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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미 Sep 24. 2019

엄마는 꿈을 이룬 거예요?

아이의 질문에 봉인해제 당한 엄마의 꿈

일곱 살 아들 도하의 꿈은 '로봇 박사'다. 보통 이 나이대 남자아이들에게 꿈이 뭐니? 하고 물어보면 절반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 아이의 꿈은  것이고, 변신 로봇 장난감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조부모님들에게  "아이고~ 우리 도하 나중에 로봇 박사 되겠네~!"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강제로 세팅된 꿈이기도 하다.


유치원 꿈을 주제로 수업이 진행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아이가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흔한 꿈이어도 있는 게 어디냐고 생각해왔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이가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이라는 걸 해보면 좋겠 종종  로봇 박사가 되고 싶은 이유를 물어보곤 했다. 질문할 때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자기가 원하는 로봇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서 라 대답했다. 바닷속 쓰레기를 청소하는 로봇을 만들 싶다 대답을 들었을 때는 적으로 활용도 높은 대답에 흐뭇하다가도, 자신이 타고 날면서 싸울 수 있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는 헛된 망상이란 생각에 티 안 나게 실망다. 꿈에 대한 질문에 겁게 대답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아이의 생각을 존중는 태도를 유지려고 애썼고, 함께 관련 도서를 찾아 구입할 정도로 아이의 꿈을 적극 지지해 왔다.



왜 그런 거래요?


위인전을 읽을 때였다. 책을 읽을 때마다 질문을 달고 사는 도하는 위인전 속의 인물들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노력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사람들에게 난받는 모습을 보면서, "왜요?", "그런 거래요?"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도하의 질문에 언제나 성심을 다해 답하는 편인 나는 도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이해했다는 사인을 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7세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하되 현실이 왜곡되지 않아야 하고, 아이가 질문을 한 뒤 대답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의 한계인 단 몇십 초를 만족시킬 수 있게 신속해야 한다. 위인전마다 내가 답 설명은 모두 달랐지만, 항상 빠지지 않던 맥락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노력'에 대한 거였다.



"도하야, OOO의 꿈은 OO 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노력하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거야"



고개를 끄덕이 이해했다는 사인던 도하를 보며 내심 뿌듯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뿌듯함 속에는 내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아이가 로봇 박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할 수도 있겠다는 너무 이르고 헛 된 바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하가 불현듯 이런 질문을 내게 했다.



"엄마!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디자이너를 꿈으로 갖고 열심히 노력해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자이너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거예요?"



간혹 도하의 질문에 뒤통수를 맞은 듯 눈이 커지고,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 오류난 컴퓨터처럼 입이 꽉 다물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날 그다. 나의 꿈이 어렸을 때부터 UX 디자이너였던가? 나는 지금 꿈을 이룬 건가? 맞다고 하기엔 나 스스로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고, 아니라고 하기엔 완전히 거짓말은 또 아니어서 애매한 상황. 말문이 막혀 란하면서도, 꽁꽁 싸매여 있던 깊은 생각 주머니 하나가 갑자기 풀린 것 같이 신비로운 상황. 렇게 나는 그 상황 속에서 참을 대답을 못하고 "음..." 소리만 내다가, 눈을 깜빡깜빡 거리며  대답을 기다리 도하에게 솔직한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엄마의 어렸을 때 꿈은
디자이너가 아니었어


짧은 시간이지만 깊 생각을 했다. 내가 이에꿈을 찾는 여정보다는 포기하지 않아야 이룰 수 있는 성과 은연중에 강조하고  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던 아기 도하가 추상적인 개념인 '' 의미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로봇 박사라는 매우 구체적인 꿈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자랐는데, 기특한 마음은 잠깐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었.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중에 불현듯 내 첫 꿈, 도하와 비슷한 나이였을 때의 꿈이 떠올랐다.



"엄마가 제일 처음 가졌던 꿈은 간호사였어."

"간호사요? 왜요?"

"엄마가 어렸을 때는 남자는 의사가 되고, 여자는 간호사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음.. 글쎄..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가 어렸을 때 병원에 가면 항상 의사 선생님이 남자였거든 그래서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사람이 되려면 여자는 간호사가 되어야 하는 건 줄 알았어. 그러다가 나중에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었고.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

"카피라이터가 뭐예요?"

"멋진 말을 만드는 사람이야. 근데 카피라이터는 아주 잠깐 생각만 해본 꿈이었고. 외교관은 엄마가 하기엔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어보니 재미가 별로 없어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면, 꿈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가 늘 어려웠던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설령 내가 잘하는 일이라도 내가 다른 일 보다 그걸 좀 더 잘한다는 거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게 잘한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에 늘 고민이었다. 학창 시절에 꿈을 찾는 과정은 꽤나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꿈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꿈=직업'으로 생각하였다. 틀린 정의는 아니지만, 참으로 부족한 건 사실이다. 성인이 되고, 원하던 직업을 갖게 된 후인 지금, 엄마는 꿈을 이룬 거냐는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쉬이 못한 이유가 그 부족한 정의에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꿈이 갖는 가장 큰 가치는 오늘을 살 이유가 되는 원동력에 있는 것 같다. 그러면 꿈이 'OO가 되어야겠다'에서 끝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직업을 가진 후에도 살아갈 날이 이렇게나 많은걸 그땐 지 못했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 4년까지 16년이 넘는 시간을 '직업'을 꿈으로 두고 살았는데, 나는 올해로 UX디자이너가 된 지 16년째다. 두 번째 16년 꿈이 없이 살았나 싶 직업을 가진 그 후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 같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내길 원하는가'를 다룬, 인생 전반에 걸쳐 마음에 새기고 살아갈 수 있는 꿈이 필요하다. 'OO가 되어 OOO를 하며 살겠다'와 같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추가 정의가 필요하다. 7세 아들을 둔 엄마가 꿈을 찾겠다고 하면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이 내가 지금까지 산 날보다 많은데, 그 시간을 아들의 꿈을 내 꿈으로 삼 살고 싶지 . '엄마는 꿈을 이룬 거예요?'라는 아이의 이 질문 앞에서 그 생각은 더욱 명확해졌다. 게다가 '나의 지금''아들의 미래' 모습이기도 하기에, 내가 먼저 살아내 보여주고 싶다.



"도하야 그래서 꿈이란 한 번에 찾아지는 게 아니라 도하가 자라면서 나중에 바뀔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고 그런 거야. 다만, 엄마의 첫 번째 꿈이 간호사였던 것처럼 도하의 첫 번째 꿈이 로봇 박사인 거야. 이 첫 꿈은 잊지 말고 우리 기억하자. 그리고 로봇 박사가 도하가 정말 좋아하는 일인지 알기 위해 우리 많이 알아보고 경험해보자. 엄마가 도와줄게"



그렇게 한참을 도하에게 나의 지난 꿈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사실 엄마 꿈을 이룬 거라는 생각이 잘 안 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는 도하에게 지금은 이해하기 조금 어렵겠지만, 나중엔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라 부연설명을 하며 말했다.


디자이너가 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엄마도 도하처럼
꿈을 다시 찾고 있어

엄마가 찾게 되면
도하에게 제일 먼저 알려줄게


네!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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