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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Jan 24. 2023

사서 고생

올해 초, 꽤나 선호되는 부서에서 이미 5년간 일한 나는 앞으로 부서 이동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었다. 대부분의 인사 발령은 부서 간 인력의 맞교환 형식이었고, 내 부서에 오려고 하는 사람의 수만큼, 내 선택지는 많아졌다.


몇 가지 선택지를 손안에 쥐자, 소문을 들은 회사 사람들의 다양한 제보가 들어왔다. 어디 가야 인정받는다, 그 부서가 꿀이라더라, 저 부서는 누가 이번에 진급 대상이니 고과 받기 힘들지 않겠냐. 저기는 무조건 피해라까지, 각자의 기준들이 듬뿍 담긴 조언들. 스스로 하고 싶은 게 명확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선택의 기로에 놓이니 원서 접수를 앞둔 입시생처럼 고민이 계속됐다. 결국 내 답안지는 꿀. 편하게 회사 다니고 싶은 욕심은 없었지만, 꿀 부서에 가야 다음에 이번처럼 어디라도 옮기기 쉽지 않겠느냐 하는 나름의 합리적 결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는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꿀부서에 새 둥지를 틀었다. 부서를 옮긴 첫날, 퇴근 인사를 하는 내게 새 부서의 차장님이 달콤한 조언을 건넸다. "우리는 눈치 주는 그런 부서 아니니까,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퇴근하면 돼". 앞으로는 인사 없이 퇴근하라는 무언의 가이드라인이었는데, 내게는 마치 "우리의 문화를 망치지 마!" 라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프랑스에서 혼자 야근하다가 핀잔들은 한국인 노동자가 된 기분이랄까.


꿀은 달콤했다. 첫 1~2개월은 이렇게 일이 없어도 되는 건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할 일이 없어 퇴근 시간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대신 유난히 부서 메신저 방은 바삐 돌아갔는데, 업무 얘기 대신 어제 산 물건 얘기, 오늘 먹을 점심 얘기, 사내외 가십 등 온갖 신변잡기들이 가득했다. 월급쟁이들끼리 이렇게 사이가 좋아도 되는 걸까.


무엇이 꿀을 만들었을까, 회사 일이란 모름지기 만들어도 만들어도 끝없이 생겨나기 마련인데, 이 부서는 왜 이리도 한적할까. 수개월 간의 관찰 끝에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꿀은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의 중요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결국, 일이라는 건 타 부서나 이 부서나 비슷한 루틴으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이 부서의 매출 비중이 현저하게 적기에 일을 더 헐겁게 처리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습관처럼 어차피 이거 다들 신경 안 쓸 테니까, 적당히 처리해라는 말을 나누곤 했고, 실제로 그 말대로 유관 부서에도 이 부서의 업무 처리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회사 생활에서 일의 중요도가 낮아지다 보니, 반대로 늘어나는 건 눈치였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별로 없으니, 그저 윗사람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는 게 그들 입장에서 최고의 생존 전략이었다. 상위 부서장이 언제 출타할지 항상 민감하게 정보 수집에 힘쓰며, 행여 며칠간 출장 계획이라도 잡히면 축제가 펼쳐졌다. 그런 날, 이른바 어린이날이 오면 유독 커피 타임은 길어졌고, 커피 마시다 점심 먹고 커피 마시다 퇴근하는 날도 있었다.

아쉽게도 내가 재벌 3세는 아니기에, 그들의 삶의 태도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직장은 시간과 돈을 맞바꾸는 곳, 그 이상의 의미는 없기에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그들은 최고의 선택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 또한 회사에서 거창한 자아실현을 하려는 것은 아니니, 별 차이가 있을까도 싶다.


내 몸속에도 스멀스멀 꿀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새로 발급받은 신용카드를 집에서 등록하려다, 내일 출근해서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굳이 미룬 적이 있었다. 어차피 별로 신경도 안 쓸 텐데 하며, 귀찮은 업무를 한두 개씩 대충 넘기는 습관들도 스근하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 있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에 오는 자조적인 안락이 나름 달콤하기도 했다. 그래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는걸. 타이밍도 좋다. 진급에 맞춰 고과 챙겨주는 현 부서만큼 진급하기 쉬운 곳도 없다. 부서장은 벌써 내년에 고과 챙겨주겠다고 생색내기 시작했는걸.


그런데도 떠나고 싶다. 나는 내가 하루 8시간을 보내는 내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나 보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인정받고 임원 달고 그런 걸 바라왔던 건 아닌데, 왜 굳이 어려운 길을 자청하는 걸까. 1년 만의 부서이동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에 장담할 수 는 없지만, 어찌 됐든 내가 떠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되든 안 되든 그렇게 해야만 5년 후 10년 후의 나에게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너는 네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했다고. 무엇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지나도 끝내 알 수 없겠지만, 그저 나는 내일의 나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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