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숲을 항해하는 미술관
파리의 도심 속 숲을 항해하는 거대한 돛단배 한 척이 있습니다. 바로, 퐁다시옹 루이비통(Fondation Louis Vuitton)입니다.
최근에 마크 로스코, 작년에는 앤디워홀과 장 바스키아의 콜라보 전시가 열렸던 미술관입니다. 이름에서 바로 알 수 있다시피 LVMH 그룹에서 현대미술과 공연 등의 문화예술을 공헌하는 차원에서 설립한 공간입니다. 그리고, 제가 파리에서 좋아하는 공간 중에 손에 꼽는 곳이랍니다.
퐁다시옹 루이비통은 파리의 서쪽, 불론뉴 숲(Bois de Boulogne)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불론뉴 숲은 파리 시내 구 하나의 크기보다 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숲입니다. 참고로 뉴욕 센트럴파크의 2.5배 , 런던 하이드파크의 3.3배 크기라고 하네요. 숲 안에는 여러 공원들과 경마장, 프랑스 귀족 가문의 성도 있습니다. 대도시에서 이런 울창한 숲을 접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죠. 더운 여름에는 상쾌하게 피톤치드를 맞으면서 숲 속의 오솔길을 산책하기 참 좋은 곳입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약 15분 정도 숲길을 따라 걸으면 고즈넉한 숲과는 아주 이질적인 화려하고 현대적인 건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건물의 외관을 다시 살펴보면, 마치 웅장한 함선이 연상되지 않나요? 투명한 하늘 아래 푸른 숲 위를 항해하고 있는 것만 같죠. 유리로 된 12개의 돛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바람에 흔들리는 돛처럼 보이죠. 각각의 돛은 서로 다른 각도와 크기로 설계되었습니다. 때문에 건물이 빛과 그림자를 훨씬 다채롭게 투영하거나 반사하면서 화려한 인상을 줍니다.
이 건축물은 해체주의를 대표하는 건축계 거장 프랭크 게리의 손길로 탄생했습니다. 자유롭고 유연한 예술적 형태로 유명한 그의 스타일을 퐁다시옹 루이비통에서도 느낄 수 있어요. 마치 바람에 휘날려 춤추는 듯한 외관의 유리 표면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2001년, 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한 후 프랭크 게리를 만났다고 해요. 프랭크 게리에게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건축물을 설계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예술과 문화를 향한 자신의 깊은 애정과 파리 도심에 현대적인 감각의 건축물을 짓는 것이 목표였어요.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예술적 상상력과 창의성이 만나는 교차점이 되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약 6년에 걸친 공사 끝에, 퐁다시옹 루이비통은 2014년에 개장되었습니다.
프랭크 게리는 형태와 공간에 대한 독창적인 접근과 디자인으로 유명한 건축가입니다. 앞서 언급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데요. 스페인의 빌바오라는 도시의 아이콘이자, 도시의 경제산업을 바꿀 만큼 획기적인 건축물입니다. 이 건축물은 마치 강 위를 헤엄치는 물고기의 움직임처럼 매우 역동적이죠. 이렇듯 그의 건축은 전통적인 건축의 경계를 무한대로 넘나 들며, 독특한 예술 세계를 보여줍니다.
퐁디시옹 루이비통의 디자인 컨셉은 파리의 자연과 역사를 현대적 예술로 재해석하는 것이었어요. 돛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유기적인 형상을 통해 자연과의 조화를 구현했고요. 유리와 금속의 사용을 통해서 도시의 현대적 미감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건축 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있어요. 바로 이 물계단이에요. 배의 앞머리 쪽에 물이 계단을 따라서 흘러 내려가고 있거든요. 물의 흐름을 보면, 정말로 배가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물은 건물 내부로도 연결이 되고요. 유기적인 건축 형태를 디테일하게 완성시켜주고 있죠. 그리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청각적 요소와 울창한 숲의 시각적 이미지까지 더해져서 사람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물결 모양의 유리 패널과 비정형적인 구조가 바로 프랭크 게리의 독창적인 스타일입니다. 이는 내부 공간에서 바라봤을 때에도 독특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내부 공간은 유동적이고 개방적인데요. 다양한 각도와 시점에서 공간을 관찰할 수 있어요.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전시실이 있는데요. 한 기획전을 다 관람하려면 총 4개의 층, 11개의 전시실을 둘러봐야 하거든요. 그런데 전시 동선을 따라가면서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어떤 방은 둥글기도 하고, 어떤 방은 길쭉하기도 하고, 넓었다가 좁아지기도 하고요. 이렇게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 장면이나 공간적 체험이 계속해서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면 마지막으로 항상 테라스에 올라가곤 합니다. 주변에 펼쳐진 드넓은 불론뉴 숲과 탁 트인 파리의 경치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어요. 거의 360도 한 바퀴 돌면서 경치를 감상을 할 수 있는데요. 유리, 금속, 목재 등 재료가 혼합된, 자유로운 곡선의 외벽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재단에서 소유한 다양한 컬렉션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설치작품을 한 점을 소개할게요. 물 옆에 LED와 거울 단면으로 된 기둥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요. 물 위에 영롱하게 반사되는 모습 때문인지 비현실적인 공간처럼 보이는데요. 처음에는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건축의 한 요소인 줄 알았어요. Olafur Eliasson이라는 작가의 "INSIDE THE HORIZON"이라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지평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세상은 동굴처럼 폐쇄되어 있고, 거울처럼 반사되고, 일시적인 빛처럼 보일 것이다. 나에게 지평선은 선이 아니라 차원이다”라고 말합니다. LED의 쨍한 빛과 내부의 풍경을 조각조각 반사해서 보여주는 거울 덕분에 공간이 무한히 펼쳐진 사차원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프랭크 게리가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건축으로는 런던의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이라는 건축이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유리 건물인데요. 1851년 조셉 팍스턴(Joseph Paxton)에 의해 설계되었어요. 대영 제국 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죠. 크리스털 팰리스는 전면적으로 유리와 철을 사용해 만들어졌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방식이었어요. 이 건물은 내부에 넓은 공간을 제공하면서도, 풍부한 자연광을 활용하여 실내에 정원 같은 느낌을 줍니다. 19세기 후반은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새로운 건축 재료와 기술이 등장하면서, 유리와 철을 사용한 구조물들이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프랭크 게리는 이런 역사적 사례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고, 유리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면서, 투명한 느낌의 공간을 완성했습니다. 자연과의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의 예술관 또한 이런 역사적 흐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반영하기 위해 시간과 빛에 따라 진화하는 건물을 만들고 싶었고, 일시적이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_프랭크 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