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갇혀 당장은 못 보고 계신 건 아닌가요?
이제 도윤이는 4살이 되었어요. 내년엔 이제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지요. 어떤 유치원을 보낼까 가 요즘 가장 큰 질문입니다. 그런데 문득 아이와 차를 타고 가다가 앞에 아우디 R8이 가는데, 아빠! 아우디 R8이야! 스포츠카! 이러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봤는데 진짜 있더라고요. 우리 동네에도 R8이 다 돌아다니네.. 싶다가 문득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 정보의 과잉, 어떤 수준으로 체감하고 계십니까?
저희 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자동차의 브랜드 이름을 거의 대부분 외우고 있습니다. 페라리, 포르셰, 벤츠, BMW, 포드, 부가티, 마세라티, 볼보, 람보르기니 같은 것들요 워낙 자동차를 좋아해서 이제는 모델도 조금씩 외우는 것 같은데 아마 또래 애들은 비슷할 거라 봅니다. 그런데 이게 왜 겁이 났냐면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고작해야 곤충, 동물 이름 외우기 정도였을까요.
저는 84년 생인데,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양은 부모님, 유치원 선생님 및 일부 책들에 국한되었죠. 그래서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없다면 이런 브랜드를 익힐 일도 심지어 자동차를 볼 일도 없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유튜브를 통해 자동차 모델들이 비교되는 영상을 볼 수도 있고 어제 신규 출시된 차량의 베기량, 토크 등 엄청난 정보를 다루고, 익히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죠.
그런 상황에서 뭔가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정보의 과잉이 말이죠. 지금은 제가 핸들링할 수 있는 단순 정보들이고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제가 컨트롤해줄 수 있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고 이제 맥락에 관련된 정보를 익히기 시작하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빠, 2차 세계대전은 그래서 왜 시작된 거야?", "아빠, 공룡은 왜 멸종한 거야?" 그럴 때 어떻게 대답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그냥 "운석이 떨어져서 멸종했어" 수준으로 답해줘도 확인할 길이 많지 않으니 그것에 수긍하고 넘어갔지만 이제 아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전문가에게 듣고 부모님이 말해준 정보가 사실이 아님을 빨리 파악하고 (대멸종 종류 / K-Pg 멸종) 부모가 만능이 아님을 빨리 깨달아 갑니다. 제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제도권 교육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더 많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케어해주기 어려운 수학이나 과학을 익히는 중학생 정도부터 부모님이 만능이 아님을 알았지만 요즘은 초등학생부터 우리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많이 처리하기 때문에 더 빨리 그 시점이 도래할 것이고 그때부터 스스로 정보를 판단하고 익히는데 중점을 둘 것입니다.
아이들의 대화는 점점 어려워지고 그렇기에 인터넷에서 자극적이고 단순히 양이 많거나 괘변이지만 논리가 그럴듯한 이야기에 "부모의 필터링 없이" 심취될 것입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일베 논리와 워마드 같은 것이죠. 그래서 실제로 저러한 것에 빨리 빠져드는 시점이 바로 요즘은 초등학생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전의 사춘기가 고등학교 때 찾아왔다면 지금은 중2병에서 초4병까지 점차 빨라지고 있죠. 뭐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2. 우리 아이와 공감은 가능할까?
4차 산업시대가 바로 코 앞에 왔는데 저는 걱정이 됩니다. 저러한 정보들에 대한 판단 기준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선/악이 명확하지 않은 다양한 정보를 중립적으로 아이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여 저도 요즘은 다양한 다큐나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를 합니다.
얼마 전에 외국어 유치원을 보낸다는 학부모를 만났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네이버 파파고나 구글 번역이 더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한다는데 과연 저런 언어 학습이 중요할까? 지금 시점으로 상상력을 발휘해도 보청기 같은 것들 통해 실시간 번역이 될 거라는 건 자명한데요. 오히려 외국어 유머 (러시아에선 / 외국어 지역 드립) 같은 것에 반응할 수 있도록 언어유희에 좀 더 가깝게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즉, 한국어를 똑바로 가르쳐서 말의 의미와 언어의 응용.. 그니까 인문학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리고 코딩이 유행하고 있지만 코딩도 당장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알고리듬은 좀 가르쳐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고요.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저러한 내가 생각한 커리어 패스를 우리 아이가 받아들이고 "상호 간" 공감을 하기가 쉽겠냐는 것이겠지요. 유튜브를 통해 엄청난 정보를 스스로 학습하고 초등학생부터 부모와의 괴리가 생기는데 단순히 코딩을 가르친다고 해서 내가 답변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빠, C에서 #include <stdio.h>의 stdio.h 가 의미하는 게 뭐야?"라고 물어봤을 때, stdio.h가 Standard Input/Output library 의 약자라는 거야 검색해보면서 당장 알기야 쉽지만 저게 어떤 맥락을 가지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설명하실 수 있는 분은 전문적으로 배우신 분 외에는 없을 거예요. 그럼 저만 해도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본인도 잘 모르면서 왜 나한테만 가르치려고 하지?" 혹은 "엄마 아빠는 이런 것도 모르면서 나한테 왜 뭐라고 하나" 그러면 앞서 말한 아이와의 정보적 괴리는 더 심해지고 그로 인해 의존성은 더 멀어지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보의 양과 부모와의 의존성 혹은 유대는 반비례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3. 지금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게 아니고 환경의 이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옛날에는 부모님과 저는 같은 환경을 공유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보를 알고 계셨고 (곤충 이름, 과일 이름, 지역, 식물 이름 등) 그래서 지식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 때문에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을 공유하는 아이들은 지식부터 우리와 엄청난 괴리가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심지어 따라잡기도 어렵죠. 그래도 대충은 알아먹을 수 있도록 저는 지금 업무와 크게 상관없어도 블록체인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고 또 감성이라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요즘 10대 언어도 보고 있습니다.
혹시 TMI 아세요? Too Much Information이라고 쓸데없이 많은 말을 의미한다는데, 미국에서는 원래부터 약어로 쓰던 게 요즘 10대 사이에 유행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술적인 정보를 우리가 모두 깨우질 순 없습니다. 얼마 전에 자동차 베기량에 대한 정의와 엔진의 작동 원리를 말해주는 데도 진땀이 흐르더라고요. 그러면 적어도 감성이라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잔치를 할 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무엇을 집을까? 청진기? 펜? 판사봉? 아이가 그리고 무언가를 집었을 때 그게 무엇이었건 기뻐하고 앞으로 관련된 직업을 가지길 희망했죠. 어린이집 때는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았으나 이제 유치원을 들어가는 나이가 되자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의 커리어 패스는 어떻게 만들어줄까. 행동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유치원, 제도권 교육의 미리보기를 체험할 수 있는 병설 유치원, 아니면 지금부터 외국어 유치원을 보내 외국어를 학습시킬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 쓸모없는 일이 아닐까, 무엇을 배우건 나 때와 너무 다른 요즘 아이들의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하는 게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른 부모들의 생각도 궁금해지는 하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