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애플의 광신도임을 자랑스러워하던 시절, 간간히 스티브 잡스의 감명 깊은 프레젠테이션 영상들을 넋이 빠져라 감상하곤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스마트폰이 막 세상에 퍼져가기 시작했던 2010년대 초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위상은 어마어마했고, 온갖 매체들은 마치 종교라도 된 마냥 잡스의 행적 하나하나를 되짚어가곤했다.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이면서 본인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난 기이한 이력과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 회사에 복귀해 세상을 뒤집어 놓은 제품은 만든 그. 그에게는 단순한 기업가 그 이상의 아우라가 있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인생을 통달한 현자의 아포리즘처럼 느껴졌다.
그의 여러 연설 중 유난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소재가 있었으니, 이른바 'Conneting the dots'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단순했다. 그가 무의미하게 느낀 학부 생활을 중단하고 방황하던 시절, 그저 순전한 호기심과 직감만으로 하릴 없이 캘리그라피 수업을 들었었고, 그 때의 경험이 하나의 점이 되어 10년 뒤 그가 매킨토시를 만들 때 그에게 되살아나와 세상에 폰트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 사실 그조차 그 때의 경험이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 내리라고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학부 자퇴라는 개인적 상황과 캘리그라피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환경이 어우러졌고, 그 안에서 하루를 충실히 살아간 그가 합쳐진 결과였을 뿐. 그 이야기를 통해 그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건, 현재와 미래는 어떻게든 연결지어진다는 운명론적 확신과, 그렇기 때문에 당장 눈 앞에 미래가 보이지 않더라도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우리는 그저 과거와 현재를 이어 붙여 볼 수 밖에 없는 한정적인 존재이지만, 결국 우리 삶의 점들은 운명처럼 뜬금 없이 이어질 것이니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하루하루 충실히 점을 찍어나가야 한다는 것.
잡스의 이야기를 머릿속 한 켠에 깊숙하게 숨겨둔 채 꽤나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를 맹신했던 경험이 어디 멀리가지는 못하는 지, 그간 삶의 군데군데에서 무모하지만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온 것 같다. 때로는 없는 시간 쪼개가며 삶에 하등 필요도 없는 지식을 머리에 욱여 넣으려 밤잠 아껴가며 끙끙대기도 했고, 때로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미래를 꿈꾸며 과감히 사표를 던진 순간들이 있었다. 그 간 찍은 몇몇 점들은 큰 선이 되어 돌아왔고, 여느 점은 쩌어기 구석에 찌그러져 기세 없이 숨어있기도 하다. 어찌보면 잡스의 말은 반쯤 맞았던 걸까.
쏜 화살 같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바라보며 초조함을 느끼곤한다. 이 속도로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임종을 맞이하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에 삶의 마지막까지 꽉 채워진 인생 플랜을 되뇌이는 나를 발견한다. 삶은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하루하루 모든 순간을 효율적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어느새 원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들과 원하지만 가능해보이지 않는 것들을 외면하는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는 한계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어른이라고 말하지만, 어차피 내 인생은 마음 먹은 대로만 흘러오지는 않았으니, 또 그렇게 흘러갈테니, 그저 나는 조그음 더 어른이 되기를 유보하고 원하는 점들을 찍어나가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