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이와이와 시니컬한 뒷산 새내기
차마 밝힐 수 없는 기이하고 치사한 이유로 재수를 했다. 다행히 아주 즐거운 재수 생활을 했다. 당구장에서 한 달 반 알바를 했고, 닉스 청바지와 스톰 스웨터를 사 입었고, 껄렁거리며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리고 까만색 배낭을 메고 홀로 국제 영화제에 갔다. 여행이라도 간 것처럼 멋스러워 보이지만, 지하철로 30분도 안 걸리는 곳이었다. 우리 집은 부산이었으니까. (지하철은 내가 유일하게 멀미를 안 하는 이동수단이다.) 독립영화를 하는 사촌 오빠가 미리 와 있다고 연락이 왔고, 같이 영화를 한편 본 후 오빠에게 진학 상담을 했다. 오빠는 경성대에 가라고 했다. 부산에서 가장 전통 있는 연극영화과니까. 수영구 쪽이라 니네 집이랑도 가까울걸? 상담은 3분 만에 끝났다. 네 가겠습니다.
나는 경성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동기들보다 1살 많은 새내기가 되었고, 1주일간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소풍 전날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이란 과연 뭘까? 선배들과 삥 둘러앉아 하하호호 이름을 소개하고, 맥락 없는 장기자랑을 하다가 저녁에는 쓰러질 때까지 술을 먹는 것일까. 그런데 왜 새벽부터 오라고 하는 것일까. 선배님들도 참… 왜 뒷산에 모이는 것일까. 왜… 운동복 입고 오라고 했을까.
그런 시기였다. 학과의 전통과 군기가 비례하는 시기. 자아가 비대한 예술가 새내기들의 허세를 육체적 고난으로 덜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시기. ‘하하호호, 선배님도 참’을 상상하며 갔던 나는 새벽부터 뒷산을 삼십 바퀴 돌고 전방 십 미터 고함 발사를 하다가 무릎이 풀리고 말았다. 군기 반장인 선배가 니네가 왜 이렇게 고생하는 줄 알아?라고 고함을 지르셨는데 연극을 전공한 선배라서 발성이 정말 훌륭했다.(선배도 모르면서!!! ) 끝내 답을 안 가르쳐 주셔서 아직도 모른다.
신입생들의 기운을 좀 빼고 나면 시청각실에 옹기종기 모여 어둠의 명작들을 본다. 이쯤 되면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는 것만으로 기쁘다. 와, 의자에 앉는다!! 근데 영화도 보여주네. 99년도는 아직 일본 대중문화가 화끈하게 개방이 안된 시기였기 때문에 입소문만 무성한 영화들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였다. 13인치처럼 보이는 29인치 텔레비전으로 우리는 복사 테잎에 담겨있는 하얀 설원을 보고, 오겡끼 데스까를 들었다. ‘하, 진짜 이 애송이 녀석들 이제 알겠냐? 이게 바로 영화다’라는 얼굴로 불을 켜는 선배와, 상기된 아이들의 표정, 감탄. 그래서 내게 오리엔테이션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러브 레터’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러니까, 기대와는 다른 것.
아니 와타나베 히로코상. 잘도 오겡끼 데스까 하고 있네? 진심으로, 저 남자, 용서할 수 있겠어요? 자기가 좋아했던 여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당신과 결혼했잖아요. 미완의 첫사랑에 사로잡힌 올드보이에 웬일인지 첫사랑 당사자에게는 고백도 않는 회피형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는 이 남자가 뭐가 좋다고 울부짖고 있습니까?(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근데 잘생겼잖아라고 중얼거리지만 모른 척하고 있다. ) 이와이 슌지의 정체는 뽀샤시 필터를 낀 사디스트였구만.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머릿속 생각이고, 새벽에 뒷산을 30바퀴 돌고 온 나는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명작을 보여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역시 이와이 슌지상. 스고이!! 뒷산이 이렇게 무섭다.
