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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스타 May 14. 2024

나를 위해 먹은 좋은 음식

나를 살게 하는 힘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평생을 저질 체력으로 살다 보면 몸이 허공을 싸고 있는 얇은 껍데기처럼 느껴져요. 먹은 게 소진되는 순간 바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까요. 


당 떨어졌다고들 하죠. 생각도 안 되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요. 뭐라도 들어가면 겨우 한 걸음 걷고, 뇌도 활동할 수 있어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달달한 음료나 초콜릿을 한창 달고 살기도 했어요. 한입만 먹으면 눈이 번쩍 떠지면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제가 여름에는 거의 쟁여두다시피 해놓고 먹는 게 있어요. 


바로 수박이에요.

© joannakosinska, 출처 Unsplash






수박은 달콤해서 정신이 번쩍 드는 당 충전 음식이에요. 뜨거운 공기가 대지를 가득 메운 날에도 수박을 시원한 곳에 보관해 주면 깊은 속까지 시원해지는 데다가 밖에 내놓고 먹어도 쉽게 그 냉기가 가시질 않아요. 거기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먹을 수 있는 부드럽고 성긴 과육이 매력적이에요. 씨가 많긴 하지만 입에서 쉽게 발라내어 퉤, 하고 뱉어내면 그만입니다.


저는 큰 수박, 껍질이 얇은 복수박, 애플수박 가리지 않고 잘 먹어요. 아직 무등산 수박은 못 먹어봤지만 많이 달지 않다는 말에 큰 욕심은 나지 않아요. 


자취를 시작하면서는 수박에 대한 애착이 더욱 심해져서 여름이면 냉장고에 수박이 없는 날이 드물었어요. 긴 하루를 마치고 들어와 수박 한 입 먹으면 바로 사르르, 이게 살맛이구나 했어요. 


저는 수박을 반으로 뚝 잘라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곤 해요. 썰어 먹을 시간도 아깝죠! 앉은 자리에서 수박 반 통은 쉽게 끝낸답니다. 과육을 다 퍼먹고 나면 붉은 수박즙이 통 안에 찰랑찰랑 고입니다. 그럼 마무리로 통째로 들고 후루룩 마십니다. 캬. 저 같은 건성피부에겐 질리는 물 대신 수박 물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단점은 조금 끈적해지고, 큰 수박의 경우 껍질 처리가 조금 귀찮긴 합니다. 저는 음식물 쓰레기를 집에서 퇴비화해서 식물 기르는 데 사용하는데요. 과일이나 채소를 다듬고 남은 것들을 모아 효소를 뿌려 흙에 묻어두면 어느새 흙과 하나가 되어 촉촉하고 양분을 듬뿍 머금은 흙이 된답니다. 다만 수박은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껍데기가 나와서 집에서 퇴비화하기엔 많은 양이라 바로 음식물 쓰레기 수거용기로 직행합니다. 마당 있는 집에 산다면 수박도 퇴비화해 보고 싶네요.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손발이 얼음장 같은 나는 겨울은 추워서 움츠러들고, 여름은 뜨거워서 살아난다고 생각했어요. 겨울은 너무 우울해서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꼭 가기도 하고요. 그 언젠가 갔던 필리핀 보라카이 리조트에서 먹었던 수박은 한국보다 좀 더 코코넛처럼 꼬소한 맛이 난다고 할까요? 그것도 정말 좋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게 되면서 수박을 마음껏 사 먹은 뒤로 여름이 좋아진 것 같아요. 아무리 여름이 좋다지만 수박 없이 보낼 생각을 하면 겨울만큼 울적해지거든요.  


지금은 시집가고 아이 엄마가 되어 잠시 사회에서 사라진 친구들이 가끔 너무 그리워요. 왜, 여자들은 헤어진 연인보다 멀어진 친구가 더 아련하다고 하잖아요. 아이가 크고 나면 돌아오겠지만 어른으로 급성장해버린 그녀들과 철없는 내가 잘 통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여름은 견딜만할 거예요. 수박을 퍼먹으며 허전함을 채우겠죠. 수박 한 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견딜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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