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다! 내 육아휴직!
그렇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육아 휴직을 내었다. 그것도 아빠가!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9월에 냈으니, 비교적 짧게 인수인계를 해서 한 달 간은 휴직 기간 중에 인수인계를 좀 계속했고 집안일에 익숙해지는 기간을 보내다 이제 조금씩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사실 육아 휴직을 아예 생각지 않았던 건 아니다. 아이가 손이 많이 간다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내려고 존버 하고 있었을 뿐 그런데 아이의 엄마가 최근 학업과 개인 사업으로 개인적으로 과부하가 걸려 아픔이라는 몸의 반응이 시작을 했고 어쩔 수가 없었다. 시댁 찬스도, 친정 찬스도 쓰기 어려운 우리 가정 형편 상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려면 돈이 필요했고 (도우미 아주머니) 그러기엔 아직 도윤이의 마음이나 우리의 불안감이 해소될 수 없다 생각했다.
와이프는 이미 아이를 낳고 희생을 했다. 학교를 휴학했었고, 여러 가지 오퍼를 거절했다. 20대 후반 꽃 같은 나이를 육아에 쏟아부었다. 이렇듯 육아는 당연히 뭔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돈 혹은 인력으로, 돈으로 때우기 어려운 우리는 인력을 갈아 넣어야 하는데 또다시 나의 회사 생활을 위해, 커리어를 위해 와이프에게 희생을 하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 어째? 내가 내야지. 육아휴직을
육아휴직을 내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회사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육아휴직을 낸다고 해서 회사차원에서 신규 인원을 뽑기는 어렵다. 복귀 후 T.O 문제도 있고 인건비 요소도 있기 때문이다. 퇴직이 아니기 때문에 직무가 정말 너무 유니크해서 T.O 공백이 치명적이지 않는 이상, 사실 일반 Staff나 영업 직군은 1년간 업무를 분배하지, 신규 인원을 뽑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내 업무 대부분이 동료들에게 갈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고 최근에 여러 가지 일로 안 그래도 바쁜 동료들에게 짐을 얹어주는 모양새였다.
더군다나 이번에 신규 TF를 하나 계획하는데 내가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내 직속 상사는 직책을 몇 가지 겸임하고 있어서 안 그래도 모두 바쁜 상황이었다. 아니 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나보고 일을 좀 더 많이 그리고 제대로 하라고 오히려 닦달을 하실 지경이었는데 거기에 대고 내가 육아휴직을 언급하는 건 진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처음 육아휴직을 언급했을 때 내 직속 상사분은 농담인 줄 아셨던 것 같다. 얘가 요즘 많이 힘든가? 뭐 이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잘 안 될 것 같아 예의는 좀 어긋나지만 인사팀에게 상담을 하기로 했다. 인사팀과 이야기할 땐 개인적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잘 이야기를 해주었다. 예전에 카xxx라는 회사를 다닐 땐 육아 단축근무 요청했다가 희대의 역적 취급을 받았는데, 여기는 그에 비하면 상당히 상대방을 잘 배려해주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가장 먼저 물어봤던 건 아래 질문들이었다.
Q. 제가 혹시 처음인가요?
A. 아니에요 몇 명 더 있습니다. (우리 회사 짱짱맨!!)
Q. 돌아와서 적응을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A. 여러 방안이 있겠죠 (전환배치 등) 하지만 돌아온 뒤에 고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또 인사팀에서 물어본 건 아래 질문들이었다.
Q. 생계는 해결할 수 있는 건가요?
A. 와이프 쇼핑몰을 일단 좀 제가 도울 생각이에요
Q. 정말 대안이 아예 없는 건가요?
A. 없어요..ㅠ
대부분 '남자'가 육아휴직을 내는 것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저기에 없는 인사상의 불이익에 대한 질문은 당연하다 생각해서 하지 않았다. 그건 남, 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니까. 아직 육아휴직에 대한 지원이 정부에서조차 이 정도 수준인데, 회사에서 이정도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건 진심이다. 대놓고 못하게 하려고 했던 기업도 있었으니..
인사팀에 의사를 전달하고 다시 한번 이야기를 했을 땐 솔직한 말로 욕을 먹지 않으면 다행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상사분께서도 별 말 없이 품의를 쓰라는 말씀을 듣고 바로 품의를 작성했다. 결제가 올라가는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제 어떡하지..?
같은 회사 동료들에게 100% 지지를 받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앞서 말한 듯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분위기는 더 안 좋았다. 와이프가 학업과 더불어 자영업을 하는 상황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1년간 육아휴직을 내고 먹튀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그럴 생각이 1도 없어요..
일부 몇 분은 아예 내 인사를 받지도 않고 나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땐 좀 충격을 받았다. 우리 회사는 여성 분들의 경우 육아휴직을 거의 100% 쓰고 있는데 그런 분들의 반응과 정말 달랐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이런 건가 실감하게 되는 계기였다. 뭐 남자도 이제 육아휴직을 쓴다. 하는데, 아직 정말 갈길이 멀구나 싶었다.
대망의 마지막 날, 솔직히 잘 다녀오라는 인사 한 마디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ㅎㅎ 나와 친한 몇 명을 제외하곤 아무도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 음. 이거는 내가 회사 생활을 잘 못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육아휴직을 처음 내고 첫 달 첫날부터 마주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카드값이었다. 그리고 때 맞춰 돌아온 대출 만기가 하나 있었는데 휴직으로 인해 대출 조건이 변경되었다. 그에 따라 신규 대출을 좀 알아보려고 했는데 역시, 휴직으로 인해 대부분의 금융거래가 어려워졌다. 이런 XX.......
다행히도 가족 찬스로 첫 번째 고비는 넘겼는데, 이제 두 번째 고비가 곧 찾아온다. 두 번째 고비는 어찌 넘겨야 할지 벌써 두통이 온다. 둘이서 벌 때는 월 1,000~900 정도도 찍었는데 내 급여가 100만 원으로 고정되면서 순식간에 반 이상이 줄어버렸다. 급여는 칼 같이 변했는데 습관은 칼 같이 안 변해서 저녁을 사 먹거나 어딘가에 가는 것에 대한 개념이 확 사라지지 않아 첫 주는 미친놈들처럼 살다가 다행히도 통장 잔고와 용돈 현황 체크하고 정신줄을 겨우 붙들어 맸다. 하지만 큰 고정 지출 (아이 사교육)은 아쉽게 몇 개 접게 되었고 나의 요리 실력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아 다진 마늘의 마법은 위대하다.
와이프 쇼핑몰을 잠시 맡아 운영하고 있는데, 규모를 좀 키워놓아야 할 것 같아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고 직장 다닐 때 못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앞으로 좀 해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아이가 5살인 상태에서 쓰는 육아휴직이라 솔직히 엄청 아깝다. 다른 사람 이야기 들어보면 4살 ~ 7살이 그나마 가장 수월할 때라고 하는데 ㅠㅠ 아까운 내 육아휴직...ㅠㅠ
그리고 브런치도 좀 다시 활성화시켜야지.. 아무튼 이번에 남자가 육아휴직을 내면서 겪는 많은 것들을 정리해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아빠의 육아휴직기, 이렇게 시작합니다. ㄱㄱ