그렇게 이와이 슌지에게 알 수 없는 불만을 품고 있던 1학년 1학기의 중반, 나는 진심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영화 자료실에서 무작위로 빌려간 테잎 때문이었다. 이와이 슌지의 94년 데뷔작 ‘언두’였다. 40분 정도의 영화는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무섭고 슬펐다. 와, 이런 게 가능하구나.
모에이(야마구치 토모코, ‘롱 베케이션’의 여주로 유명하다)는 약혼자이자 소설가인 유키오(토요카와 에츠시)와 동거 중이다. 유키오는 다정하고 핸섬하지만, 성실한 소설가가 그렇듯 늘 자신만의 세계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 반면 모에이는 한가하다. 그녀는 어느 날 교정기를 빼고 돌아와 유키오와 키스한다. 유키오는 왠지 키스의 느낌이 달라졌다며 작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날의 일은 늘 유키오의 등을 바라보던 모에이에게 치명적인 균열을 남긴다.
이후로 그녀는 유키오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치아를 단단히 옭아맸던 철사처럼 주변 것들을 밧줄로 묶기 시작한다. 강아지 대신 유키오가 사 온 거북이를 묶어 매달고, 뜨개실과 자신의 손을 함께 묶어 버리고, 심지어는 유키오와 찍었던 과거의 사진을 붉은 실로 꽤 메어 버린다. 붉은 실로 자신의 눈과 입이 꽤어진 것을 발견한 유키오는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가게 된다. 의사는 너무 사랑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녀를 진짜 묶어주는 것도 하나의 치료가 될 수 있다고.(이 의사의 등록증 진위여부가 시급하다.) 유키오는 모에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제대로 매듭짓는 법을 배워 그녀를 묶는다. 분명 유키오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구멍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해 묶어도 그녀는 무표정하게 말할 뿐이다. 좀 더 제대로 묶어줄래?
유키오는 사랑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그녀를 꽁꽁 묶는다. 그 순간 그 행위는 치료가 아닌 가학적인 분풀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모에이의 눈빛은 비어있다. 다음 날, 모에이는 사라진다. 비행기가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너무 심한 나머지, 그냥 추락해버리고 만 비행 조종사처럼. 그녀는 자신을 떠날지도 모르는 약혼자를 떠난다.
병을 처음으로 진단받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두 사람은 거리에서 키스한다. 아마도 봄이었을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소풍을 나온 걸 보면. 모에이는 유키오의 머리를 헝클으며 키스를 퍼붓는다. 아이들은 두 사람을 보고 까르르 웃는다. 그 순간 그녀는 유키오를 묶고 있었고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이후에 국내 cf에서 그 장면이 로맨틱하게 패러디되는 것을 보았다. 선남선녀의 절망은 때로 사람들에게 낭만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
이 영화는 심야상영으로 개봉한 이와이 슌지의 첫 영화 데뷔작이다. 흔히 이와이 슌지의 세계를 블랙 이와이(언두, 피크닉,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등)/ 화이트 이와이(러브 레터, 사월의 이야기 등)로 나눌 때 블랙의 선두에 서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와이 슌지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 그러니까 미소녀의 첫사랑을 즐겨 찍는 긴 단발의 중년감독이라는 약간 습습한 고정관념을 아름답게 바꿔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랑의 이면이랄까.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밝혀두지만, 저의 1학년 오리엔테이션 뒷산은 소중한 추억입니다. 진짭니다.) 결혼 직전, 교정기를 뺀 직후, 소설의 탈고 직전. 등 무언가가 좋아지리라 한껏 기대되는 순간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리고 불안은, 좋아하는 마음과 비례한다. 교정기를 빼서 나에게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닐까? 저 소설이 끝나면, 또 다른 작업을 시작하겠지. 저 사람은… 날 사랑하기는 할까. 우리는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과연…. 과연… 역시…
그래도 내게는 '러브 레터'의 침묵보다 '언두'의 이 기괴함이 더 마음을 울렸다.
