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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Sep 30. 2022

엄마의 꽃목걸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여고의 한국근현대사 시간이었다. 늘 조곤조곤한 수업으로 인간 수면제로 불렸던 중년 남자 선생님의 수업 중 전혀 졸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보고 결혼할라고 하와이까지 배를 타고 건너갔는데... 늙은 거야. 신랑이.”

“으악.”

우리 반 아이들이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크고 작은 단체가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한국근현대사 시간은 암기과목이었다. 게다가 힘겹게 만든 단체들은 이념 갈등으로 해산하거나 일제에 의해 검거되는 등 대부분 새드엔딩이라 공부할수록 암울했다. 그 와중에 사진신부의 이야기는 튀어 오르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 기억에서 잊혔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김해에서 하와이로 사진 신부로 가게 된 ‘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해 어진말에는 열일곱 난 버들이 홀어머니 밑에 자라고 있었다. 양반의 집안이었으나 과거가 폐지되면서 훈장을 하던 아버지는 의병에 참여했다가 사망하고, 오빠마저 사망하자 급격하게 가세가 기운다. 보통학교 2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어머니를 도와왔던 버들은 방물 장수인 부산 아지매에게 하와이로 시집갈 것을 권유받는다. 하와이에 가면 못다 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믿고 신랑인 태완의 사진만 본 채 먼 뱃길을 떠난다. 양반 족보를 산 상민 출신 집안의 홍주와, 무당의 딸이라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었던 송화와 함께였다. 조선사람에서 하와이 사람이 된 세 여자는 각자의 삶을 살아낸다.


하와이로 오는 동안 많은 경험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날수록 버들은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버들의 유일한 배경이었던 양반이라는 신분도 조선 밖에서는 끈 떨어진 갓만큼이나 쓸모없었다.


과거제가 폐지되고 몰락 양반의 족보를 상민이 사는 격동의 시기에 살았지만 신분제가 없는 사회는 완전히 달랐다. 버들, 홍주, 송화는 그들의 신분이 주는 이질성이 아닌 조선에서 하와이로 함께 온 신부라는 동질성으로 더욱 똘똘 뭉치게 된다.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이승만은 국무총리, 박용만은 외무총장으로 추대되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임시정부를 위한 성금을 냈다. 하지만 박용만과 이승만, 두 지도자의 노선 차이는 여전했다. 태완은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조선을 위임 통치해 달라고 청원했던 이승만이 임시정부 최고 수반이 된 것에 분개했다. 그 바람에 이승만 지지파였던 일꾼 몇 명이 태완과 언쟁을 벌이다 농장을 떠났다.


하와이에서 농장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온 조선인들이지만 늘 독립을 위한 성금을 아낌없이 보탰다. 하지만 지도자들의 노선 차이로 지지자들도 세력이 갈리게 되고 이는 사진신부로 간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버들은 태완과 달리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경험 때문에 어느 편에 서기가 조심스러웠다. 하와이에서 갈등이 심해지고 태완은 박용만을 돕기 위해 중국으로 가게 된다.


덕삼이 동지회 와히아와 지부의 임원이 됐지만 홍주는 남편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기를 바랐다. 버들은 동지회 사람이 독립단 사람과 만나거나 교류를 하면 벌금을 물린다는 홍주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버들이 친했던 사진 신부들은 대부분 이승만 지지자가 되고 교류가 끊기자 버들은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던 중 홍주의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본처가 있는 조선에 돌아가게 되고 혼자 남은 홍주는 버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남편을 찾아온 하와이건만 남편들이 떠난 사진신부인 그들은 이제 남편을 따라 편 가르기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생존을 위해 버들과 홍주는 세탁소 일을 하며 똘똘 뭉친다.


“내는 인자 어데 파도 아이다. 이승만 파 아이라꼬 싫다면 고마 빠져 삐릴 기다. 그라고 버들이는 즈그 신랑이 독립단 활동한 기제 내처럼 아무 파도 아이다.”


홍주의 당당한 선언에 사진신부들은 계를 만든다. 남편의, 남성 지도자들의 분열에서 완전히 독립된 것이다. 이에 남편이 죽은 송화까지 함께 지내게 되며 ‘시스터지 런드리’는 성황을 이룬다. 세 사람은 단 하루도 온전히 쉬어본 적 없는 고된 나날을 보내다 하루 시간을 내어 홍주의 차를 타고 선셋 비치에 놀러 간다.

와히아와 한인들 중 자동차를 가진 이는 두 사람뿐이었다. 여자 운전자는 다른 민족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였고 한인들 중에서는 처음이었다. 버들은 와히아와 사람들에게 자동차 타고 나들이 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바다 건너 조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살았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세 여자는 해변에서 파도를 보며 파도타기 같은 인생을 반추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임을 다짐한다.


일제 강점기 김해 어진말의 소녀들은 미국 하와이에서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진신부들의 삶을 보며, 조선인들이 대립과 반목으로 얼룩져 고꾸라지기만 했던 것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혼란의 시기, 낯선 장소에서 누군가를 속이지도, 죽이지도 않고도 그녀들은 성실함과 연대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위해 돈을 부치고, 독립자금을 대고, 자식들을 낳고 함께 길러냈다.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에는 사진 신부의 삶을 다루었기에 그들이 겪은 삶의 고통을 간접 경험할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버들, 홍주, 송화는 서로를 안아주었다. 든든한 남편도, 호의적인 상황도 없었지만 손을 잡아준다면 생존할 수 있다. 하와이의 높고 거친 파도 같은 삶 속 하와이의 꽃목걸이인 레이처럼 이어졌던 그녀들. 이민 1세대인 사진신부들에게 연민이 아닌 존경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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