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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Oct 07. 2022

퇴근길

목동 남자를 추억하며



시계가 여섯 시를 가리키자마자, 미용실에 가기 위해 조용히 짐을 챙겨 사무실 문을 나섰다. 비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남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다시 골목길 쪽으로 꺾어 한참을 내려갔다. 그러다가 십여 년 전 그러니까, 스물 하나에 만났던 남자 친구가 떠올랐다. 나는 가난한 학생이었기에 앞이 잠기지도 않는 얇은 누비 코트 하나로 초겨울을 버티고 있었다. 나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짙은 초록색 남자 친구는 남색 코트를 입고 을지로 입구역에서 만났다. 너무 추웠기에 내 도톰한 뺨 속 진피층까지 덜덜 떨리는 기분이었지만 억지로 태연한 척하며 싸구려 롱부츠 속에 언 발을 구겨 넣고 남산 쪽으로 향했다. 초입에 있는 A호텔을 보더니, A대생이던 그는


"A대생이라 하면 공짜로 재워주나?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나는 가끔 그가 이런 받아치기 어려운 농담을 할 때마다 할 말을 찾지 못해 어지러웠다.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니 그 유명하다는 남산 돈가스집이 나왔다. 돈가스 집에서 호객을 하기에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무척 춥고 지쳤기에 텅 빈 돈가스집 안으로 들어갔다. 맛은 생각보다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둘 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다시 남산타워를 향해 오르는데 두텁게 껴입은 아저씨가 양팔을 크게 휘저으며 우리를 불렀다.


"방금 들어간 곳은 완전 가짠데 우리가 진짠데. 아휴 안타까워."


"네~ 여기는 다음에 올게요."


남자 친구가 넉살 좋게 대답하고 우리는 다시 비탈길을 올랐지만 어쩐지, 모든 것에 능숙할 것 같은 이 서울남자가 실패할 때마다 머릿속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짐을 느꼈다. 남산타워에서 자물쇠를 달았던가? 거기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쯤 뒤 친구와 갔던 보라카이의 쇼핑몰에서 그를 마주친 것을 기억한다. 매대 사이에 숨으려고 했지만 큰 소리로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녔고, 그는 나를 돌아보았다. 몸을 잔뜩 수그려 눈을 안 마주치려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 쇼핑을 마친 뒤 연인으로 보이는 한 여자와,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나를 지나쳐가는 뒷모습. 이제는 조금은 덜 창피할 줄 알았는데.

경상도의 작은 도시에서 평생 살다가 올라온 나는 서울남자였던 그의 하얀 피부와 날렵한 턱선과 부드러운 웃음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다. 나 같은 시골 여자가 감히 목동 사는 남자를 만나도 될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꾸물거리기에는 그는 너무 잘생겼고 달콤했다. 그의 목동 집에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갑자기 마주친 어머니가 내게 "요즘 애들은 이렇게 입는구나"라며 쓰게 웃었던 것도 기억났다. 그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뒤 하라는 영어공부는 안 하고 하우스메이트였던 여자와 눈이 맞게 되었고 눈치를 챈 내가 그에게 추궁한 끝에 겨우 내 전화를 피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덧붙였다.


"근데 너도 사랑해."


나는 이제 남산 초입에서 일하는 어른이 되어 매일같이 남산타워를 보며 출근하지만 왜일까, 오늘 남산의 골목길을 내려가다가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그가 생각난 이유는.


골목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작은 1인 미용실 앞에 도착했다. 나보다도 키가 작고 야리야리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남자 미용사는 입술을 살짝 떨며 나를 맞이했다.


"이, 이 머리는 어, 어떠세요?"


"그냥 예쁘게 해 주세요"

미용사는 사진을 두 장 정도 보여주었다. 만사 귀찮은 나는 그냥 쭉 펴진 머리보다 조금 굽슬 거리기만 하면 되었기에 그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무, 물 온도는 어떠세요?"


"보통 미, 미용사들은 이, 이런 머리 잘 안, 안 해요 소, 손이 많이 가서..."


그는 말을 더듬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롤로 반이상 감긴 다음에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말을 더듬었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말 더듬 교정! 확실히 고쳐드립니다!'


9살 아이가 볼 수 있는 높이에 있던 전봇대에 붙은, 하얀 바탕에 굵고 검은 글씨의 스티커를 보고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빠! 저기 밖에 보면은 말 더듬는 거 , 고쳐준다는 데에- 아빠 같은 사람 가믄 되겠다!"


신발을 벗기 귀찮아 현관에 서서 소리를 빽 치자 안방에 있던 아빠가 무어라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그 뒤로는 아버지의 말더듬에 대한 기억은 없다. 환갑이 넘은 지금도 전혀 '교정' 되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모두가 아버지에게 적응해버린 게 아닐까. 대신 그는 자신을 낮추는 화법에 능통해서 부모님 가게의 손님들에게 호감을 사고 자식들에게 "아빠가 불쌍하지도 않나?"라며 결국 아버지가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드는 능력자인 것을.


미용사는 얇은 롤로 꼼꼼히 말았던 머리를 하나씩 정성스럽게 풀었다.


"어, 어때요?"


그는 아이 같은 희고 여린 손으로 롤을 거의 다 풀었다. 그의 말대로 오래갈 것 같은 곱슬거리가 머리가 완성되었다. 누가 지나가다가 내 정수리에 짜파게티 냄비를 엎은 것 같은 생동감 있는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 역시 실력자시네요. 고마워요."


칭찬이 어색한 시골 여자였지만 목구멍에서 대도시에 걸맞은 사회성을 끄집어 올렸다.


"혀, 현금으로 하면 삼천 원 깎아드리구요."


머리를 말리던 그는 자신 없는 말투로 나름의 수완을 발휘하려 했다. 하지만 삼천 원은 너무 짜다고 생각해 나는 카드를 내밀었다.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그는 묵묵히 카드를 받아 들었다. 꼭 미용실에서 주기적으로 영양 처리를 해야 된다고만 당부하는 그에게 '우리 미용실에 자주 오세요'라고 대놓고 말하진 못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나는 무신경하게 "네, 네."라고만 대답한 뒤 길을 나섰다. 비가 그친 명동거리에는 주변 숙소에 묵는 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꼬부라진 머리끝을 손바닥으로 통통 튕겨 새로운 머리의 부피감을 즐기면서 지하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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