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마케팅 전공 교수들이 선발한 학부생 4명을 대상으로 3개월동안 진행되는 인턴 프로그램의 첫 OT날, 면접 때는 보지 못했던 낯선 인물이 등장했다. 큰 체구에 앳된 얼굴, 서툰 한국어를 가진 누군가가 인턴으로 함께 합류하게 된 것이다. 채용전환형 인턴자리는 아니었기에 그를 포함한 5명의 인턴들은 그럭저럭 원만한 3개월을 함께 했고, 3개월이 마무리 될 즈음 그의 입을 통해 그 좌초지종을 알게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 회사 마케팅 팀장과 인연이 있었고, 스무살을 갓 넘긴 아들의 학부 첫 여름방학을 무의미하게 놀리기 싫어 팀장에게 일종의 육아를 부탁한 것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참 요상한 그림이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당시의 나는 그저 둔감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였던 듯 하다.
몇 년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취업에 성공해 직장생활을 함께 할 동기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달이 넘게 함께 연수를 받으며 서로를 알아가다보니 하나둘 요상한 점들이 캐치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수원에서 나고 자란 동기들이 많았으며, 내가 아는 한국 사회의 평균 이상으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친구들이 많았다. 다들 가장 민감했던 부서 배치를 앞두고는 별다른 명분 없이 인사담당자에게 스윽 불려나가 면담을 진행 하는 친구들이 생겨나곤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동기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로얄"이라 불리는 몇몇이 특정되기 시작했다. "로얄"이라 함은 보통 회사 고위 임원의 자식들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고, 때에 따라서는 우리 회사는 아니지만 긴밀한 관계에 있는 유관 회사의 자식들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제사 생각해보면, 입사 이후에도 회사는 참 알뜰살뜰히 그들을 챙겼던 듯 하다. 신입 배치 때 모두가 선호하던 이커머스 담당부서에 총 3명이 배치되었는데, 관련 경력이 있었던 나를 뺀 2명은 모두 임원의 아들딸이었고, 몇 년 후 시간이 흘러 그 친구가 기피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인사발령이 나자 몇시간이 채 안되어 인사 발령이 취소되는 희귀한 광경을 직관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회사에 대해 점점 더 알게될수록 이른바 "로얄"의 분포와 종류는 다양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로얄"임이 커밍아웃되는 동기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고, 임원의 자제분들에 국한되었던 "로얄"의 종류도 실세정치인의 친인척부터 주요 협력사의 인척 등으로 확장되었다.
너무나도 치열한 취업 시장, 회사 안에서의 이권 다툼을 생각하면 그들이 가져가는 일종의 어드밴티지는 너무나도 부당하고, 옳지 않기에 종종 나는 그런 부조리함에 한탄하고는 한다. 사기업이니 법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불법이 아니라고 해 무조건 다 옳은것은 아니니. 한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내가 점차 "로얄"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것과 별개로 막상 내 곁에 존재하는 "로얄"동기들에게는 그러한 반감을 가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같이 고생하며 고민을 나눠왔기에 오히려 그들에게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최대한 받으라 조언하고, 이따금씩은 그들의 "로얄"성을 희화화해 놀리기도 한다. 현상으로서의 "로얄"과 내 곁의 "로얄"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은, 나도 그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하는 판단에 기초한다. 우리는 모두 그저 조금 더 편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인 걸.
오늘은 동기 한 명의 뉴욕 지사 파견을 축하하는 자리에 다녀왔다. 공교롭게도, 출산을 3개월 앞둔 시기에 미국행 파견이 결정되었고, 가게된 부서의 부서장은 친구 아버님과 함께 근무했었던 경력이 있다. 동기놈은 한국과 미국 중 어디에서 출산할 지 고민이라 이야기했고, 나는 그저 닥치고 미국에서 낳으라 말하며 그의 안녕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