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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Nov 03. 2024

비판과 침묵 사이

러닝이 대세다. 지난 몇 년간 지리한 설득에도 넘어오지 않던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 어떤 러닝화를 살지 물어오는 걸 보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수십 년 동안 달려온 마라톤 클럽 어르신분들이 지역마다 산재해 계신 이 판에 몇 년짜리 경력 가지고 유세 떨기는 민망한 모양새이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나만의 취미를 뺏긴 듯한 느낌에 기분이 묘하다. 두 달 동안 접수 받아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던 지방 군소 대회에 접수 대기열이 생기고, 러닝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운동 유튜버들이 일제히 주 종목을 러닝으로 변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러닝은 나에게 일종의 '나만 알고 싶은 밴드' 같은 존재였을까?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헤어진 전 여자 친구의 고시 합격 소식을 듣던 순간처럼 양가적인 감정이 교차한다. 그렇게까지 잘되기를 바랐던 건 아니었는데.


사실 몇 년간 이 판을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꽤 많았다. 한국은 마라톤 불모지에 가까운 국가이기에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고, 뭐든 좋은 게 좋다며,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곤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러닝 인구가 적은 만큼 무슨 잘못을 해도 실제로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고, 개개인의 잘잘못을 다 따져 상벌하고 나면 안 그래도 적은 러닝 인구가 더 줄어들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서로의 문제에 애써 흐린 눈을 떠 못 본 척해주는 문화 아닌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일들도 많았다. 한 러닝 인플루언서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 중간에 몰래 택시를 타고 입상했다가 여러 차례 적발된 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던 덕에 협회의 홍보 대사 역할을 맡았다. 유명 코치들의 유료 러닝 클래스들은 별도의 장소 대관 협의 없이 서울 곳곳의 종합운동장 러닝 트랙들을 전세 내듯 사용하며 다른 러너들의 사용을 막기도 했다. 이에 관해 불만을 가진 러너들도 많았지만,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 안이니 묵살되어도 큰 문제는 생겨나지 않았다.


관심이 커진 만큼 이권도, 설왕설래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올해 들어 갑자기 늘어난 러닝의 인기 탓에 인플루언서들의 팔로워는 급증했고, 온갖 매체에서 러닝 관련 콘텐츠를 급히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상황이 달라지자, 그간 묵살되었던 소수 의견이 점차 무시할 수 없는 다수가 되었다. 도로와 운동장을 독점하듯 달리던 각 단체에 대한 비판 기사가 속속 올라오고, 몇몇 러너들은 각 지역의 시설 담당자에게 연락해 대관 여부에 관해 묻고 제재를 요청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눈치 빠른 몇몇 지자체는 시설 내 5인 이상 달리기 금지를 공표했고, 또 다른 지자체는 별도 대관 없이 상업적 이용이 불가하다는 규정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다.이러한 변화에 러닝 클래스 운영진 측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이미 엎어져버린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결국 각 트랙의 분위기에 맞춰 유료 러닝 클래스들의 훈련 스케줄 공지는 시시각각 변경되었고, 그들의 입지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소수 러너는 마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도하듯 드디어 구악을 일거에 척결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때다 싶어 묵혀있던 온갖 담론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대회 참가 신청 없이 대회 코스를 뛰는 '뻐꾸기', 타인의 대회 번호표를 복사해서 참가하는 '배번 복사'처럼 누가 봐도 문제인 건들이 먼저 수면 위로 올라왔고, 신청한 대회 번호표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배번 양도', 공공장소에서 웃옷을 벗고 뛰는 '상의 탈의런' 같은 미묘한 이슈들이 뒤를 따랐다. 이슈 제기의 방법론은 꽤나 자극적이었다. 같은 번호를 달고 함께 뛰고 있는 한 부부의 사진이 올라오고 나면 곧이어 그들의 인스타그램 주소가 댓글로 달렸고,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가 비판 댓글을 달았다. 몇 시간이 지나면 부부는 급히 대회 참가 포스팅을 삭제했고, 그 몇 시간 새에 누군가는 그들의 배번 복사가 처음이 아님을 증명하는 과거 포스팅을 찾아내 비판의 수위를 더했다. 일이 커짐을 직감한 부부는 결국 사과문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정의가 실현된 것이다.


다음 타깃은 한 운동 유튜버였다. 원래 크로스핏을 주 종목으로 활동하던 그는 요즘 트렌드에 맞춰 급히 러닝 위주의 콘텐츠를 양산해 내기 시작했고, 오랜 기간 러닝을 해왔던 러너들 입장에서는 이제 와 러닝 붐에 편승한 그를 고운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마침 그는 어디에 가든 웃옷을 벗고 뛰는 터라 책 잡기 딱 좋은 특징마저 가지고 있었고, 금세 입방아에 올라 그의 옳고 그름의 대한 이야기가 슬슬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애매하게도 '상의 탈의런'은 법적으로 딱히 문제 되는 건은 아니었기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비판론이 커지지 않던 상황에 한가지 변수가 발생했다. 그가 대회 티셔츠 착용을 필수로 요구하는 한 스포츠 브랜드의 러닝 대회에 웃옷을 벗고 나타난 것이다.


그의 00런 상의 탈의 소식에 깔 거리를 찾던 사람들은 쾌재를 불렀을까. 커뮤니티에서는 연이어 해당 대회에 대한 정보가 올라왔다. 대회 신청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부터, 대회티 착용을 강조한 공지문, 유명 연예인들이 대회 티를 착용한 사진들. 하나 같이 그의 행동이 옳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한 글들이었고, 결국 그의 유튜브 주소가 올라온 후 사람들은 그에게 찾아가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급히 사과하거나 당황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반응은 매우 까칠했다. '무슨 상관이냐' 느낌의 건방진 뉘앙스로 달린 답변에 사람들은 더 공분하기 시작했고, 해당 브랜드에 알려 불이익을 받게 하겠다는 협박조의 댓글들이 슬슬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람들을 벙찌게 하는 캡처 사진 하나가 업로드되었다. 그가 해당 브랜드 담당자에게 사전에 연락해 타사 브랜드 제품을 입지 않는다면 상의를 벗고 뛰어도 된다는 승인을 받은 것이다. 그의 답변 태도가 조금은 까칠했을 수도, 해당 브랜드사의 운영이 다소 비합리적이었을 수는 있으나, 적어도 그는 1인의 무고한 러너였다.


한번 브레이크를 밟고 나니, 이제서야 이 정의 실현의 광풍에 너무 매몰되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린다. 나야 댓글 하나, 좋아요 하나 누른 적 없이 뒷짐 지고 관망하며 사태를 지켜봐 왔기에 누군가 문제 삼을 일조차 없을 테지만, 나 또한 이들의 일부는 아니었나? 시시각각 바뀌는 유료 러닝 클래스의 스케줄 공지를 보며 통쾌해하고, 굳이 배번 복사 부부의 인스타를 찾아내어 구경했는 걸. 그뿐인가 상의 탈의 유튜버 논란이 있을 땐, 함께 달리는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공유하며 내심 이 이슈가 더 커지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혁명 직후의 성난 군중들처럼, 문화 혁명 시기의 성난 홍위병들처럼 나도 그저 러닝 광풍 시대의 성난 러너는 아니었나. 왜 너는 옳지 못 하나하고 여기저기 불을 켜고 다닐 만큼 나는 항상 옳은 존재였나. 그저 침묵하기엔 그정도로 세상이 옳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내뱉기엔 내가 옳지 못한 아이러니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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