 흐르고 맥스 체리는 재키에게 매혹된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내색하지 않는다. 고혹적인 얼굴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 여자에게 원형탈모가 시작된 남자가 반하는 장면이 왜 좋냐고 묻는다면. 내가 아는 가장 산뜻한 멜로 서사의 시작점이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두 사람 다 쿨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고 치졸하지 않다. 일이 끝난 후에, 사랑을 돌아보는 성격 또한 같다. 무엇보다 고독한데, 그 고독으로 누군가에게 징징대지 않는다. 멋진 으른들의 사랑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보시라. (물론 멜로 영화는 아닙니다만. 어림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