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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Feb 22. 2024

꼭 선물 같은 눈이 내렸다. 선물이다.

생일.

봄 같던 날씨에 문득 찾아온 내 생일. 꼭 선물 같은 눈이 내렸다. 선물이다.


사실 생일이라는 것 자체에 설렘, 기대, 행복 그런 것들을 더 이상 기다리진 않는다. '생일'이 아니고서도 꽤 많은 날들이 선물 같아졌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아직도 종종 화가 나는 일이 생기거나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을 거둘 길이 없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지켜주고 있는 평온을 금세 되찾을 수 있게 되었고, 모든 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숨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감사하다.


그럼에도 생일이 특별한 날이라는 걸 잊을 순 없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오랜만에 불쑥 반가운 연락들이 기분 좋게 나를 놀래키기도 하고, 감사하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에 당연한 것 같지만 그 어떤 것들도 당연하지 않다는 감사함을 품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번 생일은 스스로에게 조금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이런저런 할 일들과 하고자 하는 일들, 달려가고 있는 길에서 잠시 잠깐 멈추는 시간을 갖는 것. 평소 마음 편하게 하지 못했던 일들을 아무런 결계없이 마음껏 해버리는 것. 그리고는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 절대.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스스로를 용납했다. 그래서 일이 하기 싫은 순간에도 소파에 편히 앉아있는 것보다 작업책상에 나를 앉혀놔야 죄책감이 그나마 덜했고, 그래서 보내버린 소중한 순간들에 늘 미안했다.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을, 흔들리는 바람에 뻗대지 말고 그저 흔들릴 것을. 그것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스스로에게 오기 같은 것이 생겼고, 또 오기를 눌러버리려 하는 에고와 다투는 일상에 알게 모르게 지쳐갔던 것 같다. 그런 모든 순간들을 떨쳐내는 게 오늘이길.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내 생일은 아무렇게나 막살아도 되는 순간을 선물했다. 


이렇듯 거창하게 글을 적으면서 생일을 더 이상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나의 말이 우습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허공에 떠도는 생각들을 한 군데 모아놓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년 생일에 오늘의 마음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하얗게 뒤덮였던 오늘을 기억하길. 한번 더 감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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