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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Jan 13. 2024

사랑의 정의

수능을 앞둔 어릴 적, 여기저기 명작이라고 추천받은 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본 적이 있다. 타인의 삶, 쇼생크 탈출, 존 말코비치 되기 등. 여러 영화를 훑으며 뭔지 모를 감정들 사이에서 헤매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 와중에 그 감정선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영화도 있었다. '클로저'. 나탈리 포트만의 풋풋한 시절 모습이 꽤나 아름답게 혹은 예쁘게 표현되어 있는 영화였지만, 그 안에 들어간 사랑에 대한 가변적인 감정의 양상들은 스무 살의 내게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무엇이었다. 사랑하는 누군가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그의 이름을 빌려 엿을 먹이고, 그 우연한 엿먹임은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계기가 되어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 되었다. 영화의 끄트머리쯤, 사랑은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는 거라 비꼬며 주드 로를 떠난 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을 보며 대체 사랑은 무언지, 무어가 진짜 사랑인지 설명해주지 않는 혼란스러움에 영화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저 나는 이 영화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스무살 꼬꼬마구나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답을 내리기를 주저했을 뿐.


세월이 흘렀고 나도 이제 클 만큼은 큰 거 같은데, 아직도 나탈리 포트만이 내게 던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내릴 수는 없다. 사랑이 무얼까. 큰 의미 부여를 하자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뜻깊은 일 일테고, 별거 아닌 것처럼 취급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하잘 데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본인의 목숨을 바쳐 누군가가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은 희생 가득한 아가페적 감정일테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은 그저 맛있는 밥을 먹고 좋은 경치를 볼 때마다 이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그저 그의 부드러운 볼과 살가운 몸뚱아리를 탐하는 일 일수도 있을 테고, 누군가에게 사랑은 그저 초라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싶은 짠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 사랑이란 감정을 정의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하루하루 살아가며 늘어가는 건 더 다양하게 느껴지는 사랑의 파편들뿐이다. 귀여워서, 안쓰러워서, 만지고 싶어져서,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 어떤 감정도 사랑이라 사랑이 아니라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사랑은 희귀하고, 배타적이어야 하기에 누군가를 사랑함은 더 조심스럽고 생경해져야만 하는데, 나는 하루하루 점점 더 다양한 감정의 늪 속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내가 지키고 이루고 싶은 사랑의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 감정을 사랑이라 정의하며 살아갈 것인가. 한정된 삶을 사는 우리에게는 결국 하나의 답이 필요하다. 당신은 사랑을 무어라 정의하는가. 그저 각자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취한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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