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누군가를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어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만, 쉽사리 그들을 잘 알고 있노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짧은 만남을 통해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름, 외모, 말투뿐일 것이고 그게 그의 전부는 아닐 터이니. 좋아하는 것, 취향, 직업 정도를 알면 좀 나아질까. 같은 영화를 좋아한대도 좋아하는 장면이 다를 수 있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명의 사람이 같은 일을 하게 되는 건 꽤 흔한 일이다.
결국, 찰나의 순간을 함께하는 우리가 서로 알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최선은 서로의 과거를 헤집어보는 일이다. 눈앞의 서로는 하나의 완성본처럼 견고하고 종결된 듯 보이지만, 그 이전의 서로는 고민하고 실패하고 변화하며 지금의 여기에 마침내 도착했다는 것을 깨닫는 일. 한 사람의 삶의 흔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제야 그 사람의 형체에 시제가 부여되기 시작한다. 그제야 그는 내게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입체적인 존재로 새겨진다.
비밀은 과거에 숨어있기에, 과거를 헤집다 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비밀 또한 알게 되곤 한다. 모름지기 비밀이란 건 비밀을 아는 사람들을 같은 편으로 묶어내는 요긴한 재주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알아가며 자연스레 서로 간의 거리를 좁혀간다. "우리는 서로의 비밀을 알아" 라는 말만큼 사람들 간의 친함을 드러낼 수 있는 말은 없을 테니.
그래서인가. 나 역시 궁금증이 생기고 더 잘 알고 싶어지는 사람이 생길 때면 그의 과거를 헤집곤 한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를 괴롭게 했던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그 괴로움 중 어떤 것이 그의 비밀이 되었는지. 만날 때마다 과거의 당신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고, 어렴풋이 남은 몇 해 전 SNS를 염탐하며 나름대로 과거의 당신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경한 모습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아이 같은 과거의 당신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을 때도 있다.
그렇게 누군가의 과거를 헤집으며 그를 알아가다 보면 드디어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한 명의 사람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그렇다 해서 우리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사람의 시제는 과거-현재-미래로 흐르기에 현재까지의 삶을 안다고 할지라도 미래의 그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서로서로 온전히 알기 위해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함께 시간을 흘려내며, 지금 이 순간, 현재를, 함께 기억하는 과거로 추억하고, 두려운 미래를 함께 현재로 맞이하며 그조차 과거로 남겨내는 일이다. 더는 다가올 미래가 남지 않을 그 순간까지 함께하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가, 나는 당신을 더 잘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