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가 됐다.
30대 중반에 솔로가 된다는 건 수많은 주변인들의 동정심을 자아낸다. 누군가에게 이 이별은 입시-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중차대한 사고이고, 누군가에게 이 이별은 이제 긴박히 결혼 상대를 찾아야하는 전시상황, 데프콘이다. 걱정해주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더 이상 시간 지체하지 말고 누구라도 소개받으라고 등을 떠밀었고, 나 또한 주변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초조함에 소개팅 시장에 뛰어들었다.
늘 장난삼아 에세이 모임 멤버에게 당신은 소개팅 시장의 좋은 매물이라는 칭찬 섞인 장난을 치곤 했는데, 막상 소개팅 시장에 들어선 나 또한 상황은 비슷했다. 시장 매물치고 나이가 많은 게 꽤 큰 흠이긴 했지만, 남성 매물의 최우선 기준인 키 180cm를 통과 했고, 적당한 대기업 직장, 적당히 건전해 보이는 취미 등을 가지고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소개해주면 칭찬은 받지 못하더라도, 큰 책도 잡히지 않을 안전한 매물이었다. 그래서인지 몇 달의 고민 끝에 "나 이제 소개팅 받을게" 선언 하자 나름 손쉽게 몇 건의 소개팅이 성사되었다.
첫 소개팅. 직전의 소개팅이 2014년 1월이었으니 정말 꼬옥 10년만이었다. 덕분에 포스트코로나 시대 소개팅의 그라운드 룰은 전혀 모른 채 시장에 뛰어 들었다. 나이, 직업, 키 따위의 기본적인 스펙과 잘 나온 사진 몇 개를 전달하고, 쌍방이 OK를 외치면 소개팅이 성사되는 합리적인 구조. 첫 소개팅 상대는 7살 연하의 키 170,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은행원. 생각보다 큰 나이차에 의구심과 함께 성수동으로 향했다. 대화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직업, 학교 등 간단한 신변 잡기로 시작해 MBTI, 서로의 플레이리스트 등을 물으며 공감대를 만들어나갔고, 같은 학교를 나왔고, 같은 MBTI를 가진 덕분에 짧은 시간 내에 재빨리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헤어지기 전 내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귀가하며 주선자에게 간단한 상황 보고. "이러다가 내일 사귈 거 같은데?"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다음날 오늘이라도 사귈 것 같던 첫날의 텐션은 온데간데 없고 지지부진한 데이트가 이어졌고, 그 다음날 더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깔끔한 카톡과 함께 상황 종료.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만나 좋아하게 되고 사귄다는 건 꽤나 기적적인 일인데, 이렇게 손쉽게 일이 잘 풀려나가는게 이상하다 싶긴 했다. 잘 풀리지 않은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도 답은 뾰족하게 나오지 않았다. 나이 차나 외모가 문제였다면 소개팅을 애초에 받지 않았을 것이며,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은 게 원인이라고 하기엔 이틀 내내 "이런 얘기까지 하게될 줄은 몰랐는데" 하며 지금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는걸. 친구 한놈은 다음날 끌고 간 국산차가 문제였다며, 그 차가 테슬라였다면 결과는 달랐을거라며 나름의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처음 만난 한 쌍의 남녀가 몇 번의 만남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사귀는 단계까지 간다는 게 애초에 어려운 일이긴 한 걸.
두번째 소개팅부터는 모든 게 조금씩 수월해졌다. 대화할 거리를 보존하기 위해 만나기 전까지는 대화를 최소화하고, 캐치테이블에 들어가 적당히 그럴싸해보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만나서 나누는 대화의 소재들도 어느 정도 정형화되기 시작해, 사전에 알고 있던 각자의 직업에 대한 개괄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각자의 MBTI 맞추기, 서로의 인생 영화 말하기 등으로 좁혀졌고 그렇게 여러 주제들로 이야기를 나누며 한잔 곁들이다 보면 5-6시간이 흘러 서로에 대한 충분한 평가가 완료되었다. 소개팅의 난이도가 낮아진 만큼 큰 부담 없이 다음 소개팅들도 손쉽게 흘러가 6번의 소개팅을 마무리 해 이 정도면 나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소개팅 트렌드에 대한 학습을 마쳤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단 한가지 문제는 여러 번의 소개팅을 진행하며 상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는 데에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러 모로 내가 만난 여섯 명의 소개팅 상대는 외모든 스펙이든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객관적으로 그들이 가진 장점이 그간 내가 만나온 연인들에 비해 결코 부족하지는 않았으니. 이쯤이면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소개팅에 임하는 내 태도를 되짚어보니 문제는 명료했다. 마치 부동산이나 중고차를 평가하듯, 상대의 특성 하나하나를 비교하고 평가하고 있는 내 모습.
일종의 소개팅 이론이 성립되었다. 결국 짧은 시간 내에 큰 호감을 느껴 사귀기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고, 결국 각자의 기준대로 상대를 평가해 총점이 일정 기준을 넘기면 만남을 고려하는 가치평가시스템. 각자에게는 외모든 직업이든 이것 만은 포기할 수 없다 생각하는 과락 과목이 존재하고, 각자가 가진 항목별 가중치가 다르기에 같은 매물이라도 상대에 따라 다른 점수가 산출되어 매칭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효율적 시스템.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스템 내에 가장 쉽게 매칭이 성사되는 경우는 서로에 대한 평가가 불일치해 상대에 대한 과대평가와 스스로에 대한 과소평가가 동시에 이뤄지는 상황이었다. 상대가 나에게 과분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런데 나는 총점을 메기며 살아오지 않았다. 그간 만났던 연인이 내게 과분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뿐 더러, 여러 방면으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만났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큰 결함이 있더라도, 그 결함을 감내할만큼 내게는 사랑스러운 부분들이 있었기에 그를 사랑했고 함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평가하려 시도한 적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사랑한 그 순간만큼은 그는 내게 선천적인 존재이며, 내 삶에 당연하게 자리한 상수이지 선택지는 아니었으니. 그래서인가, 소개팅 시장에 나가 누군가를 평가하고 선택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꽤나 거북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차 사람을 만날곳도 없어지는데, 이렇게 막연히 소개팅이 거북하니 아무래도 이번 생은 글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