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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물학자 천종식 Oct 20. 2019

한식은 과연 건강에 좋은가?

장내 미생물의 관점에서 본 한식

영국 의학저널 랜싯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2030년 기대수명이 90세가 되어, 우리나라가 가장 장수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의 언론은 한국인이 서양, 특히 미국인에 비해서 날씬하고 건강한 이유로 주로 한식을 꼽힌다. 요즘엔 우리나라도 정제된 탄수화물, 가공식품, 육류 위주의 서구화된 식단을 즐기는 사람이 크게 늘면서 비만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건강한 식단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식을 기반으로 최고급 메뉴를 내어놓는 파인 다이닝 식당도 많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몸에 좋은 식단이란 무엇일까?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해주면 식사의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것일까? 여기서 우리가 빠트리기 쉬운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우리 장에서 먹을 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장내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이다. 무려 38조 마리나 된다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잘 먹이지 않으면, 비만, 당뇨, 아토피, 심지어 치매로 우리에게 복수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한식은 서양식에 비해 장내 미생물을 더 잘 먹일 수 있을까?


장내 미생물과 식품의 관계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신동미 교수팀이 최근에 이를 조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에 그 연구결과를 필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신 교수팀은 54명의 BMI 지수 23 이상의 비만인 성인을 대상으로 3가지 서로 다른 식단을 먹도록 했다. 하나는 국내 영양학을 기반으로 고안된 한식이고, 다른 두 가지는 미국인의 평균 식단과 미국 농무부에서 좋다고 추천하는 미국 식단이다. 미국 평균 식단은 미국 추천 식단에 비해서 지방의 함량이 높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4주 동안 3가지 중 한 가지의 식단을 도시락으로 받아 하루 3끼와 간식을 먹었다. “오늘은 뭘 먹지”, 이런 고민 없이 사는 유토피아적 삶을 원하는 사람은, (다음에 또 있을) 신 교수님 연구에 참여하면 된다.


참가자들은 4주 간의 식단을 소화한 후엔 피와 소변을 채취하였고, 마지막으로 대변도 채취하였다. 참고로 대변의 약 1/3이 장내 세균이다. 그다음 2주간 자신이 평상시에 먹던 대로 먹으면, 장내 미생물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 후엔 다시 4 주간 새롭게 주어진 식단의 도시락으로 아무 생각 없이 먹는다. 이렇게 참가자 전원은 3가지 식단을 섭렵하고, 연구팀은 그 전후의 변화를 비교적 편견 없이 관찰할 수 있다. 실험에 사용된 3가지 식단은 칼로리 면에서는 모두 비슷해서 참가자의 체중에 큰 변화가 없도록 했다고 한다. 식단의 구성에 따른 변화만 보도록 한 것이다.


필자의 눈에 먼저 들어온 데이터는 바로 한식에서만 장내 세균의 다양성이 증가한 것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이 건강하다는 것을 측정하는 여러 방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종 다양성이 높아야 한다는 점이다. 같은 칼로리의 식단임에도 불구하고 한식을 먹은 경우에만 다양성이 높아졌다는 점은 아주 고무적이다. 아마도 세균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한식을 매우 극찬했을 것이다.


세균의 유전자를 대량으로 읽어서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식을 먹을 때만 증가하는 세균이 여럿 발견되었다. 먼저 독일 미생물학자인 노르베르트 바이쓰 (Weiss)를 기념해서 이름이 붙여진 바이셀라 (Weissella)가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데, 이 세균이 바로 김치 발효의 주요 선수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2005년에 발표한 (아, 까마득한 옛날!)논문에 따르면 김치 발효의 주방장은 앞에서 언급한 바이셀라와 락토바실러스 (Lactobacillus) 그리고 류코노스톡 (Leuconostoc) 같은 유산균이다. 모두 광고에서는 식물성 유산균이나 김치 유산균으로 많이 언급된다.


천랩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전 세계의 발효식품 마이크로바이옴 자료를 훑어본 결과 바이셀라는 거의 유일하게 한국의 김치에서만 발견된다. 그러니 김치가 포함된 한식을 먹으면 당연히 이 세균이 늘어난다. 아쉽게도 김치 생태계의 지존인 바이셀라는 서양이나 일본이 연구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락토바실러스에 비해 크게 연구나 제품화가 되지 않았다. 여러분이 주로 먹는 요구르트나 유산균, 즉 프로바이오틱스의 표지에 쓰여있는 세균의 이름을 한번 유심히 보기 바란다. 바이셀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 만약 아무런 미생물 정보가 없는 건 필자는 먹지 않는다. 족보가 없기 때문이다.


한식을 먹은 사람은 바이셀라 이외에도 유독 좋은 세균이 많이 늘었다. 여기서 좋은 세균은 장내에서 부티르산 (butyric acid)을 만드는 미생물이다. 최근 수천 편의 연구 논문에 따르면 부티르산은 정말 만병통치의 불로초 같은 물질이다. 아주 간단한 유기산이지만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장벽을 튼튼히 하고, 우리 몸의 염증을 줄여 주고, 자가 면역 질병의 원인인 면역계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그 외에서 순기능이 10가지가 넘는다. 단 이 물질의 마법은 대장 안에 있을 때만 작동한다. 부티르산을 캡슐로 먹으면 난치병인 크론병이 완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부티르산이 대장 안에서 꾸준히 생산되게 하는 것이 새롭게 조명되는 건강의 비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부티르산을 만드는 세균을 대장에 늘려야 한다. 아니 더 중요한 건 줄이면 안 된다. 햄버거, 피자, 파스타, 칼국수로 이어지는 식사는 마이크로바이옴에게는 원투 펀치 후에 어퍼컷에 해당한다.


여기에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한식을 먹고 그 양이 늘어난 부틸산 만드는 세균을 밝힌다. 당연히 처음 보는 이름이겠지만, 여러분의 장에 있는 친위대이니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블라우티아 (Blautia), 코프로코커스 (Coprococcus)


필자는 지난 3년간 대장 안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꾸준히 모니터링해 왔다. 그래서 이 두 세균의 양을 아래의 차트로 비교해봤다.


필자의 경우 블라우티아는 때로는 20%에 이를 정도로 높은 비율로 존재했지만, 코프로코커스는 그 수가 아주 미미하다. 앞으로는 왠지 정이 가는 코프로코커스는 어떤 음식을 특히 좋아하는지 연구를 시작해봐야겠다.


이번 연구를 통해 한식의 우수성이 장내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의 관점에서 다시 강조되었다. 한식도 좀 더 과학적으로 마이크로바이옴에 최적화할 수 있다. 요즘 정밀하게 영양소를 고려한다는 정밀 영양학 (Precision Nutrition)이 새롭게 등장했다.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미생물도 꼭 같이 고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식품영양학과 미생물학이 또 만나야 한다. 신동미 교수님과 곧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물론 점심 메뉴는 한식이다.


장내 미생물은 비만, 당뇨, 아토피, 크론병, ADHD, 치매, 파킨슨, 암 등 많은 질병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을 위한 건강한 식단에 대해서 네이버 카페 <바이크로바이옴식탁>에서 자세히 원리과 실천 방법을 알려드리고 있으니 방문해주세요.


장내 미생물을 검사해보는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무료로 진행 중이다. 아래 사이트에서 참여할 수 있다.


본 브런치에서 참고한 신동미 교수님의 논문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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