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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 Feb 13. 2024

24년 1월 파리살이 회고

우울한 회색빛의 파리



아이폰을 소매치기당한 날, 내 속도 모르고 예쁘게 반짝이던 에펠탑이 너무 미웠다. 그렇다. 새해 첫 달은 제발 나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비극과 함께 맞이했다. 액땜이라 믿고 싶다.



없는 살림에 몇 없는 고가의 재산을 잃어버린 후 흔들리는 멘탈을 꽉 붙들어 잡아야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가 아니라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 없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흐리고 축축한 파리의 겨울은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진정으로 파리를 사랑한다면, 회색빛의 파리도 사랑해야 하거늘. 나는 아직 파리의 멋을 진정으로 느끼기엔 깜냥이 부족한가 보다. 아직은 화창하고 파릇파릇한 여름의 파리가 좋다.





그래도 아주 가끔, 아주 드물게, 한겨울에도 화창한 하늘이 펼쳐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다. 별 이유도 없이 그런 날은 학교 가는 발걸음도 가볍고, 일하러 가는 발걸음도 산뜻하다. 바깥공기를 깊게 한 번 들어마시며 허한 마음을 채웠다. 별거 아닌 것에 기분이 다시 나아지고, 이미 놓쳐버린 것에 연연하지 않으며 앞만 보며 걸으며, 그렇게 하루씩 하루씩, 씩씩하게 한 달을 보냈다.



이유를 묻지 말자


마음이 소란할 때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왜 나에게는 계속 힘든 일이 생길까,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렇게 불어 실력이 늘지 않을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잔고는 왜 계속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걸까... 이유를 묻지 않기로 했다. 그냥 살아보는 거다.





언어는 다가갈수록 오를 수 없는 벽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지 3개월 차가 되었다. 언어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쩐지 장벽이 더 높아만 진다. 무언가를 깊이 배울 때 좌절감은 필연이다. 내가 말을 못 알아 들었을 때, 손님들의 표정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천천히 말해주거나 영어 할 수 있냐고 묻는 이해심 많은 손님들도 더러 있지만, ‘말도 못 알아들으면서 너 왜 여기 있어?’라고 눈으로 말하는 손님들도 있다. 일초 남짓한 짧은 순간, 그 손님 앞에서 나는 무쓸모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가 무심코 뱉어내는 표정과 감정으로부터 자존감을 필사적으로 지켜내야 했다. 그래도 단골 아저씨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 피식 웃으며 금세 기분이 풀리기도 하니 ‘이만하면 오늘도 썩 괜찮았지’ 생각이 들곤 했다.




해외에 살면서 더 단단해졌냐고?


아니, 난 여전히 깨지기 쉬운 인간이다. 다만, 깨지면 다시 붙이고, 또 깨지면 다시 또 붙이기를 반복할 뿐이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음은 얼마나 많이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회복했느냐’에 달려있다. 바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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