꿉꿉한 주말, 여느 날처럼 차에 스마트폰을 연결하고 네비에 목적지를 세팅하면 나도 모르는 새에 잔잔히 BGM이 흘러나온다. 요즘은 주로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기에, 그날의 첫 곡은 내가 고르고 이후의 선곡은 알고리즘에게 맡기곤 하는데, 이 놈이 꽤나 신통해서 나름대로 그럴싸한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해주곤 했다. 가끔씩은 플레이리스트 속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하는 재미를 맛보기도 했고, 또 때로는 주위 사람들과 너무 비슷해져버린 선곡표에 씁쓸함을 맛보기도 했다. 여하튼 그 날도 여느 때처럼 그 신비한 알고리즘은 나를 이런저런 음악으로 끌고 다녔는데, 듣다보니 하나 하나 너무 반가운 노래들의 연속이었다. 생각해보니 전부 내 학부 생활 전반기, 그 중에서도 2007년 새내기 시절 내 MP3를 가득 채워주던 노래들이었던 걸 문득 깨달았다.
Somewhere only we know
Say it ain't so
High and Dry
Closer
Look what you've done
07년, 신입 새내기 시절 보기보다 꽤나 되는 대로 사는 사람인 나는 얼떨결에 학교 중앙동아리, 그 중에서도 밴드 동아리에 덜커덕 가입했다.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신입생 새터에 나온 과 소속 밴드의 공연이 너무 형편 없었고, 나는 호기로운 마음에 내가 해도 저것보다는 잘 할 수 있겠다! 싶었는 걸. 이제사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원래부터 밴드가 하고 싶었던 거였고, 그걸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든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닐 수 있는 그 자그마한 선택은 내 삶의 각도를 꽤나 돌려놨다.
내가 가입했던 동아리는 30여년의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그룹-싸운드였고, 그 긴 역사에 걸맞게 상상도 못할 독특한 문화(aka 부조리)가 가득했다. 동아리 내 커플의 부작용을 심하게 겪은 덕분인지 동아리 선배의 호칭은 성별 관계 없이 모두 '형'으로 통일됐고, 동아리 가입 후 3주간 한 일은 그저 하루에 5시간씩 지하 3층 동아리방에 가만히 앉아 1기부터 31기까지 모든 선배의 이름과 포지션을 외우는 일이었다. 소중하디 소중한 대학 신입생의 3월을 그렇게 허비시킨 덕인지 처음엔 20명이 넘었던 신입 멤버는 하루하루 눈에 띄어 줄어갔고, 불과 한달이 안돼 10명 남짓한 조촐한 멤버로 줄어들었다. 그때 만 해도 그 지루하고 소중한 시간을 버텨낸 나는 의기양양했었지. 이 정도 각오도 안하고 가입한거냐, 하고.
그렇게 신입생이 열 명 정도로 추려졌을 때야 슬슬 각자의 포지션, 그러니까 악기를 정하고 연습에 들어갔다. 나는 딱히 선호하는 악기는 없었기에 악기를 준비할 필요 없는 드럼으로 포지션을 정하고 처음으로 연습에 돌입했다. 첫 연습은 자세 잡기, 거창하게 자세잡기라고 했지만 드럼을 치기 전 기본자세에서 스탑. 그러니까 아무것도 치지 않고 스틱을 잡은 상태를 연습한달까. 뭐 뭐든지 기본이 중요한거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 기본기 잡기 연습은 한달 정도 이어졌고, 나는 신입생 첫학기 한달을 지하 3층 타이어 앞에 앉아 허비하고 말았다. 그때 즈음부터인가,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곤 했다.
이 후에도 멤버는 꾸준히 줄어들었고, 드디어 밴드를 구성할수 있는 6명 정도의 인원이 되었을때 드디어 제대로 된 연습이라는 걸 시작했다. 이게 하이햇이고, 이게 스네어고, 이건 베이스고, 하나하나가 정말 신기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지. 난생 처음으로 귀로만 듣던 음악을 몸으로 만들어 낸 순간이니, 이 후의 시간은 정말 눈 코 뜰새 없이 지나갔다. 이제사 생각해보면 몇주 연습하면 연주할 수 있는 낮은 난이도의 곡이었지만, 난생 처음 합주라는 걸 경험했고. 정말 정말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한 짜릿함을 겪고, 나 그냥 학교 때려치고 음악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으니.
다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불과 6개월 즈음 후 그 중앙동아리에서 탈퇴했고, 불과 한달이 안되어 내가 무시했던 과 소속 밴드에 영입되었다. 그때 그 한 걸음 덕분에 생각치도 못하게 군악대라는 델 가보고, 세상에 정말 다양한 음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스틱을 잡아본지 5년이 넘었지만, 언젠가 또 어딘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스스로를 상상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또 한번 스틱을 잡을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