‘Undo’는 컴퓨터 편집란에 있는 ‘실행취소’ 명령어다. 누르면 직전에 실행했던 작업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아마도 모에이는 자신의 교정기를 빼기 직전으로 가기 위해 이런 행동을 계속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실행취소가 되지 않는다. 버튼을 더 세게 누르고 더 빠르게 누르고 결국은 컴퓨터가 망가질 때까지 누르다가 자신을 망가뜨려버리고 만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유키오가 교정기를 빼니까 키스의 맛이 더 좋아졌다고, 소설이고 뭐고 지금 당장 여행이나 가자라고 했다면. 그리고 정말 소설은 그만두고 둘이서 24시간 붙어 있을 수 있는 토스트 가게를 차렸다면, 그럼 모에이는 행복했을까. 아니었겠지. 유키오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모에이는 그토록 절망적으로 그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유와, 절망하는 이유가 같을 때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해답을 모를 때 인간은 소중한 존재를 괴롭히고 자신을 괴롭힌다. 모에이는 유키오에게서 사라지는 것으로 그의 미완성 소설이 되었다. 영원히 묶어 둘 수 없는 사랑이라면, 차선책으로 영원히 풀리지 않게 엉망인 상태가 되면 된다. 이제 유키오는 그 소설을 영원히 완성할 수 없다.
나는 20살이었고, 제대로 된 연애는 해본 적도 없었다. 감탄했다. 역시 사랑이라는 건 자전거와 러브레터와 벚꽃이 아니라 몇 백 미터 길이의 밧줄로 허공을 묶어 대는 것인가. 내가 모르는 사랑의 뒷산, 사랑의 지하실이란 저렇게 생긴 것인가. 그래서 내가 무의식적인 두려움에 남자친구를 안 사귀는 것인가. 역시.(못 사귀는 거잖아라는 이성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이 학과에 예쁜 애들이 너무 많아요. 살려줘.) 그러니 나는 남자친구 없는 현실에 슬퍼하지 말자. 이 절절한 사랑일랑 최대한 유예시키자. 언젠가는 나와 사랑의 뒷산을 오를 미남을 만나게 될 테니.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언두를 몇 번이고 다시 보았고 선남선녀의 절망을 곱씹으며, 하염없이 걸었다.(광안리는 상습 정체 구간이라 멀미가 심한 바,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서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물론 이 영화도 러브레터를 생각했던 것처럼 좀 시니컬하게 생각하면 두 사람의 파국은 여자가 너무 한가해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자의 직업은 모호하다. 그 당시에는 사랑을 갈구하는 모에이에게 감정이 이입됐지만, 지금 보면 소설가인 유키오가 더 미칠 노릇인 것 같다. 사랑하는데, 도와주고 싶은데 상대는 계속 추락한다. 내가 준 약을 먹고, 야위어 간다. 그리고 그건 나 때문이란다. 아 어떻게 해야 하지. 소설도 써야 되는데, 또 애인도 묶어줘야 하고. 짬짬이 밀려 있는 월세나 뭐 이런 것들도 해결해야 하고.
요즘 같은 시대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너도 밖에 나가서 일을 좀 해. 상담도 받고. 오빠 진지하다.
‘백수인 약혼자, 정신과 상담까지. 이 결혼하는 게 좋을까요'라는 제목으로 ‘네이트 판’에 올라올 거고 사람들은 당장 파혼하지 않는 니가 등신이라고 닦달할 거다. 절망할 시간에 계산을 하는 시대다.
그러니 사랑의 계산기에 지친 자들이여, 언두를 보자. 사랑 때문에 아픈 사람들도 언두를 보자. 그냥 다 같이 보자!! (함께 사랑의 뒷산으로 뛰어가자. 서른 바퀴를 뛰어도 보자. 응?).이 영화를 본 후, 아무리 언두 명령어를 누른 들 그것은 실행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다시는 이 영화를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좋은 영화란 그런 것이다.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96년작 ‘피크닉’을 보시라. 이후에는 그 유명한 ‘릴리 슈슈의 모든 것’으로 블랙 이와이의 핵심 명소 코스를 돌아본다. 만약 이 영화들이 당신에게 맞을지 어떨지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릴리 슈슈의 모든 것 ost’를 검색해 'Arabesque'를 들어보자.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든다면,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