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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미 Sep 28. 2019

별을 왜 먹을 수 없어요?

하늘에 있는 것들을 먹고 싶었던 아이

도하는 먹는 것에 흥미가 없는 아이다. 아이가 없던 시절  음식점에서 아이에게 밥을 떠 먹이 부모들을 볼 때면, 나는 절대로 저렇게 쫓아다니며 먹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 될 줄이야... 나는 밥 먹을 때마다 도하에게 적정량을 먹이느라 늘 분주하다. 굶기면 배고플 때 알아서 찾아 먹는다는 말도 소용이 없다. 영유아 검진에서 몸무게 상위 1%를 은 경력이 있는 마른 체형의 아이라서 매 끼니가 소중하다. 식사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지루하다는 하.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는 아이. 그런 아이가 가끔 뭔가를 먹고 싶다하면, 그 음식을 하러 나갈 만큼 우리 가족에 'OOO가 먹고 싶다'는 도하의 말은 쁨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
페르세우스 유성우

2016년 8월 12일, 4살이 된 도하와 제주도 여행 중이었다. 그날 밤엔 시간당 150개가량의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볼 수 있다 하여 제주도가 꽤나 시끌시끌했다.


"도하야 오늘 별 떨어지는 거 보러 갈 거야"
"그러면 도하가 떨어진 별 주워서 앙 먹을 거야"

그 당시 도하의 최애 곡은 '반짝반짝 작은 별'이었는데, 그 별을 실제로  수 있고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 듯했다. 우리는 유성우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 도시 불빛이 없는 한라산 자락 어느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한라산 근처 천문대는 올라가는 입구부터 명절 귀경길과 흡사한 교통체증이 있었고, 산속 공터란 공터는 모두 돗자리를 깔고 누운 사람들로 빽빽했다. 유성우라길래 하늘에서 주룩주룩 비 내리듯 떨어지는 유성 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별똥별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잠깐 한눈팔다가 놓친 유성만 여러 개였다. 시선을 하늘에서 떼지 않고, 초점을 하늘 전체에 맞춰 올려다보고 있어야 볼 수 있는 거였다. 이러다 못 보고 가는 거 아닌가...라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흰색 펄이 들어간 펜으로 하늘에 포물선을 그린 것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도하에게도 나에게도 처음 보는 별똥별이었다. 예쁘다는 생각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도하가 벌떡 일어나 별이 떨어진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빨리 찾으러 가자"


당황해 아무 대답 못하는 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재촉한다.


"빨리 저쪽으로 가자"


짜로 별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하루 종일 거린 '별을 앙 깨물어 먹겠다'는 말이 진심인 줄 알았으면 미리 설명해 줬을 텐데...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다고 했으니, 진짜 자기 품에 별이 뚝 떨어질 거라고 생각던 모양이다. 떨어진 별을 찾으러 갈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매우 난감했다.

"도하야 별이 떨어진 다음에 크게 쿵 하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그건 우리가 갈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떨어진 거야. 별이 떨어지고 나서 쿵 소리가 들리면 그건 가까운 곳에 떨어진 거니까 그때 가자"

다른 사람이 별을 주워 갈까 봐 조급해하는 아이를 잘 타일러 다시 눕혔다. 그 후로 우리는 두 개의 별똥별을 더 봤으나 모두 쿵 소리가 나지 않았고 도하는 속상해했다.

"별이 다 어디에 떨어진 거지... 여기에 떨어지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아기 도하는 아쉬운 마음을 중얼거리며 제주 밤하늘 아래 누워 잠이 들었다. 이렇게나 먹고 싶어 하는데... 정말... 하늘의 별을 따다 요리해 주고 싶은 밤이었다.



별 사탕

별똥별을 본 뒤로 2년이 지나 도하가 6살이 되었을 때, 책에서 도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아기곰을 만났다. 별똥별을 먹겠다고 별 주우러 가자던 도하가 생각나서 물었다.


"별은 무슨 맛일 거 같?"
"사탕 맛일 거 같아요"
"달콤한 사탕 맛일 거 같구나~"
"네... (잠시 생각) 도하가 먹어봤거든요. 꼬불꼬불 라면 과자 안에 별 사탕 있잖아요"
"응? 그 별 사탕이 별로 만든 거래?"
"네! 사과 이름이 들어간 모든 건 사과 맛이잖아요. '사과주스' 이렇게, 그러니까 별 이름이 들어간 모든 건 별로 만든 거죠."
"아... 그런 거였구나..."


하늘에서 떨어진 별을 손으로 주워 맛보진 못했지만, 그동안 별 사탕을 먹으며 별을 먹고 있다고 생각했을 도하를 생각하니 부러웠다. 별 사탕을 설탕 덩어리라고 생각하며 먹는 나와 하늘의 별로 만든 사탕이라고 생각하고 먹는 도하의 경험 차이는 말해 뭐할까. 나도 맛보고 싶다 별 맛.



무지개 떡

별 사탕 이야기를 나눈 후, 며칠이 지났을까... 무지개를 소개한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에서는 무지개는 만질 수도 가까이 갈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도하가 다급하게 물었다.


"엄마! 무지개는 만질 수 없어요?"
"응! 만질 수 없어~"
".... 그럼 무지개 떡은요? 만질 수 있잖아요"
".... 도하야 혹시 무지개 떡을 무지개로 만드는 줄 알았던 거야?"
"네!"


도하는 별만 먹고 있었던 게 아니라 무지개도 먹고 있었단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구름빵은 구름이 들어간 줄 알았다고 한다. 하늘에 있는 건 죄다 먹고 있었던 아이에겐 그동안 하늘이 참 맛있어 보였겠다 싶었다. 굳이 내가 하늘의 별과 무지개와 구름을 따다 주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지난 2년간 아이는 아이만의 세상에서 이미 그 모든 걸 맛있게 먹고 있었다.



보름달

7세가 되니 무지했던 아이에게 과학 지식이 늘어나면서 조금 심심해진 건 사실이다. 짧은 지식 보여는 빈틈도 귀엽긴 하지만 완전 무지에서만  수 있는 치명적인 순수미는 점점 없어져 가는 거 같다. 


보름달이 밝아 밤하늘이 환하던 추석날, 달이 잘 보이는 길에 자리 잡고 앉아 달구경을 했다. '달이 정말 밝다', '구름에 비친 달빛이 예쁘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던 중 도하가 달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달이 꼭 손에 잡힐 거 같아요"

"달이 가까이 있어 보이지? 근데 엄청 멀어서 손도 안 닿고 우리가 달 위에 올라설 수 있을 만큼 크더라"

"알아요... 달을 잡으려면 우주에 가야 하잖아요"

"응. 우주에 가야만 하지"

"엄마...  달 정말 맛있어 보이죠?"


'넌 아직도 하늘에 있는 게 먹고 싶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되 물었다.


"응 진짜 너무 맛있어 보인다. 무슨 맛일 거 같아?

"달콤한 맛이 날 거 같아요. 엄마는요?"

"엄마는... 고소한 맛이 날 거 같아"


아이의 시각으로 본 하늘은 언제나 진수성찬이다. 그러고 보니 별똥별을 보러 간 날의 아이의 질문은 별은 먹을 수 있는 건인지 없는 것인지를 물은 게 아니라, 별을 먹을 수 있는데 엄마는 왜 못 먹는다고 하는 건지를 물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달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니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거 같아
달과 별은 눈으로 먹는 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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