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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Sep 03. 2022

서투름

모든 것이 서툴게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릴 없는 때, 그저 느릿한 걸음 두어시간 정도면 내 세계 구석구석을 만끽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초록 액정을 가진 두 손가락 남짓한 휴대전화에는 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들어있었다. 내 초라한 연락처에는 불과 열댓명 밖에 살고 있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40자의 공간은 그럼에도 너무 협소하기에 빈칸을 없애고 없애 공백 없는 문자를 완성했던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나날이었다. 공백 없는 문자를 고르고 골라 영원히 간직하려다 보면 내게 주어진 슬롯은 더더욱 협소했고, 아쉬움을 머금은 택일의 순간들을 맞이하곤 했다.


그 즈음, 만남은 더더욱 희귀했다. 우리는 아직 처음이었기에 미칠 듯 뛰는 심장을 정의할 만 한 언어를 찾지 못했고, 그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서로의 집 앞을 배회했다. 기적처럼 마음이 닿아 서로를 마주하더라도, 사랑한다는 그 낯 뜨거운 말은 할 수가 없기에 그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란히 걸을 뿐이었다. 해가 저물어 들어가야 할 집 앞에 도착하고 나면, 온갖 트집을 잡아 함께 걸으며 서로의 집 앞을 함께 배회할 뿐이었다. 그렇게 기적 같은 하루가 끝나고 나면 말한 이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 그 말 한마디를 되뇌이며, 또 언제가 될 지 모르는 그 기적을 기약하며, 또 몇 주를 우걱우걱 살아가곤 했다.


아무런 노력도 깨달음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건만 기어코 시간은 흘렀고, 동시에 내 서투름은 씻겨 내려갔다. 서투름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수많은 사람 사이의 법칙들이 드러났다. 대부분은 아무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있는 일종의 안전 수칙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서스럼 없이 어울릴 수 있고,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을 수 있는 노하우였다. 우리는 그 규칙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정의하고, 서로를 규정 지을 수 있었다. 그 규칙은 너무나도 효율적이었기에, 몇 배는 더 많은 연락처들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기에 그들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고뇌의 순간들은 피해갈 수 있었다.


새로운 만남이 잦아졌고, 고민은 줄어들었다. 모든 만남은 규격화 되어 잘 관리되었다. 관심이 가노라면 그저 우리가 정한 룰에 따라 적정한 관심을 표하고 차분히 그 결과를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헤어짐은 애석하지만 또 새로운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우리를 찾아오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게 되어버렸다. 시간이 모든 관계의 서투름을 앗아갔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씩 그 서투름이 그리울 때가 있다. 모든 것이 잘 규정되어 있는 관계 속에서 절대 규정하지 못할 누군가와 절대 정의할 수 없던 감정을 나누던 그때 그 시절이 다시 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더더욱 애석해지곤 한다.


모든 것이 서투르고 유일했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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